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회사 과장님과 점심을 먹었다. 최근에 회사의 부장님 한분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아.. 너무도 황망한 일인데 이렇게 한 문장으로 써질 수 있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난다.
그 부장님과 각별히 가장 오랜 시간 일했던 과장님이 갑자기 점심을 먹자고 하셨다.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도움을 주어 고맙다며 식사를 대접하시겠다고 했다.
식사 자리에서 마치 그러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돌아가신 부장님에 대한 이야기만 빼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내가 물었다.
"왜 걸어가겠다고 하셨을까요?"
계속 품고 있었던 의문이었다.
돌아가신 부장님은 회식 후 퇴근길 걸어가시던 중 음주운전 차량에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걸어가실 만한 거리가 아니었고, 차로도 족히 십 분은 걸리는 거리였다. 그 길을 왜 걸어가겠다고 하셨을까. 이제는 품어도 소용없는 의문이었다.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한동안 말이 없던 과장님은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최근에 꿈을 꿨어요.
꿈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부장님이 돌아가시기 삼 일 전으로 간 거예요.
팀 전체가 다 같이 워크샵을 갔는지, 어떤 펜션 같은 곳이었는데, 그 펜션 부엌에서 부장님이 요리를 하고 계셨어요. 그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제가 무릎을 꿇고 부장님 바지 자락을 잡고 막 오열을 했어요.
엉엉 울면서 말했어요.
부장님 제발 걸어가지 마세요. 택시 타고 가세요.
과장님은 차오르는 눈물을 조용히 손으로 닦았다. 나는 그 슬픔의 깊이가 가늠이 되지 않기도 하고 또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해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조금은 알 것 같았던 이유는 나 역시 내내 그 생각뿐이었기 때문이다. 왜 걸어가셨을까. 왜 걸어가셨지. 왜 걸어가셨어요. 자꾸만 되물었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겠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서였다. 되돌릴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과장님 꿈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것은 '타임머신을 타고'라는 말이다.
가슴이 미어지는 말.
꿈에서도 우리는 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꿈에서조차 타임머신을 타고 간다. 꿈에서 만이라도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데. 타임머신을 타고서밖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우리는 안다.
부장님이 돌아가시고 한 달 쯤의 시간이 흘렀다. 부모님께 더 자주 전화해야지,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말아야지,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후회 없이 살아야지 같은 그때 당시의 간절했던 결심은 어느새 흐릿해지고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일상을 살고 있다.
더 잘 살겠다는 다짐은 흐릿해졌지만, 과장님의 꿈 이야기를 들은 이후, ‘시간’의 되돌릴 수 없음은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렬한 불가항력으로 다가온다.
되돌릴 수 없으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기보다는 후회할 말을 적게 해야 한다는 것, 유한한 시간을 마음대로 살기보다는 아끼고 아껴서 써야함을 가슴 아프게 느끼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는 꿈처럼, 꿈에서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