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록_나에게 돌아가는 길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저녁 먹을 때가 다 되었다. 원래는 보얼예술특구 근처에서 오리고기 덮밥을 먹고 싶었는데 너무 걷다 보니 지쳐서 흐지부지 된 거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일단 책상에 앉는다. 보고 느낀 것들이 날아갈세라 노트에 끄적여둔다. 생각나는 것을 작은 노트에 마구잡이로 써놓고 보니 벌써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 집중력 있네. 문제는 집중력이 아니라, 배가 너무 고파졌다는 사실이다. 6시인데 밖이 벌써 어둑하다. 숙소에서 18분 거리에 우바오춘이라는 유명한 빵집이 있다고 해서 빵을 하나 사 오기로 하고 길을 나선다.
대로로 움직이는데도 어둡고 낯선 길이라 조금 긴장된다. 야맹증은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벌써 문을 닫은 상점들이 많아 더 어둡다. 여기는 다들 늦게까지는 일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 같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일하거나, 이른 저녁에 마무리하는 곳이 많았다. 무리하지 않는 것 같아서 좋아 보인다. 절반정도 온 것 같은데 비가 조금 뿌리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가자니 귀찮고, 돌아갔는데 비가 그치면 후회할 것 같아서 그냥 계속 갔다.
우바오춘에 도착. 6시 반 밖에 되지 않았는데, 남아있는 빵이 거의 없다. 잘츠부르크(Salzburg)라는 이름의 샌드위치를 고르고 펑리수가 있어 9개 샀다. 유통기한이 많이 남지 않은 펑리수는 2+1이란다. 한국 가서 바로 먹을 거니까 싼 걸로 골랐다.
계산을 하고 에코백에 빵을 주워 담은 후 밖을 내다보니 빗줄기가 굵어졌다. 바로 옆이 스타벅스인데 들어가야 하나? 주변에 우산을 살 편의점이 있나? 카페에서 시간 보내다가 비가 더 많이 오면 안 되잖아! 주변에 우산 살만한 곳이 없다! 그래서, 달렸다.
비를 맞으며 열심히 뛰었다. 에코백 안에 들어있는 펑리수가 흔들리면서 부서지지 않도록 가방을 복주머니처럼 움켜쥐었다. 눈에 들어가는 빗방울을 손수건으로 연신 닦아냈다. 뛰면서 가오슝 사람들이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가 궁금했다. 외국인인 게 티가 나려나? 왜 택시를 안 타고 이렇게 뛰는지 이상해 보일까? 음, 나름 낭만이라고 하자. 평소에 러닝을 좀 한 게 다행인가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빗속을 가볍게 뛰었다. 낭만을 떠올려서 그런지, 아니면 밤길이 무서워서 그런지 평소보다 쉽게 속도가 난 것도 같다. 비를 맞으며 꽤 잘 뛰는 내가 웃기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13분 걸렸다. 잘했다. 두고두고 생각날 우중러닝이다.
돌아와서 뜨거운 물로 몸을 씻고 젖은 옷과 에코백을 널어두고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아까 산 잘츠부르크 빵에 맥주다. 이 빵의 이름이 왜 잘츠부르크인지 궁금해하면서 한입을 베어 물고 오물오물 씹는데 풍미가 참 좋다. 지금까지 내가 빵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맛있는 빵은 좋아하는 것 같다. 오늘 몇 보나 걸었는지 만보기를 체크해 보니 21,335걸음이다. 아이고 수고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