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내 마음에 듭니다
설날 아침 제사를 지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우리 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마다 절을 하며 (사실 조금 무념무상) 늘 되뇌었던 말이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올 한 해도 잘 보살펴 주세요. 지켜주세요. 우리 가족 다 건강하게 해 주세요.
좀 더 어렸을 때는 주일 미사도 안 가면서 천주교 모태 신앙인 내가 이런 걸 빌어도 되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다고 또 제사에 엄청난 의미를 두는 유교 집안도 아니었기에 알 수 없는 혼종 상태에서 그렇다고 뭐 딱히 복잡한 마음도 아니고, 그저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드리는 마음으로 저렇게 바람을 되뇌곤 했다.
아마도 제사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지내 왔겠지만, 기도와 같이 무언가를 빌고 바라는 일을 알게 된 어린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이제 정말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가족의 제사를 지내게 되면서부터. 항상 술잔을 향 위에 세 번 돌리며, 잔을 올리며, 두 번 절을 하며 늘 빌었다.
잘 되게 해 주세요. 보살펴 주세요, 지켜 주세요.
그런데 올해의 설 제사를 지내는데 처음으로 이런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할머니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정말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제사상을 앞에 두고 감사하다는 말이 나온 건.
나는 정말로 그 순간 모든 것이 감사했다.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것도 없고, 그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명절이었음에도 거의 삼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감사하다는 말이 마음속에서 나도 모르게 감탄처럼 튀어나왔다.
왜일까.
가장 최근에 제사를 지냈던 지난 추석과 지금의 설 명절을 비교해 보자면 무엇이 달라졌길래 나는 이렇게 더 바랄 것도 없이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면 제일 큰 변화는 1년 넘게 쓴 글을 엮어 내 이름으로 출간한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지난 해 태어나 설 연휴 끝나고 첫 돌을 앞둔 조카는 건강하게 자랐다. 큰 불행도 작은 불행도 없어 감사하고, 무엇보다 지금의 내 삶이 내 마음에 든다. 늘 새로운 바람과 결핍 속에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시간도 있었고, 남의 마음에 들고 싶어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해방처럼 요즘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이 이거다. 나는 지금의 내 삶이 마음에 든다는 것. 누가 뭐래도 그 누구의 마음보다 내 마음에 든다는 것.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며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온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몇 해전 돌아가신 황현산 선생님께서, 살면서 제일 황당한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하셨다. 준비만 하다가 갑자기 늙어버렸다고 하셨는데, 영영 어른이 되지 못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도 계속 '태어나서 처음' 맞는 순간이 있다면. 내 인생이 점점 더 내 마음에 들어간다면. 잘 되게 해 주세요, 하는 바람보다 그저 탄성처럼 감사합니다, 하는 순간이 많아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