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다짐

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by 초록테이블

4부. 용기의 다양한 이름들



김영하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본인을 이해하게 된다고.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바로 이런 사람이고, 그래서 에세이고 소설이고 할 것 없이 열심히 읽어대고 치열하게 공감한다.

글을 통해서 이해되지 않던 나를 서서히 알아가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나를 용서하고 나를 보듬는 경험을 했다. 여러 작가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그들 덕분에 그동안 내가 살아낼 수 있었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겨냈고, 나를 좀 더 아끼게 되었다.


그 빚을 어떻게 다 갚나. 일종의 부채감 같은 것이 생겼고 자연스레 나도 혹시 누군가에게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단한 문장력이 아니어도, 남다르고 특별한 경험이 없어도, 유명하거나 관심이 가는 인물이 아니어도, 그렇더라도 내 글이 누군가에게 공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기대가 조금 있다. 왜냐면 나도 평범한 문장에서 울컥하기도 했으니까.


희망과 좌절은 항상 쌍으로 움직인다. 희망회로를 돌릴라치면, 바로 좌절이 따라붙어서 ‘이 정도 글을 어떻게 사람들 앞에 내놓으려고 해’ 라며 다그친다. 좋은 책을 읽고 나서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하다가도 ‘너는 이 작가의 100분의 1만큼도 못쓰잖아’ 하고 스스로의 뼈를 때린다. ‘그래도 쓸 수 있겠니’ 하고 자문하면 ‘그래도 일단 써볼래’ 하고 답한다. 안 쓰면 가능성이 0이지만 쓰면 가능성이 1 이상이 된다.


글을 쓰다 보면 자주 내가 생각하지 못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특히 아이에 관련된 것들이 더 그렇다. 내가 아이에게 왜 이렇게 하고 있는지, 왜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그냥 생각을 하면 모호하던 것들이 글을 쓰다 보면 알겠다 싶다. 내가 왜 고집스럽게 내 방식대로 키우고 싶어 하는지, 내가 왜 아이와의 스킨십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같은 주제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나에게 물어본다. 그러면서 나의 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아픔이나 고정관념 같은 것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과 지난날들의 과정, 나의 성공과 실패가 모두 쌓이고 뭉치고 깎이고 다듬어져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리고 덧붙이고 싶은 것들을 보태고 꾹꾹 눌러서 나를 키운다. 가운데 들어앉은 핵은 어린 시절의 나이기에 툭 떼어내지는 것이 아닐 거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는 계속 괜찮은 것들을 붙여나가면 된다. 무엇을 더 키우고 더 넓힐 것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계속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고, 그것들도 모두 나다.


아이에게 완벽한 엄마이고 싶지만, 반대로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아이가 알아주면 좋겠다. 대신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듯 나도 내가 성장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러면 적어도 아이가 쉽게 실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엄마가 노력하고 있는 건 맞아’, ‘엄마가 예전보다는 훨씬 좋아졌어’ 이런 마음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나도 아이에게 쉽게 실망하지는 않을 거다. 아이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을 인정해 주겠다. 이것은 이 지면을 빌린 나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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