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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Sep 15. 2024

1년 동안은 열심히 살지 마세요

"1년 동안은 일 열심히 하지마. 올케한테 잘 해주는 것에 집중해."



결혼 직후 누님이 신신당부한 조언이었습니다. 일중독자 처럼 보이는 남동생이 걱정돼서 하는 소리인가보다 생각했는데, 지나 보니 행복한 결혼 생활의 중요한 지침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누님이 조언과 함께 들려준 성경 구절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막 결혼한 사람을 군대에 징집하거나 특별한 임무를 맡기지 마십시오. 그가 자유롭게 일 년 동안 집에 있으면서 자기 아내와 행복하게 지내도록 해야 합니다. [신명기 24:5]


신명기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켜야할 여러 지침들이 기록되어있는 성경입니다. 아득히 먼 옛날 고대 사회에서도 이를 강조한 데에는 그럴만한 좋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1년 동안 아내에게 집중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첫 1년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였는지 깨닫게 됩니다.


배우자 선택이 좋은 씨앗을 고르는 과정이라면, 신혼 1년은 씨앗을 뿌릴 토양을 잘 다지는 시기입니다. 돌밭에 뿌려진 씨앗은 뿌리가 약해서 곧 넘어지고,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앗은 뿌리를 내리지만 성장을 할 수 없고,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30배 60배 100의 열매를 거둔다는 성경속 비유가 결혼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떻게 그렇게 부부가 생각이 똑같아요?", "부부끼리 그런 대화를 해요?", "부부가 같이 활동 하세요?" 이런 반응을 접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같은 꿈을 이뤄가며 성숙해지는 과정을 행복한 결혼생활로 정의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참 좋으면서도 감사하게 됩니다.


이제, 저희 부부가 1년 동안 어떻게 시간들을 보냈는지 나눠보겠습니다.





정시 퇴근 


1년 동안 아내에게 집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바로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야근 문화가 많은 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7시 까지 출근해서 밤 8~10시 까지 일을 하는 것이 저의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패턴을 깨지 않으면 아내와는 주말부부와 다를 바 없는 삶이 예상되었습니다. 출근 시간을 늦추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퇴근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평소 남보다 야근을 많이 하던 제가 갑자기 정시퇴근을 하기 시작하니 '결혼 하더니 일찍가네~'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한창 능력을 인정받고 빨리 승진하고 싶은 욕구가 넘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일찍 간다는 부장님의 말을 들을 때마다 퇴근하는 뒤통수가 따가웠습니다하지만, '저녁 밥은 아내와 먹겠다'는 원칙을 세웠던 터였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자마자 첫째아이가 생겼기 때문에 짧디짧은 둘만의 신혼 생활을 누려야 겠다는 약간의 다급한 마음도 발걸음을 집으로 재촉했습니다.

 



호텔 데이트


되돌아 보니, 사실 저희 부부는 안친한 상태에서 결혼을 했습니다. 처음 만나고 나서 1년 만에 결혼을 했는데, 첫 6개월은 아내가 주재원이었기 때문에 3~4번 정도 짧게 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한 번은 상해에서 미국으로 출장 가는 아내가 인천공항을 경유한다기에, 1시간 정도 아내와 인천공항에서 데이트를 했었습니다. 즉 첫 6개월은 전화데이트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나머지 6개월 동안에는 결혼 준비를 위해 퇴직을 하고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서울에, 아내는 천안에 거주했기 때문에 주말에 데이트를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신혼 초기에 친밀감 보다는 약간 어색했고, 자잘한 일들로 인한 다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고 친밀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가까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행이 무뚝뚝한 편이었던 저와 달리 아내에게 방법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대화에 있어 '장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활용했습니다. 그래서 종종 호텔 데이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싼 고급호텔이 아니더라도 쾌적하고 깔끔한 장소에서 함께 있으니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대화들의 물고가 트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음 상태도 평소보다 여유롭고 오픈되어 그 동안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결혼 전에 연애 할 때 느꼈던 감정들 보다 한층 더 편안하고 좋은 감정들을 느꼈던 특별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서로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


당시에 회사 인재개발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저는 마침 갤럽에서 만든 strength finder(강점혁명)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각 사람에게 내재된 34가지의 강점 테마를 분석하고 개발하는 것을 돕는 멘토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이 숙지되자 MBTI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조직 내 임직원들의 역량강화를 위해 도입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저는 이걸 아내와 함께 해보기로 했습니다.


Strength finder가 MBTI 보다 탁월함을 느꼈던 핵심은 바로 '가능성'입니다.


MBTI는 말 그대로 그 사람의 굳어진 '성향'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외에 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나마 그것도 16가지로 한정되어있습니다. 하지만 Strength finder는 그 사람에게 내재되어있는 5가지 '재능'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재능이 발현되는 정도와 조합에 따라서 다양한 결과와 가능성을 갖게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상대방의 현재 모습 뿐만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무한한 가능성까지 바라보게 하는 탁월한 내용이었습니다.


Strength finder를 함께 하고 나서 아내를 대하는 저의 태도는 놀랍게 변했습니다.


한 가지 사례만 나누어보겠습니다. 평소 TV를 틀어놓고 스마트폰을 보면서 저와 대화를 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볼 때 저는 심한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않으면서 심지어 나와의 대화까지 건성으로 하고 있다고 느꼈기 대문입니다. 아내의 그런 '성향'이 정말 싫고 인정하기도 싫었습니다.


하지만 Strength finder 검사를 하고 나니, 아내의 강점 중에 'Arranger(정리)' 테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복잡한 상황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이를 보완해 주는 유연성도 가지고 있다'고 설명되어 있더군요. 즉, 멀티태스킹에 최적화 되어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을 고려해 보니 당시 아내의 태도가 달리 해석되었습니다. TV가 켜져있고, 스마트폰을 보는 와중이었지만, 나와의 대화에도 집중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Focus(집중)' 테마가 강한 저로서는 발휘하기 어려운 놀라운 장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로는 동일한 상황에서도 더욱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업을 하고 있는 지금 아내는 그 능력을 최대치로 활용하며 사업을 발전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장소의 중요성은 여기에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서로의 강점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주말에 복잡한 서울을 벗어났습니다. 이 시간 역시 장소가 주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넓고 한가로운 장소를 택했습니다. 당시 마포에 살고 있었던 저희 부부는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지지향과 그 주변 카페들에서 이 소중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신혼 1년의 시간 동안 저희 부부는 나름의 방식으로 토양을 잘 가꾸려고 노력했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환경들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잘 다져진 토양에 깊이 내린 뿌리 덕분에 지금까지 잘 이겨내고 있다고 믿습니다.


다음 연재에서는 세상물정 몰랐던 저희 부부가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창업을 하고, 부동산 경매 열풍에 휩쓸러 섣부른 부동산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왔습니다. 꿈은 가득했지만 현실적인 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았었기에 치뤄야 했던 값지불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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