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의사가 “50프로가 2주안에 사망합니다.”라고 나에게 말한지
2주가 되는 오늘, 내가 아는 나의 엄마는 여기 없다.
이미 다른 세상에 가버리고, 고통스러운 몸과 어린아이 같은 정신력이 남았다.
매일 눈을 뜨면 "집에 가고 싶어. 아빠가 보고 싶어."라고 말하던 힘도 이제는 없다.
2024년 5월 16일 일기
엄마는 집에서 거의 진통제를 먹지 않았는데,
일시적으로 삽입해둔 복수 배액관의 봉합부위를 굉장히 아파했다.
움직일 때마다 아파했고, 점점 간헐적으로 맞는 진통제의 횟수가 빈번해졌다.
2시간에 1번씩 맞을 정도로.
결국, 24시간 들어가는 수액에 섞는 진통제의 용량이 한없이 올라간다.
밤에는 주변 환자들의 고함과 목소리에 불안해져서 수면제를 맞기 시작했다.
진통제와 수면제는 엄마가 하루 종일 잠에 들게 했다.
밥을 먹다가도 자고, 휠체어를 타고 산책하는 중에도 잤다.
기저귀 가는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기 싫다며 몇 번이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했었는데,
잠에 취해 기저귀에 소변을 누었는지 조차 모르기 시작했다.
특대형 기저귀가 흘러 넘쳐 침대의 모든 시트를 젖는 일이 빈번해졌다.
소변줄 넣는 일을 미뤄오다가 당장 넣었다.
낮에도 엄마가 잠만 자서, 수면제 용량을 줄여달라고 의사에게 요청했다.
수면제 용량을 줄였더니 엄마가 또랑또랑하게 말하는 순간이 생겼다.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지리멸렬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이전부터 글를 쓰기 어려워했었는데, 이제는 전혀 글을 쓰지 못한다.
휴대폰에 ‘ㄱㅍ업’ 과 같은 이상한 문자를 눌러버리고 만다.
전화를 걸고 싶어도, 거울을 보며 전화번호를 두드리고 있다.
그 사이에 엄마의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면회를 왔다.
이모들은 외할머니의 호스피스 간병 경험자로서 담담하게 면회를 했다.
“엄마가 시간이 갈수록 욕도 하고, 못되게 굴거야. 점점 보호자가 지치게 될거고,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병동으로 옮겨서 24시간 간병하기보다 매일 면회오는 게 좋을거야.” 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2주일만에 나는 많이 지쳤다.
“너는 나 좀 이겨먹으려고 하지마.” 라며 무조건 자기 말이 맞다고 고집 피우는 엄마를 하루종일 함께하는 일이 버거워졌다.
기분 좋게 산책을 나가서도 “나는 이쑤씨개가 지금 필요하니까 당장 가져오라고 !!!” 소리치는 엄마에게 미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나에게로 전화를 걸어 안부 인사를 거는 친척들의 전화도 귀찮아졌다.
하지만, 당장 죽고 싶을 만큼이 힘들어도 교대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