나도 처음은 두렵지

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by 초록테이블

4부. 용기의 다양한 이름들



어른이나 어린이나 마찬가지다. 한 번이, 처음 딱 한 번이 어렵다. 어른이라고 처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실수가 부담스럽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이도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이런 마음이 커지는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아이가 '일단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아이의 첫 장기여행이고, 첫 번째 태국 방문이고, 10살이면 이제는 십 대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시도가 여행을 더 풍성하게 만들 것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다짐했다.

‘부담 주지 말고 기다려주자’

‘잔소리하지 말자’

‘나부터 노력하자’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 흘린 아이가 냅킨이 필요하단다.

“저쪽에 가서 달라고 하면 돼.”

“엄마가 해주면 안 돼?”

“Napkin please만 하면 줄 거야. 용기 내 봐.”

멀리서 냅킨을 들고 걸어오는 아이의 어깨가 춤을 추듯 들썩이고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그 후로 아이는 온갖 단어에 please만 붙여서 이것저것 잘 요청하고 잘 받아왔다. 용기가 넘친다.


자, 이제 내 차례. 나도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마음이 숙제처럼 남아 있었고 때마침 기회가 생겼다. 그날도 어김없이 골목 구석구석을 살피며 걷다가 더위에 지쳐 (가짜) 망고가 주렁주렁 달린 야외카페를 발견했다. 에어컨이 나오는 카페가 더 시원하겠지만 그래도 야외의 낭만을 누리고자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망고가 통째로 올라간 망고스무디와 쌀과자를 주문했다.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키가 큰 서양 여성이 다섯 살, 세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둘의 손을 붙잡고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섰다. 실내 좌석이 따로 없는 데다 다른 좌석은 땡볕이라 이쪽으로 앉으셔도 된다고 말을 걸었다. 하나의 테이블에 앉게 된 우리 다섯은 머쓱한 표정으로 눈을 마주치며 살짝 웃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그녀가 테이블 위에 올려 둔 쌀과자를 말도 안 하고 꺼내 아이를 주려는 게 아닌가.

“잠시만요. 이거 저희건데요?”

그녀는 당황하고 미안해하며 카페에서 제공하는 무료 과자인 줄 알았다고 사과했다. 나는 이 과자가 맛있으니 먹어보라 건네며 질문을 던졌다. 셋이 여행을 온 건지, 어디에서 왔는지, 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어디 어디 가봤는지, 추천할만한 장소는 어디인지, 아이 두 명과 여행하는 건 힘들지 않은지, 무슨 음식이 맛있었는지…

아이는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내가 뭐라 말하는지 물었고, 중간중간 중계를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독일에서 온 그녀는 오늘이 남편의 자유시간이라 아이 둘을 독박육아 중이라고 했고, 자기 아이들도 영어를 못한다고 했다. 이 말에 아이는 놀란 표정으로 서양 사람이면 당연히 어린아이도 영어를 잘할 거라 생각했다며, 이제야 편하게 다섯 살 아이에게 손짓 눈짓을 보낸다. 열 살이고 다섯 살이고 부끄러워서 쭈뼛쭈뼛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아이에게 내색은 안 했지만 이 날의 스몰토크는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과 이렇게까지 길게 영어로 대화를 한 건 처음이었다. 대화하는 내내 쿵쾅대는 심장을 누르며 말을 이어갔고 내내 긴장상태였다.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 아이가 말한다.

“엄마, 영어 잘하더라.”

“정말? 계속 영어공부 하길 잘한 것 같아. 아까 그분이 추천해 준 silver temple이라는 데도 가보자. 여행하는 사람이랑 대화하니까 정보도 얻고 좋네,”

멘트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마무리했지만, 사실 제일 뿌듯한 사람은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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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쌀과자와 다음날 방문한 silver temple. 남자만 입장 가능한 사원이라고 해서, 아이가 내부 모습을 열심히 영상으로 남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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