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해보겠습니다
이번 추석 연휴는 추석 당일 전날 적어도 8시 전까지 준비를 마무리해야만 했다. 제사를 지내는 집이라면 음식 준비, 제사를 지내지 않더라도 집안 청소며 명절 맞이 준비를 미리 끝내야 했다. 추석 전날 8시 30분 한가위 대기획 '나훈아 콘서트'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떨결에 나도 2시간 30분 간 펼쳐진 나훈아의 콘서트를 정주행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깊은 감동'이라니. 이렇게 간단히 정리해도 되나 싶지만 분명 차원이 다른 감동이 있었다. '단 한 번의 기회'라는 타이틀로 재방송도, 다시보기 서비스도 없던 이 콘서트가 끝나고 SNS에는 할머니 때문에 보다가 팬이 되었다는 2,30대들의 직관 후기가 넘쳐났다. 순간 시청률은 70%를 돌파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강제 이동 명령의 대안으로 기획된 것이라는 농담이 농담이 아니라 진짜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그가 부른 노래들과 주옥같은 메시지는 수없이 회자되었다. 이 콘서트가 나에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던 가장 큰 이유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왠 나이 이야기인가 하면, 2020년 1분기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되고, 코로나가 끝날 뻔했던 2분기, 끝날 줄 알았던 3분기가 지나고 막 4분기로 진입한 10월, 문득 허무한 감정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여전히 거리두기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고,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여러 제약으로 인한 피로도가 누적되어 가던 시점이었다. 언제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고 싶은 일상의 기억도 감각도 무뎌지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2020년 리셋 버튼을 누르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1년이 허망하다 생각했는데 73살의 나훈아가 펼치는 무대의 에너지와 열정, 노래에 담긴 감정과 성찰의 깊이가 가슴을 울렸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지금도 계속 회자되고 있는 나훈아의 2020년 신곡 '테스형'이다. 테스형이 누군가 하면, 너 자신을 알라던 바로 그 소크라테스형.
소크라테스를 테스형이라 부를 호기는 있어도 여전히 세상이 왜 이런지, 세월이 왜 이런지는 모르겠다. 70대가 되어도 사는 게 힘들다. 그런데 이 가사가 수많은 2, 30대 아니, 전 세대의 심금을 울린 것은, 70대가 되어도 사는 게 힘들다니 살아서 무엇하냐는 절망이 아니라, 사는 게 원래 그런 거라는, 누구나 고통을 겪으며 그렇게 살아간다는 위로를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누구의 마음이라도 그 문을 두드리는 보편적 위로.
테스형도 모른다는, 사는 게 힘든 이유.
테스형을 외치는 노랫말 중 가장 와 닿았던 구절은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였다. 세월은 그저 오는 오늘처럼 그 자체로 고마운 일이지만, 70년을 더 살아도 내일이 두렵다. 그저 오는 시간을 잘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여전히 어려운 일인 것이다. 테스형에게 물어도 모른다고 한다.
여전히 어려운 내일을 살아내며 50년을 노래하고 있는 나훈아를 보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내일이 두려우면서도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오래, 꾸준히, 계속하고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정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에게 물어보아도 모르고, 앞으로도 산다는 것은 늘 두렵고 힘든 일일 테지만, 그저 와준 오늘을 고맙게 여기며 계속 노래를 만들고, 노랫말을 쓰고, 노래한다는 것. 시간과 세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의 지친 마음과 균열이 생긴 일상에 위로와 감동을 전할 수 있다는 것.
콘서트를 진행한 80대의 김동건 아나운서가 나훈아에게 100살까지 노래해 달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나훈아는 무대 위에서 온몸과 마음을 바쳐 대답했다.
네. 계속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