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이팔 Jun 14. 2021

[생각 24] 라떼는 말이야. 집이 없었어.

소유욕이 없는 게 아니라 애초에 가질 수 없었습니다.



가끔 지인들이나 친구들이 넌 참 돈 안 쓴다. 그렇게 안 쓰고 살면 스트레스 안 받아? 라고 묻는 경우가 있었다. 누가 돈을 안 쓰고 싶겠는가. 어떻게 하면 돈을 안 쓸 수 있냐는 물음에 답을 해주고 나면 대부분 뻔히 알고 있는데도 실천하기 어려운 답밖에 할 수 없었다. 다들 의지가 대단하다고 고개를 절레절레하곤 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돈을 쓸래야 쓸 수 없었던 내 어린 시절이 조금은 서글펐다.


말하는 모든 게 욕심으로 비칠 때가 있었다. 슈퍼 계산대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츄파춥스 하나. 조금 더 손에 묻지 않거나 색이 다양한 크레파스. 불이 반짝반짝 나던 볼펜. 겨우 가지고 싶었던 게 이거였냐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집도 절도 없이 가게 뒤쪽 한켠에 미닫이문을 달아 놓고 십 년 넘게 살았던 우리 가족은 뭐든 아껴야만 살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그래야 '살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힘겹게 일곱 살 고개를 넘어 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동갑인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친구가 많다는 건 그만큼 사람을 만날 일도 많고 지출이 많아진다는 걸 뜻한다. 초등학교까지 해도 몰랐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출발 선상이 매우 다르다는 걸. 대충 우리 집과 친구네 집은 금전적 상황이 다르다는 걸 느꼈던 건 열살즈음이었다. 용돈을 받는 액수 단위 대부터 다른 친구들이 나타나면서부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돈으로 시작해 돈으로 굴러가고 돈으로 마무리가 되는 사회였다. 아. 나는 아껴야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구나. 본능적인 깨달음이었다.


그때부터 용돈 기입장을 악착같이 쓰기 시작했다. 돈을 벌려면 무조건 움직여야 했고, 움직이지 않으려면 공부라도 잘해야 했다. 공부에 대한 즐거움보다는 용돈을 받는 즐거움으로 공부를 했었던 것 같다. 설거지하거나 원룸보다 작은 집 청소를 하며 용돈을 받았다. 매일같이 추가 용돈을 타가는 자식에 부모님은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돈을 쓰는 줄 알고 더 얹어주기도 하셨다. 이후에 조막만한 손으로 부모님에게 가득 찬 돼지 저금통을 내밀었다. 은행가서 돈 넣게 지폐로 바꿔달라고 했을 때 부모님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놀람과 쓰라림이 동시에 섞인 얼굴. 그 속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나도 모르는 불효가 참으로 많을 테다. 그때도 엄마는 지폐로 바꿔주시지 않고 같이 은행에 데려가 동전을 그대로 통장에 입금했다.


중학생 때부터 내 용돈을 독립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허락을 받아 출금이 가능한 IC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통장을 처음 털어 핸드폰을 샀다. 대부분의 친구가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핸드폰을 가지고 다녔다. 나는 내가 가지고 싶은 핸드폰을 사려면 용돈을 적어도 1~2년 모아야 살 수 있었다. 어림 없겠는 걸. 처음으로 통장을 털었다. 몇십만 원을 호가하는 최신형 핸드폰이 내 손안에 들어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 쓰는 맛은 짜릿했다. 그리고 3개월 만에 도둑맞았다. 체육 시간에 책상 서랍에 두고 간 핸드폰은 누군가 훔쳐 간 것이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엉엉 울어봤자 도둑맞은 핸드폰이 돌아올 리 만무했다. 통장에 남은 돈을 확인했다. 다행히 핸드폰을 다시 살 여력은 되었다. 그러나 한 번 더 통장을 털지는 못했다. 이 돈마저 없으면 '내 것'이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몇 개월을 핸드폰 없이 다니는 자식이 불쌍했는지 부모님이 돈을 빌려주셨다. 그리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무이자 할부의 무서움을 알았다. 매달 용돈이 만 원씩 깎여 나가고, 세뱃돈이 모두 통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엄마에게 일부가 되돌아갈 때. 아아. 어른들이 이래서 카드 쓰지 말라고 하는구나. 그걸 좀 이른 나이에 깨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어떻게 안 아끼겠는가. 나도 모르는 새에 돈을 안 쓰는 습관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엄마찬스 무이자 할부는 2년을 조금 못 채우고서야 끝이 났다. 그 후 지금까지도 큰돈을 쓸 때면 적어도 3개월 이상은 고민하고 계획을 세워 지출할 때가 많다.


조금 더 지출을 줄인 건 성인 이후 내가 스스로 돈을 벌 수 있을 때부터였다. 한 달 용돈 4만 원이던 학생이 성인이 되어 몇 시간 일한다고 몇십만 원대의 알바비를 받았다. 처음 한 달 정도 써재끼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이렇게 돈을 쓰면 다음 달의 내가 힘들구나. 돈을 미리 모아두면 이런 걸 살 수 있구나 등등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습득하게 되더라. 연습과도 같았던 대학생 시절을 지나 기본 백만 원 단위의 월급을 가지게 되는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1년에 한 번 정도 고삐 풀리듯 쓰는 달이 있는 것 외에는 큰 지출이 없을 정도로 내 가계부는 잠잠했다.


사실 지금은 '돈을 쓰기 무섭다'라는 표현이  와닿는다. 없어 봤던 시절을 알기에 항상 무엇이든 쟁여두고 있는 습관이 돈에도 생필품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가계부는 점점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아직도 수동 엑셀 가계부를 작성한다. 앱이나 다른 프로그램을  써봐도 내가 직접 만든 엑셀이 제일 정리하기 쉽다는  이유였다. 이런 데이터가 그득히 쌓인  누가알겠느냐마는. 아직도 주변에서 어떻게 하면   쓰냐고 하면 허허 웃으며 대답한다. 신용카드 계획적으로  잘라서   바에야 카드 자르고 체크카드 쓰세요. 가계부 쓰세요. 돈은 버는 것보다 남기는  중요합니다!

이전 23화 [생각 23] 픽션을 위한 논픽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