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싶습니다
나는 주로 혼자 지낸다. 집에서 입을 다물고 홀로 일한다. 코로나 이전부터 그랬다. 내 안에 많은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해서 꼭 사람을 많이 만나며 지내야 하는 건 아니다. 시끌벅적한 자리에서 마음이 텅 비기도 한다는 걸 안다. 고요한 일상에서 마음이 꽉 차기도 한다는 걸 안다. 20매 분량의 원고 한편을 완성하기 위해 최소한 얼마만큼 고독해야 하는지도 안다.
- 일간 이슬아, '아무도 아닌, 동시에 이백 명인 어떤 사람' 중에서.
동생과 함께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하고 완전히 독립한 지 만 3년이 지났다. 이사한 집에서, 또 이제는 익숙한 동네 곳곳의 카페에서 쓴 글들을 모아 책 한 권을 출간하고 4개월이 지났다. 혼자 살기 시작한 것과 글을 쓰는 일 사이에 특별한 연결고리는 없지만 둘 다 고독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디에도 없던 자유와 행복을 느꼈다. 고독했지만 그 시간이 필요했고,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지만 또 혼자만의 시간이 강렬히 필요했다. 이 아이러니함이 주는 묘한 긴장과 균형감이 좋았다. 그러다 최근에 조금씩 나는 이 고독을 견디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에 구독 중인 '일간 이슬아' 속 이 글을 만났다.
고독을 견디고 있는 거라면 스스로가 조금 가엾어지려던 찰나였다. 무엇을 위해 견디고 있나 고민하려던 찰나였다. 그런 찰나에, 집에서 입을 다물고 홀로 일한다는 작가의 말에, 20매 분량의 원고 한편을 완성하기 위해 최소한 얼마만큼 고독해야 하는지도 안다는 작가의 말에 나는 더 고독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여야만 하는 필연적인 시간, 그 아이러니한 시간 속에서도 나는 다만 고독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고독을 사랑하게 되기를. 더 나아가 오래 고독 속에 머물 수 있는 체력만을 소망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얼마 전 서점에 가서 단숨에 읽은 책 '지금, 인생의 체력을 길러야 할 때' 속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자기 자신에게 호기심을 가지라'
이는 더 건강하고 행복하며 자기 다운 삶을 사는 방법이었다. 호기심의 레이더를 나 자신에게 두는 일. 타인의 시선이나 관심, 남이 보는 나에서 벗어나, 걷고 자고 먹는 사소한 일상에서 나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는 일.
때로는 사소한 것도 해내지 못하는 나를 비난하기도 하고, 그런 내가 내 마음이 들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나는 언제 기쁜지, 언제 마음이 아픈지, 어느 때 가장 충만한 행복으로 가득 차는지를 알아차리기 위해 끊임없는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
2021년도 어느새 2분기에 접어들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자유로운 고독 속에서 지내고 싶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실험을 하며 지내야겠다. 고독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며, 외로움과 다정하게 마주하며, 흐트러진 자세를 바르게 하는 체력을 기르며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나의 해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