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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아 Dec 14. 2022

시간을 짭니다.

세 번째 답장

날짜와 요일 감각이 둔합니다. 핸드폰 속 캘린더가 없었던 고대 시절이었다면 마감일을 지키지 못해 난리가 났을 거에요. 오늘이 며칠이고 무슨 요일이고는 까먹는 제가 유일하게 시간이 흘렀구나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치약이 쪼그라들었을 때입니다. 아까, 이제 마지막인듯한 튜브 속 치약을 짜내어 쓰고 버렸습니다. 튜브를 붙잡고 버둥대며 이리저리 치약을 밀어내며 이렇게 시간이 또 흘렀군 합니다. 새 치약을 꺼내면 마치 모래시계를 다시 뒤집은 듯한 느낌이 납니다. 우린 이렇게 치약을 짜고 짜내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겠죠.


부쩍 추워진 날씨에 겨울맞이 쇼핑을 했습니다. 유로파는 쇼핑 방법이 있나요? 저는 주로 앉거나 누워서 쇼핑합니다. 세상이 좋아졌기 때문이죠. 물론 내 몸뚱이는 쇼핑몰 속 모델이 아니기 때문에 사이즈 미스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것에 연연하진 않아 그냥 오는 대로 입습니다. 앉아서 누워서 하는 쇼핑은 백화점 모든 층을 한 바퀴 둘러본 것만큼의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어서 몇 년에 두어 번 정도만 합니다. 덕분에 오늘치의 시간과 체력을 모두 썼습니다.


나의 혹한기 생존을 책임지는 코트를 하나 골랐습니다. 베이지, 특히 회베이지를 좋아하는 특수 색깔 취향 덕분에 사진으로만 옷을 고르기 어렵습니다. 리뷰를 꼼꼼히 봐도 사람마다 카메라 빛이 달라서 정확한 확인이 어렵죠. 그럴 거면 나가서 사라고요? 이불 밖은 위험해요. 유튜브 추천을 몇십 개를 돌려보고 그나마 원하는 색상에 가까운 아이를 하나 주문했습니다. 얼죽코는 아닌데 남들이 자켓 입을때 코트를 입어야 그나마 덜 춥더라고요. 우리 한겨울이 되기 전에 꼭 이 코트를 입고 만남을 가져봅시다.


니트류를 너무 좋아해서 코트를 고르는 동안도 눈이 돌아가고 있어요. 아직 겨울옷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집에 이미 니트가 너무 많아요. 쇼핑을 정말 가끔 하는데 왜 집에 니트가 많을까요. 그리고 왜 장바구니엔 또 니트가 쌓여있을까요. 하하.


패션의 ㅍ도 잘 모르지만 색깔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언젠가 퍼스널컬러를 받으러 가고 싶어요. 기회가 되면 같이 가면 재밌겠군요! 예전에 컬러리스트 자격증을 딸 때 선생님이 해준 결과로 막연히 가을웜톤이겠거니 하고 살고는 있는데 오렌지가 정말 안 어울리는 걸 보면 갸우뚱합니다. 그렇다고 핑크도 갸우뚱합니다. 사람의 무의식은 어울리지 않는 색을 밀어낸다던데 취향인 건지 무의식인지도 궁금하고요.


저의 회베이지 사랑은 취향일까요? 무의식일까요?






유로파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나요? 우리의 대화에서 유로파는 이해심이 넓어 보여 신경이 예민한지 궁금합니다. 똑부러진 모습을 보면 절대 둔감한 건 아닌 거 같은데 하는 말을 들어보면 엄청 예민해 보이진 않거든요. 사회생활에 익숙해져 포커페이스 조절이 잘 되는 건지 아니면 원래도 잘 조절하는 편인지 궁금해요. 저는 맹한 표정에도 드러나듯 모든 것에 둔감합니다. 유로파가 말했듯 사회생활에서의 대화방식은 중요합니다. 잘 되어 가고 있지만 어떤 문제가 생겨서 이것만 해결하면 더 잘될 거예요. 라는 뾰족한 말을 고안할 예민함이 없죠. 나의 생각이나 감정에도 둔하고 주변의 생각이나 감정에도 둔합니다. 


여담이지만 예민함은 유전이라고 해요. 신기한 건 유전과 환경이 합쳐져 발현된다는 거죠. 예를 들면 우리 부모님은 예민하고 기민해 식탁에서 떨어지는 숟가락을 캐치할 정도로 빠르지만 저는 그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지켜만 봅니다. 예민한 유전을 받았지만 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른 환경과 합쳐져서요. 숟가락이 떨어지는 걸 인지는 하지만 잡지는 않는 요상한 결과물이 탄생한 거죠.


예민하든 그렇지 않은 모든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고 삽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잘 아는 건 사는 것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콘텐츠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에 대해 말해줍니다. 저는 주로 혼자 여유로운 카페에서 찐으로 맛난 커피를 마실 때 스트레스가 풀리는데요.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선 어떻게 할까 싶었습니다. 인간의 뇌는 스트레스를 생존의 방해 요소로 생각해서 어떻게든 없앨 방법을 찾는다고 하던데 진짜더라고요.


