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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Sep 22. 2024

돈을 몰라서 8년 동안 헤맸습니다

싱글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직장 1년 후배가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대리님, 저는 50 전에 은퇴 하려고요. 포트폴리오 구성과 계산이 다 끝났어요."


이제 입사한지 만 3년 밖에 안된 주임인데,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대 통계학과 출신은 역시 다르구나 하며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부러워해서는 안된다는 내면의 강력한 방어벽이 반사적으로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는 기억 저편으로 치워졌습니다. 도데체 왜 그랬을까요?


"돈은 일만 악의 근원이다."

"빚은 절대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근면하고 성실해라."


어려서부터 이 세 가지 메시지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돌판에 새겨지듯 선명하고 명확한 신념으로까지 자리잡았습니다. 돈이 인생의 전부도 아니고, 행복의 전부도 아니며, 일을 하며 돈을 생각하는 것은 거부해야 할 세속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열심히 회사 일에 충실하다 보면 돈은 어떻게든 따라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32살이 되기까지 사용 통장 1개, 적금 1개, 체크카드 이 세 가지가 전부였습니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상황이 발전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내 역시 돈 관리와 원칙이 저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재정관이 일치한다고 생각하며 서로 좋아라 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돈을 모르는 두 부부에게 어떤 대가가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2억 오피스텔 말고 4억 아파트를 샀더라면


"우리는 빚 없이 살자."


2015년, 결혼을 앞둔 우리 부부의 수중에는 최대 2억원의 현금이 있었습니다. 큰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신혼집을 찾아보니 살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2억으로 '빚 없이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포대로변에 있는 1억 9500만원짜리 오피스텔을 매수하는 결정을 했습니다.


한편, 당시에 바로 뒷편에 신축 아파트가 4억 중후반 부터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렇게 비싸서 어떻게 아파트를 사라는 거냐'며 집값이 높은 현실을 비판할 뿐이었습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오피스텔 가격은 2억, 그 아파트는 16억 부터 시작입니다.




월 1000만원 스마트스토어 열풍, 그리고 내가 겪은 너무 다른 현실


2016년, 온라인 쇼핑몰 광풍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유튜버들이 월 1000만원을 너무 쉽게 벌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며 강의팔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실수령 월급이 500만원이 되지 않았었는데, 조금만 노력하면 월 1000만원을 내 수익으로 가져올 수 있다니! 그렇지 않아도 업무 강도가 높은 회사생활 때문에 고미 많았던 저희 부부에게는 복음과도 같은 희소식이었습니다.


주저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고 함께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업종 선택은 장인장모님 매장에서 취급하는 물건으로 정했습니다. 매장에 있는 물건을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면 되겠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름의 진정성을 갖고 시작하겠다며, 저는 무보수로 8개월간 현장에서 시다 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습니다. 아내는 사업의 틀을 갖추기 위한 행정 및 마케팅적인 구상들을 해 나갔습니다. 틈틈이 월 1000만원 선생님들의 유튜브 강의도 열심히 들었습니다. 비싼 유료강의들도 투자라고 생각하며 수강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저희의 사업자를 내고 온라인 스토어를 오픈했습니다. 8개월 동안 열심히 수행하고 준비한 결과가 얼마나 좋았을까요?


3년 동안 온라인 매출로는 최저 생계비를 충당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시공 문의는 꽤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분서주하며 열심히 시공을 다녔습니다. 힘들긴 하지만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이었습니다. 한 달에 400~600만원 정도의 수익이 났으니 회사생활 급여 정도에 맞춰졌습니다.


그래도 저희 부부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적당히 돈은 벌고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우리는 빚이 없어서 적게 벌어도 부담이 없다고 만족해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아직 매를 덜 맞아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던 상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괜찮다는 다짐과는 달리 마음 속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혼란함과 불안이 엄습해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벌어서 단칸방 오피스텔을 벗어날 수 있을까? 딸아이도 커가는데, 언제까지 오피스텔에 살아야하지?'

'온라인 판매를 하려고 시작한 일인데, 왜 지금 시공만 하고 있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을 때에도 지금과 똑같이 시공 일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솔직히 그래도 Y대 나왔는데, 현장 시공 일 다니는 거 창피해'


그리고 2020년, 아내에게 선언했습니다.


"나 이제 시공 못하겠어. 온라인 사업으로 승부 보자."


당장 시공일을 끊어버리면 생활비는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 뻔했지만, 저의 체력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한 것을 알았기에 아내도 동의해 주었습니다. 시공 의뢰는 모두 접고 온라인 판매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성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2~5개 정도 팔리는 수준에서 발전이 없었습니다. 조바심이 나고 불안한 마음들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던 다짐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계속 해야 되는 것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딸이 학교를 가면 학원비는 내줄 수 있을지 불안했습니다. 신혼때 입던 옷을 아직까지 입고 있는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통장에는 언제나 0원, 카드값 청구서를 내는 날에만 딱 카드값 낼 돈이 들어왔다가 그대로 빠져나가고 다시 0원.


드디어 돈의 필요에 대한 각성이 우리 부부에게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폭등하는 부동산 시장을 보면서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상황으로 내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고난의 행군이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조급함과 불안함은 판단력을 흐리고, '쉬운 길'의 유혹에 걸려 넘어지도록 만듭니다.




