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영어캠프를 간다던데

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by 초록테이블

4부. 용기의 다양한 이름들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검색하면 어학원, 콘도, 국제학교가 연관 검색어로 뜬다. 초등학생 아이와 지내는 경우에는 보통 콘도를 잡고 영어캠프를 많이 보낸다는데, 놀이를 통해 영어를 배우고 다양한 액티비티를 한다고 하니 아이도 재밌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넌지시 물어보았다.

“난 별로. 다른 애들은 영어 잘하는데 나만 못하면 부끄럽잖아.”

다른 아이들은 잘하는데 나만 못하면 부끄럽다는 말은 아이의 레퍼토리 중 하나인데, 일곱 살 때 태권도장 앞에서도 가기 싫다고 눈물을 보이며 같은 이야기를 했었다.

“다른 애들은 이미 잘하는데, 나만 못하잖아. 태권도 안 할래.”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사정 설명을 한참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돌봄 교실이 있지만 많은 아이들이 일찍 집에 갈 거고, 너도 오후에 태권도를 가면 엄마가 퇴근하고 도장으로 데리러 가려고 했다, 어릴 때 운동을 하는 것이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건강하게 지내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려서 네 기분이 좋아질 거다...... 설득을 위해 여러 논리를 동원했다. 아이는 듣더니, 그러면 태권도가 아닌 다른 운동을 하겠단다. 어린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하지 않는 운동으로. 그래서 검도를 시작했다. 검도장에서 아이는 유일한 미취학 어린이였다.


사정을 설명하고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면 아이는 어김없이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그 결과에 실망한 적은 없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할래’ 했다면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매번 다 생각이 있었다. 그때 시작한 검도는 여전히 수련 중이다. 꾸준함은 매일 칭찬해도 부족하다.

운동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공부 역시 가능한 한 아이와 상의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편인데 영어캠프도 마찬가지였다. 영어캠프의 장단점을 아이와 함께 짚어보고 나서 아이의 대답을 들었다.

“한국보다 비용도 훨씬 저렴하다고 하니 영어를 한번 해보는 건 좋은 것 같아. 대신 1:1이 있으면 그걸로 할래.”

Ok! 우리는 공부하러 치앙마이에 가는 게 아니고 여행하러 가는 거니깐 딱 일주일만 하기로 하고 구글지도를 열어 어학원을 몇 군데 찍어두었다. 치앙마이에 도착한 후 학원에 직접 찾아가고, 라인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해보았다. 한 해의 마지막이라 그런지 학원들은 하나같이 휴무로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미리 한국에서 확인하지 않고 그냥 마구잡이로 찾으려고 한 결과 그냥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1월이 되어 어중간한 오후 시간에 겨우 한자리를 구했고 David 선생님을 만났다.

아이는 Hello. Thank you. I’m 누구. I like game. 정도만 할 수 있는 수준이라 외국인 선생님과 영어과외가 가능은 할지 걱정은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외국인을 덜 낯설어 할 수는 있을 거라는 가벼운 목표를 가지고 수업을 시작했다. 내심 실망할 준비를 하고, 아이에게 수업이 어땠냐는 질문을 던졌다.


첫째 날 “잘 모르겠어.”

둘째 날 “재밌어.”

셋째 날 “오늘은 좋아하는 캐릭터 얘기를 했는데~.”

넷째 날 “엄마, 나 되게 잘한대. 우리 한국 가서도 우리 둘이 영어로 말하면 되겠다.”


드라마틱한 전개에 입이 떡 벌어졌다. 선생님은 마지막 날 나에게 아이가 얼마나 열심히 집중했는지, 아이의 장점이 무엇인지, 본인이 4일간 만난 아이의 특징에 대해 정성을 다해 의견을 주었다. 역시 선생님을 잘 만나야 한다. 운이 좋았다. 미리 알아보지 않고 고생한 덕분에 이 선생님을 만났으니, 게으름을 부려 잘했다고 해야 하나.

그때 선생님의 주요 조언은 놀랍게도 영어보다는 미술을 시켜주라는 것, 영어는 억지로 시키거나 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안 잊어버리게만 하라는 것이었다. 수업시간에 좋아하는 게임과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림으로 표현하였는데, 미술에 분명히 소질이 있단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서 미술을 배우게 하겠다 약속을 했다. (물론 약속을 지켰다.) 아이는 다음 겨울방학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남겼다. (약속을 지킬 예정이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아이는 가끔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건다. 보통 이런 말들이다. “Do you like game?”, “Do you like ice cream?”, “I want to play this game. please. I love you.”

부탁할 것이 있거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싶을 때 영어를 쓰는 것 같다. 맞든 아니든 영어로 말하는 아이를 보면 기특해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 나오고 마는데, 그걸 간파당한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은 내가 너에게 드래곤볼에 대해 영어로 말을 걸어보겠어! 기대해라!’


Screenshot_20251013_125127_Gallery.jpg 아이의 영어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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