선물을 막 해요. 어떤 대상이건 눈앞에 보이는 대상에게 막 선물합니다. 물론 비싼 건 아니고요. 이건 어릴 때 있었던 나쁜 습관 중 하나였습니다. 어릴 때는 자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잖아요? 이때는 스트레스 해소법을 몰라 막 선물하는 것으로 풀었습니다. 풀었다고 하니 이상하지만, 누군가 내 앞에서 미소를 보일 때 스트레스가 풀렸어요. 그 미소를 보는 방법으로 선물하기라는 물질적인 방법밖에 몰라 나쁜 습관이 되었죠.


이제는 좋은 대화로도 미소를 볼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면 나쁜 습관이 나옵니다.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 어린이와의 대화가 어려운지. 어른이 무엇이라 정의하기 어렵지만 ‘안돼.’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어린이라는 생각은 분명히 들더라고요. ‘안돼.’는 선이기도 하고 법이기도 하고 여하튼 여러 모습을 하고 있죠. 우리는 살면서 선이기도 하고 법이기도 한 여하튼 안돼의 여러 모습을 머리로든 가슴으로든 적당히 이해하며 삽니다. ‘으른들의 사정’이라고 농담을 하며 말이죠. 어른은 싫은 좋든 안돼를 이해합니다. 하지만 어린이는 이해하기 어렵죠.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미술학원 시절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집안 사정이나 경제나 그런 걸 잘 몰랐는데요. 미대 입시에는 꽤 많은 돈이 듭니다. 필요한 재료도 많고 하루 온종일 그림을 그리다 보니 모든 소모품의 주기가 짧아지죠. 한창 자랄 시기이니 배는 또 얼마나 고플까요. 잠시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편의점에 달려가 먹거리를 사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편의점에 같이 가지 않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학교는 달랐지만 하얗고 조그맣고 귀여워서 친해지고 싶었거든요. 매번 편의점을 같이 가자 했지만 매번 거절당했고 또 가자고 하고 또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다 친해졌죠. 그 친구는 특이한 점이 있었어요. 종일 혹사당한 팔레트는 더러워지기 마련입니다. 색을 섞기도 하고 붓으로 휘젓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 친구의 팔레트는 항상 깨끗했습니다. 물감도 예쁘게 짜 놓았고 붓도 깨끗했죠. 심지어 물통까지 깨끗했습니다. 거의 기계가 그리듯 딱 써야 할 색과 양을 정확하게 알고 쓰는 듯 보였습니다. 그림도 정말 수준급으로 잘 그렸어요. 모든 학생과 선생님은 그 친구의 인서울 입시를 걱정하지 않았죠.


한번은 그 친구와 잡담을 나누다 입시 얘길 했습니다. 그때 전 대학이든 뭐든 매일 반복되는 그림 지옥에서 벗어나고만 싶었기에 툴툴거렸죠. 하지만 그 친구는 달랐습니다. 목표가 뚜렷했어요. 그건 저를 여러 번 놀라게 했습니다. 실력에 비해 아주 낮은 목표였고 여고생다운 이유도 아니었어요. 집안 사정이 어려워 부모님을 두고 부산을 떠날 수도 없고 등록금을 낼 수도 없기에 모든 상황을 계산해 미술을 포기하지 않는 목표를 잡았고 그걸 무조건 이뤄내겠다고 했어요. 멋있었습니다. 이후로 그 친구가 선생님의 인서울 대학이나 유학의 권유로 매번 힘들어할 때 묵묵히 들어줬죠.


그 친구야말로 안돼를 이해하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안돼.’는 안타깝거나 슬픕니다.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데 막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어른은 안타깝고 슬픈 존재라고 하나 봅니다.






언젠가 말씀했다시피 저는 성취감을 쉽게 얻습니다. 신호등 타이밍이 잘 맞아 걸음을 멈추지 않고 쭉 건널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운에 관한 성취감을 얻고 카페에서 처음 보는 음료를 시켰을 때 유레카 맛을 찾는 것만으로도 비용에 대한 성취감을 얻죠. 


처음 사회를 겪어본 건 식음료 회사였습니다. 매일 아메리카노를 마셨으니 아메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카페 바를 뛰어다니며 알바로 시작했을 땐 몰랐는데 몇년 뒤 사무실에 앉아 빙삭기 가격 비교 결재서류를 만들다 알았습니다. 앗, 나는 아메를 좋아하는 게 아니고 카페를 좋아하는 거구나.


지금도 카페를 좋아합니다. 아메도 좋아하지만 아메를 마시지 않더라도 카페에 가죠. 이처럼 가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오래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성취감에 속아서죠. 책도 그랬습니다. 활자 중독일까 고민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글 읽는 걸 좋아한다고 착각해서 막연히 글 관련 공부를 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죠. 글을 좋아하는 게 아니고 책을 좋아한다는 걸요. 글도 좋아하지만 글이 없는 책도 눈 돌아가며 사는 저를 보면서요. 함께 간 언리미티드 페어에서 우린 참 많은 책과 일러스트 북을 샀습니다. 전 책을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편집도 좋고 기획도 좋습니다. 만들고 싶은 책이 생각나면 팀을 꾸리는 과정도 재밌습니다. 제가 유로파에게 물어봤던 것처럼요. 사람의 창작을 담는 것도 돕는 것도 너무너무 좋아요.


