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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a Sep 27. 2018

메이드 인 한라산

'시장이 반찬이다'

성판악 휴게소

김밥 3,000원


며칠 전 한라산에 다녀왔다. 성판악으로 올라 관음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성판악에 도착하면 허름한 휴게소가 등산객들을 맞이한다. 이 곳에서 필요한 생수와 과자, 김밥 등 주전부리를 구입할 수 있다. 성판악으로 오르는 길에는 2개의 대피소가 있지만 매점을 운영하지 않아 이 곳이 유일무이한 매점이다.(TMI-2018년 이전에 진달래 대피소에서 매점을 운영했으나 28년간 불법 운영이 문제 되어 현재는 폐쇄됐으며 정상적인 개장을 준비 중이다.-기사 참조)


이 성판악 휴게소에서 포일로 싸 둔 김밥을 판매하는데 별다른 점심거리를 준비하지 않은 등산객들에게는 유일한 선택 안이다. 나도 사람 수에 맞춰 김밥과 물을 샀다. 물은 인 당 3병씩 가져가라는 매점 주인의 당부가 있었지만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고민하다가 그냥 인 당 2병씩 사고 말았다. 


등산은 정말 체력 소모가 큰 활동이다. 출발 전에 든든하게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출발한 지 2시간 반쯤 지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몸에서 빨리 고열량의 음식을 넣으라고 재촉하는 느낌이었다. 정상 도착 1시간 반 거리인 진달래 대피소에서 잠시 멈춰 섰다. 바닥에 털썩 앉은 채로 과자와 빵, 음료수를 허겁지겁 먹고 일어서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에 오르자 바람을 피해 옹기종기 앉은 등산객들이 모여 점심을 먹고 있었다. 제각기 싸온 음식들을 먹는 모습을 보니 또 급격하게 허기가 졌다. 나도 얼른 자리를 잡아 배낭에서 김밥과 뜨거운 물을 꺼냈다. 포일을 벗겨 김밥을 보는 순간 읭? 하고 말았다. 

한 줄인줄 알았는데 두 줄이었던 김밥

김밥은 두 줄이었다. 포일로 싸놨을 때는 당연히 두툼한 한 줄이라고 생각했는데 열어보니 얇은 김밥 두 줄이 있었다. 김밥은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얇게 부친 지단, 햄 1-2줄, 게맛살과 단무지 각각 1줄이었다. 백미가 아닌 흑미밥으로 싼 김밥을 보니 집에서 남은 찬밥에 대충 재료를 넣고 만 가정용 김밥 같아 보였다. 이게 과연 맛이 있을까, 배나 채우자는 마음으로 김밥 하나를 입에 넣었다. 


음? 의외로 맛있었다. 생김새보다 먹을만했다. 제주 몇 대 김밥처럼 구미를 당기는 맛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함께한 동행은 한 줄을 먹다 말고는 남겼다. 너무 맛이 별로라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동행은 한 명이 남긴 김밥 한 줄 마저 다 먹어버렸다. '맛있냐'라고 물으니 '살기 위해 먹는다'라고 했다. 


그래. 그래서 우리는 맛없게 생긴 이 김밥을 모두 먹어버렸나 보다. 시장하기도 하거니와 하산을 위한 체력 보충으로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김밥을 '살기 위해 맛있게 먹었다.' 한라산이 아니었다면 절대 맛있게 먹을 수 없는 이 김밥 맛이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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