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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팔 May 17. 2021

[생각 20] 젊은 애가 왜 이리 열정이 없어?

열정페이 같은 소리하네


한때 일을 배우고 싶어 열정페이를 자처하면서까지 일에 전념한 적이 있었다. 생활비로 쓰기엔 매우 빠듯한 돈이었지만, '이 업계가 그래.'라는 말 하나로 내 입을 저절로 다물게 만드는 (하늘 같은) 선배님들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 몇 개월 혹은 몇 년만 이 바닥에서 고생하면 나도 업계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겠지? 한껏 부풀었던 꿈을 안고 사회로 발을 내디뎠다. 내 자신도 참 다행이라 생각하는 점은 어느 곳이든 선배님들이 참 많이 도와주실 정도로 선배 인복이 좋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인복이 좋지 못했다. 바로 '사장' 인복이었다. 


어느 곳에서는 사장이 직원들에게 폭언을 일삼으면서도 본인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으며, 어느 사장은 내가 너한테 그딴소리 들어야겠냐며 작은 건의에도 길길이 날뛰었다. 젊은 사장이라 다행이라 여겼던 사람은 직원을 기계 부품 갈아치우듯 생각했고, 또 다른 사장은 내가 아파서 결근하는 걸 거짓말이라며 믿지 않아 한참 구구절절 내가 정말 아프다고 설명해야 했다. 그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한껏 쪼그라들었다 부풀길 반복했다. 내 꿈을 한껏 푹 꺼지게 만든 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큰 역할을 했다. 빵빵하게 부푼 반죽이 바늘 하나 찔렀다고 폭 터지는 모양새였다. 


"젊은 애가 왜 이리 비실거려?"

"아직 한창인데 왜 이리 열정이 없어?"

"요즘 애들은 하나같이 끈기가 없어."


돌아보면 참 별말도 아닌 말들로 많은 밤을 지새웠다. 아까 같은 상황이었어도 그냥 내가 뒤집어쓰고 있어야 했나? 정말 내가 잘못한 걸까? 그리고 이제는 MZ세대라 뭉뚱그려 지칭하는 묶음에 속해 있는 사람으로서 사장님들께 묻고 싶은 게 있다. 도대체 예전에 사장님들은 어떻게 사셨길래 나의 열정과 의지가 없다 단언하는가? 


컴퓨터 세팅부터 온갖 전산처리, 서류처리 등등 사장님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내면 다들 그렇게 좋아하셨으면서, 조금만 틈이 보이면 '젊은 사람들은 다 하던데 넌 왜 고작 이거로 힘들다 그러냐? 더 뛰어!' 만 반복하면 열정 넘치는 젊은 사람도 맥이 빠지기 마련이다. 열심히 뛰다가도 최저시급에 못 미쳐 열정페이 쥐꼬리가 들어오거나, 온갖 생색을 내며 겨우 최저시급에 미치는 통장잔고가 찍히면 뛰던 발이 풀리는 건 덤이었다. 아직도 사무실에 놀러 온 사장님 지인이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취직시켜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요즘 것들은 정신이 글러 먹었어! 모니터 뒤에서 아연실색하며 타임머신이 진짜 개발되었나? 생각만 가득했던 지난날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현재. 한 사람만큼의 구실은 할 정도로 성장했고 돈도 (쥐꼬리만큼) 벌었지만, 이미 뒤돌아본 나의 꿈은 색이 많이 바래있었다. 그 꿈은 다시 회생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은 채, 나는 그저 내 속에서 꿈이 조용히 사그라들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배웠다. 돈이나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꿈을 키우면 오래 못 가는구나. 그냥 생각 없이 돈만 보고 달려야 하나? 그건 좀 서글프지 않을까.



어느 어르신들은 팔자 좋은 소리하고 있다며 작가라는 꿈을 비웃기도 하셨다. 전쟁도 겪지 않았고, 큰 투쟁 또한 겪지 못했으니 평화로운 세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세대는 다 본인만의 힘든 부분을 겪으며 큰다는 걸 조금은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언제는 우리더러 자라나는 새싹이라면서 왜 제 새싹은 싹둑 자르려고 하세요. 전 아직 철없는 새싹으로 남아있고 싶어요. 그리고 혹시 알아요? 정말 제가 글밥만 먹고 살게 될지. 지금은 배고픈 소크라테스일지언정 나중에는 배부른 소크라테스로 살고 싶어요. 꿈이라는 게 다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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