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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팔 Jun 23. 2021

[생각 25] 글을 놓쳤다.

저 검푸른 심해 어딘가에



글을 놓쳤다. 한 번 쉬고 나니 두 번, 세 번은 더 쉬웠다. 심지어 두 번째부터는 다양한 핑계가 뒤따라왔다. 내가 몸이 아파서, 날이 궂어서, 배가 고파서. 핑계가 가지각색이다. 와르르 쏟아지는 비에 바다가 잠기기라도 한 걸까. 글 써야 한다는 딱 한 가지 생각 빼고 오만가지 잡생각만 낚싯줄에 그득히 매달려 나왔다. 막상 글 쓰는 생각은 심해로 가라앉은 듯했다. 도대체 어디쯤에서 넘실대고 있을까.


부러 찾으러 가지도 않았다. 어딘가 있겠지. 막연한 믿음뿐이었다. 언제고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굉장히 허무맹랑한 믿음. 그래서인지 넋 놓고 일주일 정도를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언젠가 내가 놓았던, 찾으러 가지 않았던 꿈들을 되돌아봤다.


대부분 조금 더 혹은 엄청난 노력을 들이면 꿈의 언저리에는 닿을 수 있는 꿈들이 대부분이었다. 단지 이해타산적인 머리가 미리 결론을 내린 게 문제였다. 음. 이거 인건비도 안 나오겠는데? 아유 뭐하러 고생하려고 해. 그만해! 그만하면 됐어. 참으로 거만한 판단이었다. 조금 더 노력했으면 내 삶이 어느 방향을 향해 가고 있을까? 그래도 브런치와 아이패드를 붙잡고 글을 쓰고 있었을까?


쉬는 듯 쉬지 못했다. 수능, 학점, 취업 등등에 쫓기듯 살아서인지 아직도 누가 낫을 들고 슬금슬금 내 뒤를 어슬렁거리는 느낌이 도사렸다. 그리고 무릎을 탁 쳤다. 에이. 저당 잡혔네. 이미 잡혀가 부렀어! 글이 삶을 데리고 도망갔다. 그래서 쉬는데도 이렇게 재미가 없는 거야! 물론 이것도 십 년 뒤에 보면 굉장히 오만한 판단이겠지.


그래서 내가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 내 저당 잡힌 삶이 심해 어딘가를 떠돌고 있기에, 나는 다시 깊고 넓은 바다로 여행을 하러 간다. 검푸른 바다를 두려워 말자. 무엇이 되었든 작은 조각배 위에서 파도를 즐겨보자. 처음은 누구나 어설프며, 그 바다는 곧 나의 양분이 될 터이니.


그 후 아이패드 바탕화면을 바꿨다. 모두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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