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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팔 May 18. 2021

[생각 21] 그래, 밥은 먹었고?

당신의 오늘이 안녕한지 궁금하다는 말입니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한산한 바람이 부는 날이다. 바람 따라 마음도 나풀나풀 어딘가를 노닐고 싶지만, 아직 조금 갑갑한 마스크 안에서 버텨야 하는 시간이 한참 남아있다. 이젠 코로나 이전이 잘 생각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잔을 마주치며 웃었던 기억이 까마득하다. 그때 여행 그냥 갈걸. 그때 그냥 만나서 다 같이 놀걸. 후회한들 이제는 적어도 1년 이상을 기다려야 가능할 이야기다. 1년 넘게 착용한 마스크가 익숙해진 만큼, 일상 속에서 또 한 가지 익숙해진 게 있다. 서로의 안부를 마주 보고 묻는 게 아닌 전화나 영상으로 확인하게 된 것. 피치 못한 기술의 발전이 조금은 반갑고, 조금은 서글픈 현실로 내 앞에 마주 앉아있다.


덕분에 조금 편해진 건 코로나 이전보다 안부를 자주 묻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메신저든 전화든 영상이든 방법은 상관없이 모두 건강하고 주변은 무탈한지 자연스레 묻게 된다.  그리고 어김없이 툭 던지는 한마디.


그래, 밥은 먹었고?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너의 오늘이 안녕한지 궁금하다는 명백한 의미의 따듯한 한마디.


제때 월급을 주지 않거나 빼먹는 일도 물론 많이들 화낼 일이지만, 밥을 못 먹고 일한다고 하면 대부분이 '세상에 밥도 안 먹이고 일을 시킨단 말이야?!' 라며 극대노할 일이 눈앞에 선하다. 도대체 한국인에게 밥은 무엇일까. 선조가 가난과 역병으로 굶은 일이 잦았다고 하니 그 심정은 백번천번 이해한다. 허나 요즘엔 오히려 과한 식단으로 인해 비만과 여러 가지 성인병을 달고 사는 한국인에게는 아직도 밥이 중요할까? 자문자답을 해보자면 적어도 내 다다음 세대까지는 밥이 매우 중요할 것 같다.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어떠한 일보다 먹고 사는 게 제일 1순위라는 한국인의 인식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밥을 먹었다는 나의 안녕을 전한 뒤로, 우리는 마주하지 않은 채 서로의 다른 안녕을 전한다. 우리 집 고양이 유치가 빠졌는데 내가 기적처럼 찾아냈어. 사진 보내줄게. 우리 애 이만큼 컸어. 많이 컸지? 야. 동영상 좀 더 길게 찍어서 자주 올려. 일하다 빡칠 때 너희 집 고양이 보면서 힐링 좀 하게. 아까 우리가 예전에 들렀던 음식점에 다시 갔는데 새로운 메뉴가 나왔더라. 사진 보내준 거 보여? 대박이야. 다음에 우리 꼭 같이 먹자. 같이 모여서 밥 먹고 싶다. 그러게. 우리 다 같이 모여서 한강 치맥했던 게 언제였지? 몰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아도 아득했던 옛날이란 것만은 확실해. 전화로 안부 인사를 전하는 게 익숙해진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코로나는 깊숙히 스며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일상을 열심히 살아간다. 생각보다 길었던 단절이 이제는 곧 끝나리라는 희망을 안고, 카페인을 가득 충전한 텀블러 하나를 손에 들고 출근하며, 퇴근 후에는 각자의 방법으로 밤을 보내는 걸 잊지 않으며 이 시간을 같이 견뎌낸다. 맨눈으로는 보기 힘든 원인과 작별하게 되는 날. 우리는 또 만나서 서로의 안녕을 물을 테다. 밥 먹고 왔어? 뭐 먹으러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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