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록_나에게 돌아가는 길
엥? 다섯 시 반? 여행지에서 눈뜬 첫날 아침에 다섯 시 반 기상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다시 머리와 몸을 푹신한 침대에 파묻고 웹툰 몇 편을 보며 뒹굴거린다. 여섯 시가 넘으니 사위가 밝아진다. 상온에 둔 생수를 반 정도 마시고 러닝 힙색에 200 TWD, 호텔 열쇠, 휴대폰, 이어폰을 챙겨 호텔을 빠져나왔다.
가오슝 시립 문화센터가 호텔 바로 옆에 있다. 여행 가기 전 미리 체크해 둔 장소다. 여행지에서 꼭 아침 달리기를 하고 싶어서다. 잘 달리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뛰어보자' 하는 마음은 아니었고, 작은 공원이 옆에 있으면 했다.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문화센터를 품고 있는 공원에는 이른 아침에도 사람들이 꽤 많다. 대부분 어르신이다. 삼삼오오 모여 체조를 하고, 달리기로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돈다. 서울에서도 오전 6시에 러닝을 하러 나가면 어르신이 많다. 하루를 운동으로 시작하는 모습, 나보다 훨씬 잘 달리는 모습에 좋은 자극을 잔뜩 받곤 한다.
가오슝의 월요일 아침, 어르신들이 달리는 길을 따라 나도 달리기를 시작한다. 아직은 초보라 숨 쉬는 것과 착지하는데 온 신경을 쏟는다. 코로 두 번 들이마시고 입으로 두 번 내쉬라고 했는데, 좀 달리다 보면 입을 열고 헥헥거리고 있다. 숨쉬기가 엉망이라도 그냥 더 뛰는 게 낫나? 숨쉬기를 제대로 못하면 소용이 없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호흡이 더 꼬인다. 그러면 다시 집중해서 "습습- 후후-"
크게 두 바퀴를 달리니 2km 정도 된다. 더는 못 뛰겠다 싶어 한 바퀴를 걷는다. 3km를 채우지 못한 것보다는, 2km를 꽤 잘 뛰었다고 나를 칭찬해 줬다. '중간에 좀 걸었는데도 6분대면 나름 잘 뛴 거야.'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지만 날씨가 무더웠다. 체감온도가 36도란다. '그래, 내가 더 뛸 수 있었는데, 날씨가 너무 덥네.'
한 바퀴를 걸으면서 주변 풍경을 살핀다. 강한 햇살을 받은 키가 큰 나무들은 환하게 빛나고, 높은 하늘 아래 반듯하지 않은 건물들이 멋스럽다. 조용한 도시가 평화롭고 안전한 기분을 준다. 눈에 꾹 담고 나서 카메라를 켠다.
달리기를 한 탓에 몸에서 열기가 계속 오른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샤오롱바오가 된 기분이다. 조식은 주변에 찍어둔 식당 중에 샤오롱바오 전문점으로 갔다. 산동지역 음식이라고 쓰여있다. 샤오롱바오 한판과 나이차(奶茶)를 주문했다. 120 TWD = 5,500원. 만두피의 두께가 적당하고 육즙도 풍부하다. 나이차는 묽은 두유처럼 심심해서 마음에 든다. 사장님과 스몰토크가 간간이 이어진다.
"맛있어요? 여기 한국 사람들 많이 왔어요. 일본사람도 홍콩사람도 많이 왔는데, 다들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으쓱. 어디에 묵어요? 혼자 여행 왔어요? 대단하네. 대만은 치안이 좋아서 혼자 여행하기 좋아요. 전 세계에 대만같이 안전한 나라가 없어. 다음에 또 올 거죠? 다음에 언제 올 거예요? 근데 한국인은 왜 다 당신처럼 피부가 하얗고 좋아요?"
어제는 하루 종일 입에 거미줄을 쳤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중국어 듣기 평가 시작이다. 그래도 손님은 나뿐이라 편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대답했다.
"너무 맛있어요. 구글맵에 한국사람들이 리뷰를 잘 썼더라고요. 그래서 찾아왔어요. 이 근처 리즈호텔에 묵고 방금 달리기 하다가 왔어요. 대만이 정말 치안이 좋은 것 같아요. 저는 혼자 여행을 두 번 해봤는데, 두 번 다 대만이었어요. 타이베이에 두 번 가봤고, 가오슝은 처음이에요. 다음에 꼭 또 올 거예요. 아이가 샤오롱바오를 정말 좋아해서 꼭 같이 오고 싶어요. 한국은 날씨가 건조하지 않아서 피부가 다들 좋은 것 같아요."
대답하고 나니 피부 얘기는 굳이 대답을 안 해도 될 질문인 것 같긴 하다 싶었다. 모든 질문이 궁금증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데, 질문이 들어오면 꼭 대답할 거리를 찾고야 만다. 가끔은 가만히 있어도 돼.
다시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숙소로 돌아온다. 조금 돌아서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다. 걷는 내내 새파란 하늘이 보인다. 숙소로 돌아와서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새의 선물>. 읽은 줄 알았는데 안 읽은 책이다. 이런 책들이 꽤 많다. 왜 이제야 읽었는지 후회가 밀려오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순간에 이 책을 발견한 것이 선물처럼 느껴진다. 커튼을 활짝 열고, 커피를 한잔 내린 다음 책상에 앉아 읽기 시작한다. 오늘도 시작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