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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팔 May 20. 2021

[생각 22] 아이패드 덕분에 미니멀을 접할 줄이야.

페이퍼리스와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는 삶이란


학창 시절에 나는 필기구 서랍장을 따로 장만할 정도로 필기구나 문구류에 대한 욕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이 지나가다 문방구나 대형서점을 지나갈 때면 아무 목적 없이 들르곤 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문구류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게 또 하나의 재미라고 할 만큼 참 다양한 물건들이 나를 즐겁게 했다.


그 즐거움은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시간 관리 용도인 바인더를 사용하면서부터는 필기구와 주변 물품에 대한 관심이 최대치로 올랐다. 그만큼 지갑은 텅텅 비어갔음이 자명했다. 그래도 같은 취미의 사람들이 모이면 마냥 즐거웠다. 찬란한 무지갯빛을 손에 잡아끌어다 내 종이에 쓰윽 문지르는 그 느낌은 아직도 가슴을 설레게 할 만큼 좋다.


문구에 대한 욕심이 그득해서일까.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물욕이 굉장했었다. 옷장과 서랍장이 미어터지든 말든 나는 계속 옷과 악세사리를 사 모았다. 책장과 책상 밑 서랍장 또한 칸칸마다 물건과 욕망으로 가득 메꿨다. 메고 다니는 가방에는 온갖 다양한 잡동사니가 들어가 있었다. 친한 지인들과 친구들은 내 가방을 보고 '도라에몽 가방'이라고 할 만큼 만물상처럼 물건을 이고 지고 다녔다.


그리고 이 모든 생활이 새 아이패드를 사면서부터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사용했던 첫 아이패드는 아이패드 미니2 레티나였다. 기억도 나지 않을 대학생 시절, 친구가 새로운 아이패드를 사자 태블릿PC를 사고 싶지만 지갑 사정이 넉넉지 않은 대학생은 친구의 아이패드를 중고로 사들였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가끔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 나는 사양 같은 건 잘 모른 채 처음 접하는 iOS 체제와 기기에 익숙해지느라 버벅대던 시간이 먼저였다.


아이패드 미니2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아이패드를 잘 사용하지 않았었다. 정작 친구에게서 중고로 사들였지만 가끔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는 목적이 전부였고, 모바일 게임을 (잘하지 못해서) 즐기지 않은 지 오래인지라, 나에게 아이패드란 조금 더 크고 전화가 안 되는 핸드폰에 불과했다. 하지만 iOS에 익숙해지고 태블릿PC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아는 익숙함을 얻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2018년에 아이패드 6세대를 샀다. 직장인이 되어 처음 3개월 무이자 할부를 긁었었고, 할부가 무섭다는 걸 깨달은 때였다. 첫 아이패드를 중고로 살 때와 다른 점은 사용할 목적이 분명했다. 시간 관리 바인더를 작성하고 있었기에 PDF를 이용해 굿노트로 바인더를 작성하려는 게 제일 컸고, 업무 보조의 역할과 책을 더 많이 쉽게 접하려는 목적이 그다음이었다.


기기 하나로 인해 삶이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미 책 40권 정도를 팔아서 마련했던 전자책 리더기를 중고로 팔았다. 아이패드 미니2 레티나는 아버지에게(!) 중고로 팔았다. 아이패드 6세대를 사면서 책장에 남아있던 있던 책 대부분을 처분했다. 전혀 살펴보지 않지만, 추억 삼아 가지고 있던 지난 일기와 스케쥴러, 가계부를 스캔해 PDF로 저장한 후 폐지함에 옮겨졌다. (여담이지만 가계부는 남았고, 일기와 스케쥴러 대부분 파일이 깨져 열리지 않는다. 여러분 자료 백업은 항상 목숨처럼 하세요..) 공부를 할 일이 있거나 뉴스 스크랩을 할 때 또한 캡처 후 애플펜슬로 느낀 점이나 자료 요약을 했다. 페이퍼리스의 삶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삶의 변화 중 제일 신기했던 건 페이퍼리스의 삶이 점차 넓어지자 가방 자체가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다채로운 형광펜, 펜과 샤프, 지우개, 수정테이프 등등이 필요가 없어졌으니 필통 자체를 챙기지 않았다. 읽는 책은 모두 아이패드에 들어가 있으니 두꺼운 책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바인더도 아이패드로 작성하니 바인더 또한 무겁게 챙길 필요가 없었다. 보부상 같던 가방에 내용물이 하나둘 빠지자 조금씩 가볍고 실용적인 가방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가방이 작아지자 꼭 필요한 물품과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품을 구별해 챙겨 넣었다.