예전의 한 페어때 찡찡거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내가 만든 책인데 사람들은 내가 만든 책보다 쓴 책을 더 산다고요. 아주 배가 불러서 터져버린 소리죠. 지금은 반성하고 있습니다. 


카페를 좋아하고 여전히 아메도 좋아하는 것처럼, 책을 좋아하고 여전히 글도 좋아합니다. 편지도 좋아하고요.





멀티가 가능한 사람을 부러워했습니다. 저는 뇌의 용량이 작아 멀티가 안되는 걸까 시무룩했었는데요. 사실은 모든 사람이 멀티가 안된다는 뇌과학 영상을 보고 조금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우리는 걸으며 음악을 듣지만 그것은 걷는 것에 너무 익숙해서 무의식으로 걸어질 뿐 사실 뇌는 걷다가 음악을 듣다가 걷다가 음악을 듣다가 바쁘게 움직이는 거였습니다. 뇌가 빠르게 움직인다면 멀티가 된다고 느껴지나 봐요. 부럽군요. 여하튼 저는 뇌가 빠르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글을 쓸 때도 아무 소리가 없는 곳에서 써야 쓸 수 있어요. 지금도 아무 소리 없는 작업방에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음악은 종종 여러 일과 곁들여지곤 합니다. 걸을 때도 작업을 할 때도 요리할 때도 말이죠. 멀티가 되지 않는 저는 음악을 평소에는 잘 듣지 않습니다. 뭔가 걸음걸이가 이상해지거든요. 자주 내릴 역을 놓친다던 지도 하고요. 예전엔 라이브 공연장을 자주 찾았습니다. 인디밴드를 좋아해서요. 지금이 아니면 살 수 없는 독립출판의 책을 사듯 그때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인디밴드의 라이브를 들으러 자주 다녔습니다. 코로나 이후로는 거의 못 갔네요.


아, 갑자기 생각났어요. 유로파가 권해줬던 페스티벌 말인데요. 진짜로 일정이 안되어서 못 간 이유도 있지만 무서워서 못 간 이유도 있습니다. 하나는 그런 큰 페스티벌을 제대로 즐길 자신감이 없어서이고 하나는 귀 때문입니다. 


제 귀는 여러 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큰 소리에 약합니다. 누군가는 서라운드 음향 빵빵 스피커를 큰돈 주고 사지만 저에겐 무용지물입니다. 귀가 찢어지는 고통이죠. 유튜브를 보는 저에게 룸메가 “그 소리로 잘 들려요?”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물음표였죠. 나중에 룸메의 음향을 들어보니 아주 크더라고요. 신기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영화관에 가기 꺼리는데, 봐야 할 영화가 생기거나 영화관에 갈 일이 생기면 이어폰을 꽂은 채로 영화를 봅니다. 저만의 꿀팁이 생겨버린 거죠. 다른 약한 모습은 비행기를 잘 타지 못합니다. 압의 영향으로 귀가 아파요. 약도 먹어보고 귀마개도 껴보고 잠도 자보고 맥주도 마셔봤지만 귀가 아파서 점점 비행기를 멀리하게 됐습니다. 때문에 여행을 못 다녀본 안타까움도 있네요. 그래서 소리가 큰 곳이나 비행기를 탈 정도로 먼 곳은 기피하게 됩니다. 아직 불편하진 않아서 해결 방법을 알아보지 않았지만 언젠가 고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사람에겐 자신에게 맞는 데시벨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장르가 있다고 하는데요. 옷깃이 스치는 소리까지 세세하게 담는 영화, 일상 소음 정도인 드라마, 사운드가 조금 높아지는 연극 그리고 높은 데시벨인 콘서트, 페스티벌, 종합 예술인 뮤지컬 등등 평균 데시벨에 따른 장르가 있다고 해요. 아마 저에게 맞는 장르는 드라마나 연극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유로파에게 맞는 장르는 어느 정도일까요?


사람들이 저를 말할 때 빼놓지 않는 수식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차분하다.’와 ‘가만히 좀 있어라.’입니다. 완전 상반되죠? 어떤 사람에겐 차분하다로 소개되고 어떤 사람에겐 가만히 좀 있어라로 소개됩니다. 일부러 그런 모습을 자아낸 건 아니고요. 자연스레 그렇게 된 거겠죠. 모든 모습이 저이니까요. 예전엔 사람마다의 다른 평가에 신경이 쓰였는데요. 애초에 사람은 소설 속 캐릭터도 아니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도 만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잖아요. 편지를 나누며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기도 하고요. 그러니 꼭 나는 이런 사람으로 보여야 해.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요. 저는 여름의 유로파도 겨울의 유로파도 좋아합니다. 


그 모습이 모두 솔직하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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