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3부. 순도 100%의 사랑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건 어때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결혼을 앞두거나 임신을 고민하거나 지금 임신 중인 후배들은 고민도 걱정도 많다. 나는 어땠나? 이십 대까지는 비혼주의였던 내가 결혼하자마자 임신을 한 것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남들도 다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가진 건 적어도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쩌면 나는 온전한 내 편을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실제로 아이는 내가 만난 사람 중 유일하게 내가 온 마음을 다해 백 퍼센트 사랑할 수 있고, 그 어떤 결과가 와도 후회할리 없는 사람이다. 의심을 할 필요도 걱정을 할 필요도 없는 완전 무해한 존재인 것이다.
후배들에게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를 낳으면 너는 지금까지 경험한 것보다 천배는 더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야. 지금까지 힘들었던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 그리고 지금까지 경험한 것보다 만 배는 더 큰 행복을 느끼게 될 거야. 세상이 엄청 넓어지고, 애 말고는 뭐 겁나는 게 별로 없어져.”
아직 닥쳐보지 않은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후배들도 내 말을 들을 때는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무슨 개똥철학인가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백이면 백, 내가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 다 알게 된다.
“팀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아이를 키우셨어요? 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착하고 의젓해요?”
“너도 지금 아주 잘 키우고 있어. 네 아이가 훨씬 더 착하고 예쁠걸. 원래 내 아이가 젤 예쁜 법이니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서는 늘 서로에 대한 존경이 싹튼다. 그리고 그 존경은 결과물이 아닌 과정에 대한 것이라는데 그 가치가 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가 아니다. 열심히 잘 보살핀 것에 대한, 가슴 졸이고 눈물지으며 버텨온 날들에 대한 존경이다.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은 아끼고 싶지 않고, 내가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것 역시 응원의 마음이다. 당신과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응원한다.
과거의 소소한 일상들이 현재의 나를 지탱하고, 어제 나에게 건넨 아이의 말 한마디가 오늘도 나를 웃게 한다. 아이의 말은 때로 푹 꺼져있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날아오는 큐피드의 화살 같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것보다 만배 더 큰 행복'의 원천이다.
아이의 예쁜 말들은 시간이 지나면 후드득 날아가버려 어디든 꼭 남겨둬야 하는데, 챙겨서 남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메모장을 뒤져보니 더 많이 남긴 기간들이 있고 거의 남기지 못한 때가 있었다. 아쉽지만 지난 일은 어쩔 수 없고, 오늘부터라도 다시 남기는 수밖에.
17년(3살) 4월 26일
“아들은 예쁜 누나가 좋아, 착한 누나가 좋아?”
“예쁜 누나가 좋아.”
“예쁜 누나가 착하지 않으면 어쩌지?”
“그럼 안 예뻐.”
18년(4살) 1월 3일
아이가 계단을 옆으로 옆으로 걸어서 내려오고 있었어요. 그래서 꽃게 같다고, 꽃게는 옆으로만 걸을 수 있다고 알려줬어요.
“엄마, 꽃게는 많이 덥겠다.”
“왜?”
“땀이 많이 나니까~”
18년(4살) 2월 18일
두 손으로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예뻐서 그래~”
19년(5살) 1월 22일
“엄마, 우주 보다 더 큰걸 발견했어. 마음이야!”
19년(5살) 2월 10일
낙산사에서.
약수를 먹으면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울 수 있다고 했더니, 꼭 먹어야 한대요. 자기는 욕심과 걱정이 있다고 합니다. 장난감을 다 가지고 싶어 하는 욕심, 영화를 볼 때 무서울까 걱정하는 마음이래요.
19년(5살) 3월 31일
대구 여행 중, 계단에서 힘들다며 업어달라고 하기에
“음… 계단인데” 하면서 뜸을 들였더니
“엄마, 업어주지 않으면 진정한 엄마가 아니야.”
19년(5살) 4월 10일
둘이 함께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 영화 메리포핀스에 나오는, 욕조에서 수영하는 노래 ‘상상할 수 있나?’를 따라 불렀지. 꽤 잘 따라 불러서 놀라기도 했어.
그런데 네가 갑자기 울음이 차오른 거야.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어릴 때 추억이 생각나지 않는대. 잃어버렸대.
그래서 내가 일기를 써뒀고, 사진을 찍어놨다고 알려줬어. 잠들기 전에 일기도 몇 편 읽어줬단다.
20년(6살) 2월 10일
과거 제주여행 사진을 보는데 아이가 하나도 기억을 하지 못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어릴 때는 기억 못 한다고 여행하지 말라고 하나보다.”
“엄마, 기억하는 게 중요한 거야?”
24년(10살) 10월 14일
“나 너무 늙었나?”
“아니 엄마는 그냥 나이가 든 것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