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어린이날은 경찰서에서

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by 초록테이블

4부. 용기의 다양한 이름들



1월 11일이 태국의 어린이날이라는 것은 우연히 TV에서 현지 뉴스를 보다가 알게 되었다. (1월의 두번째 토요일이 어린이날이라 매년 날짜가 달라진다고 한다.) 거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여기저기서 어린이날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고 뉴스를 보자마자 아이는 “오늘 어린이날 선물 사줄거야?” 물으며 장난꾸러기 표정을 짓는다. “일단 나가보자. 이 동네에서도 행사가 있을지 모르잖아.”


목적지 없이 이 골목 저 골목 지나다보니 한 건물앞에 ‘Children’s day Free Painting’이라고 팻말을 붙여둔 곳이 있었다 안쪽을 들여다 보니, 경찰서? 놀란 토끼 눈으로 들여다보는데 때마침 경찰들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welcome”, “Come in.”, “We have a Children’s day event.” 큰 소리로 우리를 부르며 손짓하고 있었다.

“아들, 들어가보자. 우리가 언제 또 경찰서에 가보겠어. 그리고 뭘 공짜로 시켜주는 것 같아.”


우리는 호기심과 긴장을 가득 안고 천천히 경찰서 안으로 발을 옮겼다. 올드타운 중심에 위치한 Chiangmai Tourist Police Service Center라는 이름의 관광객을 위한 경찰서였다. 때마침 방문객이 한명도 없는터라 모든 경찰관들의 시선과 관심이 우리에게로 집중되었다. 도자기에 물감으로 색칠을 할 수 있도록 재료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아이에게 어떤 것을 고를건지 서로 경쟁하듯 물어보았다. 아이는 한번에 몰려오는 외국인의 관심에 긴장하다가도 그 친절함에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며 고민하는 것을 보더니 그냥 둘다 하라며 선뜻 도자기들을 앞에 놓아주었다. 우리는 긴 테이블의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경찰들은 마치 면접을 보듯 우리 앞쪽에 빈틈없이 앉았다. 대부분 이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어린 친구들이었고 열정 넘치게 경찰서 소개를 시작했다.

“이곳은 관광객을 위한 경찰서에요. 여행 중에 위급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주세요. Tourist Police라는 App을 설치하면 경찰서와 바로 연결이 되니 설치하는 걸 추천드려요.”


경찰서 소개가 끝나고 나니 스몰톡을 빙자한 그들의 질문세례가 시작되었다. 태국이 처음인지, 치앙마이는 어떤지, 가본 곳 중 어디가 좋았는지, 무슨 음식이 맛있는지, 치앙마이의 어떤 점이 좋은지, 왜 왔는지 등등 마치 설문조사를 하는 것 처럼 꼼꼼히 물어보았다. 질문의 내용에서 그들이 사는 곳을 얼마나 애정하는지 느껴져서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 되는대로 열심히 대답했다.


“치앙마이에는 아름다운 사원이 많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사람들이 모두 친절하고. 한국에는 사원이 없냐고? 아니, 한국에도 사원은 많아. 하지만 한국의 사원은 보통 산 속에 있고, 도시에 있는 사찰도 열려있는 분위기는 아니야. 하지만 치앙마이의 사원들은 공원처럼 열려있어.”

사원 한켠에서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종교적인 공간이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쉴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모든 사원 화장실은 개방되어 있으니 여행자가 급하게 화장실을 찾느라 고생할 일도 없다.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알게 된 후 젊은 경찰들은 본인들이 알고 있는 혹은 좋아하는 한국에 대한 것들을 마구 쏟아냈다. 삼겹살, 떡볶이, 배우 송중기와 가수 블랙핑크를 이야기한다.

“태국인들에게 서울은 Dream City에요.”

정신없는 서울을 피해 이 곳에 온 나는 치앙마이가 드림시티인데, 서로에게 상대방이 사는 장소가 이상적이라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나에게는 치앙마이가 Dream City에요.”라고 답하자 의아해하면서 못믿겠다는 표정이다.


관광객을 상대하다보니 아무래도 제2외국어는 필수인 모양이었다. 자신들은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세계 어디를 가도 그렇겠지만 치앙마이에도 중국인이 많았다. 길에서 마주치는 동양인 중 7할은 중국인으로 보인다. 나도 중국어를 좀 할 수 있다고 하자 배운 것을 연습하겠다며 이제 중국어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20여년 전 배운 중국어를 끄집어 내 대화를 하고있자니 갑자기 한 친구가 질문을 한다.

“중국어도 하고 영어도 하고 한국어도 하고 대단하다. 근데 태국어는 왜 못해?”

뭔가 서운해하는 표정이 비치는 듯 해 머쓱했다. 사실 여행가기 전 기초태국어 책을 도서관에 살펴 보기도 했다. 몇글자 따라 써보려니 그림처럼 보이는 문자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서 인사 말 같은 것만 노트에 적어 돌아왔다.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글자가 너무 어려웠어.” 라고 답하자, 계속 쓰면 익숙해진단다. 한자보다는 쉽단다. 맞는 말이다. 계속하다보면 당연히 익숙해지겠지. 미안한 마음이 불쑥 올라와, 다음번에는 조금 더 공부를 해서 오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아니면 태국에서 기초태국어 수업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아이는 도자기에 물감으로 색칠을 하면서 중간중간 나를 힐끔 쳐다본다. 영어로 중국어로 한참 대화하는게 신기한지 “무슨 말을 그렇게 재미있게 해?, “저 분이 뭐라셔?” 묻는다. 통역을 해주니, 자기도 이제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과 눈을 맞춘다. 외국인 꼬마의 행동이 귀여운지 어디선가 사탕과 과자를 들고 와 호감을 산다. 그리고 이번에는 가장 선배로 보이는 분이 다가와 아이에게 배드민턴을 치겠냐고 묻는다. 자신이 없다고 쭈뼛대는 아이에게 경찰관은 “어린이날이니까 모든게 다 괜찮아.”하며 삼촌처럼 아이 앞으로 살살 공을 올려준다. 참 정다웠다. “외국에서 경찰이랑 배드민턴 쳐 본 사람은 세상에 너 밖에 없을거야.” 하며 엄지를 치켜세우니 본인도 어깨를 으쓱한다.


시간이 꽤 흘러 다음을 기약하며 엉덩이를 뗐다. 그리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나는 다시 치앙마이에 오겠다는 다짐의 말을 건넸다. 지금 찍은 이 사진을 들고 그들을 찾아가는 상상을 해본다. 우리에게 잊지못할 어린이날 추억을 선물해준 그들은, 여전히 우리를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는 지금도 가끔 사진첩을 열어보며 그날을 떠올리는데.

다음에 치앙마이에 갈 때는 컵떡볶이를 사서 경찰서를 찾아갈 생각이다. 그들을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Chiangmai Tourist Police Service Center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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