상투 잡은 부동산 투자


온라인 판매가 부진해서 불안감에 휩쌓여있던 그 시기에 부동산 폭등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한달이 멀다하고 주변 아파트들이 몇 천 만원씩 껑충껑충 뛰기 시작했습니다. 전세로 살고 있던 저희는 정말 내집마련의 기회가 사라질 것만 같은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자, 이번에는 부동산 유투버들이 활개를 쳤습니다. 이번에는 1000만원으로 월 100만원 월세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는 부동산 경매 유투버들에게 낚였습니다. 어찌나 확신을 심어주었는지, 아내는 60만원 짜리 강의에 이어 400만원 짜리 강의까지 수강했습니다.


장사가 부진해서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부동산 강의를 듣고 전국으로 임장을 다니고, 경매에 입찰을 시도했습니다. 초반에는 어려웠지만 학습 능력만큼은 좋았던 아내는 월세를 받을 수 있는 빌라와 소액 아파트들을 낙찰 받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자동차도 경매로 낙찰을 받아 타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정말 몇 달 공부하고 4개의 부동산 낙찰을 받아 매달 200만원의 월세가 통장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희망의 불씨를 찾은 듯 기뻤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잠시 멈추었어야 했습니다.


짧은 기간 월 200만원을 만든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었으나, 큰 돈을 버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소액 투자로는 큰 돈을 벌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자 다음 레벨로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재개발 투자입니다. 이번에는 강사가 전국 재개발 지도를 분석하여 유망한 재개발 지역을 찍어주는 강의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엄청 큰 금액이었는데, 그보다 훨씬 큰 이득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마음에 눈이 멀어있었습니다. 그 강사가 찍어준 곳으로 수많은 수강생들이 러쉬를 시작했고, 그로 인해 그 재개발 지역은 더욱 과열되기 시작했습니다.


강의 내용에 의하면, 강사가 알려주는 곳에 투자를 하기만 하면 4년 뒤에는 최소 2억원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저 지금 당장 돈이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습니다. 너무나도 확실한 이 기회를 잡기 위해 우리 부부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담보를 최대치로 하여 자금을 만들었습니다. 집의 가치도 함께 올랐기에 재평가 받아 추가로 대출을 받았습니다. 이율은 다소 높았지만, 얻게 될 이득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감당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의 돈까지 끌어모아 유력한 지방의 재개발 부동산들을 매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취득의 기쁨도 잠시, '비정상적인'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머지않아 터졌습니다. 4년 후 실현할 수 있다던 기대 수익은 절반으로 떨어졌고, 이자는 눈덩이처럼 커졌습니다. 당장의 금융비용 뿐 아니라 중간중간 분할 상환해야 하는 돈도 마련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둘째까지 임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돈을 만들어야했습니다.




N잡 아르바이트 시작, 그리고 빈털털이


매달 막아야하는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그만큼의 돈을 추가로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중소기업 보고서 작성, 블로그 아르바이트, DB 구축 아르바이트, 스타트업 창업 멤버 등 할 수 있는 일들은 전부 했습니다. 정기적인 수익원이 아니었기에 출산 이후에는 아내도 아르바이트를 찾아 시작했습니다. 아이도 있었기 때문에 아내는 주로 온라인으로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했습니다.


그러던중 아내가 한 아르바이트 사이트에서 돈 많이 주고 쉬운 아르바이트를 찾았습니다. 지정된 온라인 사이트에서 구매를 대신해 주는 아르바이트인데, 먼저 내 돈으로 결제를 해 주면 바로 아르바이트비를 포인트로 주고, 추후 현금으로 돌려주는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만원 단위로 시작했는데, 며칠이 지나자 갑자기 단체 카톡방이 만들어졌습니다. 아르바이트 메니저가 단톡방을 통해 이벤트가 시작되었다고 알려왔습니다. 금액이 큰 건이어서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고 했습니다. 단톡방에 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입금 금액을 알려왔습니다.


'500만원 입금했습니다.'

'1000만원 입금했습니다.'

'3000만원 추가로 입금했습니다.'


우리는 비상금을 제외한 모든 현금을 입금했습니다. 내일 포인트로 들어올테고, 주말에는 막대한 현금으로 돌아올테니까요...


지금 이 글을 읽고있는 분이시라면, 이미 이 내용을 보자마자 이 아르바이트의 정체를 눈치 채셨을 것입니다. 아르바이트를 가장한 사기였던 것입니다. 단톡방 사람들은 모두 바람잡이, 아르바이트 메니저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조선족.


어떻게 이렇게 뻔한 사기 수법에 수중의 모든 돈을 갖다 바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매달 막아내야 하는 대출 이자의 압박으로 인해 이미 우리 부부는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드디어 매를 쎄게 얻어맞고 정신이 번쩍 차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거 사기인것 같애.."






돈을 잘 다루는 것을 외면하고, 돈에 대하여 무지한 상태를 방치했던 결과 치뤄야 했던 값지불은 이렇게 크고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저희 부부가 무너졌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공은 실패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어떤 책에서 읽었던 문구입니다. 이 사건은 저희 부부의 생존 본능을 크게 일깨워주었습니다. 6개월 후 매출이 급성장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매달 매출이 급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사업에 대한 꿈과 비전을 더욱 키워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돈에 대하여 갖고 있었던 잘못된 생각과 재정 원칙들이 크게 재정비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적당한 위기가 아니라, 벼랑끝 생존의 위기가 닥치자 본질적인 문제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재정의 문제와 정신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들을 다음 연재를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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