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일기
호스피스에 입원한 지 일주일 째, 나도 불면증이 생겼다.
엄마와 함께 2시간마다 깨는 습관이 생겨버렸고, 이제 예민한 소리에도 반응한다.
더군다나 한번 일어나면 잠들기 어려워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자야만 한다.
어젯밤은 밤 귀신이 엄마에게서 옆 환자로 옮겨갔다.
담낭암 말기 환자로 눈의 흰자위가 노랗게 물들어 초점 없는 눈동자만 굴러가는 듯 했다.
일주일 내내 물 몇 모금 외에는 움직이지 않고 주무시기만 했다.
어제부터 의식이 잠깐 돌아왔는지 꾹 닫고 있던 입을 열어 힘겨운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온몸이 아파.”, “집에 가고 싶어.”
쫄깃쫄깃한 칼국수를 선전하는 티비 프로를 보고서는 “나도 쫄깃쫄깃하게 앉아있을래.”라고 말하여, 방에 있던 모든 이들을 웃게 만들기도 했다.
모두가 잠든 밤, 옆 환자가 부스럭거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통증을 느끼지 않고 잘 때,
나도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한다는 생각으로 무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예민한 귀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끙끙거리며 몸을 움직이는 듯하더니, 커튼을 젖혔다.
열린 커튼 사이에 초점 없는 눈으로 우릴 쳐다보고 있었지만,
소름이 끼쳐서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눈길에 못이겨 옆 환자에게 다가갔다.간병인은 깊은 잠을 자는 건지 꿈쩍하지 않았고 환자는 혼자서 옆으로 몸을 돌리고, 침대 난간을 내렸다.
이대로 가만두면 침대 밑으로 떨어졌을 지도 모른다.
간호사를 얼른 부르니, 환자는 말했다.
“제발 한번만, 떨어지게 해주세요.”, “한번만 떨어지게 해주세요...”
잠시 의식이 돌아왔을 때, 말기 암의 고통 속에서 완전히 벗어날 기회를 잡으려 했던 것일까,
섬망으로 인해 잘못 내뱉는 말들일 까 모르겠다.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뜬 눈으로 지새면서 생각했다.
간병이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나의 직업이 간호사이며, 엄마와 같은 성별이라는 이유로
엄마의 간병을 도맡아하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간호와 간병은 육체 노동과 감정 노동을 함께 겪는 다는 점에서 공통점도 많지만,
대상이 가족이 된다면, 노동의 무게감이 훨씬 커지는 것 같다.
간호사라는 옷을 안 입어서 일까?
전문적인 사실을 전달해도, 엄마는 “왜 나를 이겨먹으려고만 해?”라고 말한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한다.
밤에는 기다란 효자손으로 간이 침대에 있는 날 쿡쿡 찌르는데,
“간호사 부르기 미안해서 밤에 널 부른건데, 이어폰만 끼면 밤에 깨워도 대답을 안하더라.” 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눈물이 핑 돌 뻔했다.
대신 아파줄 수 없기에, 무조건적으로 기다려주고 져줘야 하는데
육체적인 피로가 쌓이자, 웃음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옳은 건 옳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버리게 된다.
더군다나, 엄마가 점점 언어 구사 능력이 감소하고 있다.
날짜를 헷갈려하자 일기를 쓰게 했는데, 단어를 떠올리는 데 굉장한 시간이 들었다.
단어가 떠올라도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기가 어렵다.
일기나 문자 메세지를 쓰는 것이 버거우며, 대화에도 빈틈이 생기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의 일부분을 생략하고 말하다보니, 엄마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갑자기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라고 생각하게 된다.
오늘은 음악치료사 선생님이 와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최근 좋아하게 된 바람의 노래도 들었고,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찔레꽃 노래를 듣고 싶어요.” 라고 엄마가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찔레꽃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는 엄마를 보며, 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도 옆 환자의 언니가 면회하는 모습을 보고 펑펑 울었던 엄마다.
“나도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못 지킨 게 한이야. 기차를 놓치지 않았다면 엄마를 만날 수 있었을텐데..”
“저 분도 오늘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임종 소식을 들으면 어쩌지..”
“섬망이 오면 오늘 바로 죽는 거야?”..
내일은 피곤해도 더 사랑해줄게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