하지만 나는 딱 한 가지 문제점을 간과했다. 멋모르고 작은 용량의 아이패드를 산 것. 무려 32GB(!) 아이패드를 사다니. 매번 용량이 가득 차서 메모리 비우라고 삐용삐용 알람 띄웠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앞이 깜깜하다. 손에 든 물건은 비웠지만, 아직 마음속 욕심은 비우지 못한 탓에 전자책을 다운받으면 절대 지우지 않고 모두 저장해두는 나였고, 뉴스 스크랩과 일기가 늘어갈수록 쌓이는 PDF가 어마어마했다. 지금도 설마 텍스트만 이용하는데 32GB를 다 채우겠어? 아하하하. 라고 태평하게 생각한 과거 나의 등짝을 매우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다. 정신 차려! 제발 용량 큰 거 사! 결국, 용량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아직도 멀쩡한 기기를 단순히 용량 때문에 바꿔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새로운 아이패드가 출시되기까지 긴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드디어 2020년 아이패드 에어4가 출시되었다. 정말...정말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려고 몰리는 사람들이 많더라. 공홈 이벤트부터 여러 인터넷 쇼핑몰을 뒤진 결과 나름 (당시에) 괜찮았던 가격으로 에어4를 구입했다. 눈물을 머금고 애플펜슬2와 주변기기를 다시 샀으며...! (어차피 애플펜슬1 잃어버려서 다시 사야 했다.) 이번에는 펜슬을 잃어버리지 않게 아예 펜슬까지 일체형으로 같이 넣어둘 수 있는 아이패드 케이스를 샀다.


지금 가방의 기본 아이템은 핸드폰과 아이패드, (가끔 로지텍 키즈투고 키보드), 텀블러, 에어팟 프로, 카드지갑, 미니 소독제, 비상약 몇 개 정도로 줄어들었다. 에코백에 담아도 어깨에 부담이 가지 않는 정도의 짐으로 줄이고 나니 삶 전체가 한결 가벼워졌다.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아예 사지 않고, 세일 문자나 광고를 보아도 notion의 내 물품 재고(!)리스트를 보고 지금 꼭 사야 하는 물건인지, 아니면 아직 여유가 있는지 확인한 후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지인 대부분이 재고리스트와 홍차 리스트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기록하고 체크하던 습관이 어디 가겠는가...) 그리고 지갑을 조금 더 두툼하게 지킬 수 있다.


또 다른 변화는 가벼운 블루투스 키보드만 있으면 어디서든 글을 작성할 수 있다는 거였다. 디지털 노마드 책을 읽고 '활자 외에 어디에도 메여있지 삶을 살겠다.' 했던 다짐을 서서히 이뤄가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만 하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이나 편집한 사진 또한 아이패드에서 작업한 뒤 업로드 한다. 사람을 마주하는 삶에서 서서히 활자와 노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손과 마음이 모두 가벼워져 행복한 날이 많아졌다. 한번은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책을 읽고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어디든 노닐다 엉덩이 붙이는 곳이 내 집 앞뜰이 된 기분이랄까. 비워내는 기분이 참으로 좋다는 걸 뒤늦게 알아 아쉽기도 한 요즘이다.


주변에서 내가 아이패드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들 따라 샀지만, 그들에게 모두 똑같은 소리를 던졌었다. 뚜렷한 사용 목적이 없으면 비싼 장난감 되는 거 순식간이에요. 꼭 사용목적을 정확히 잡고 사는 걸 추천 드려요. 이 글을 읽는 감사한 분들께도 똑같이 당부드린다. 꼭 사용 목적을 정하고 기기를 사세요. 그럼 더 멋지고 간결한 삶이 펼쳐질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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