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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아 Jun 15. 2023

짠하고 싶은 날입니다.

아홉 번째 답장 

안녕 유로파. 오랜만입니다. 하루하루 마감이 계속되는 삶을 살다 보니 편지가 자꾸 미뤄지는 무거운 마음입니다. 유로파가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한국에서 편지가 도착하면 좋을 거 같아 조금씩 틈을 내어 씁니다. 하루에 조금씩 유로파가 떠올랐던 시간을 모아서 보낼게요. 


계속되는 마감 중에 가장 재밌었던 건 에세이 수업입니다. 한 달에 하나씩은 강의나 워크숍을 듣자고 다짐했어요. 너무 일에만 매몰되어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하기도 했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셔서 답답했거든요. 때마침 들어보고 싶었던 수업이 주말 조금만 시간을 내면 들을 수 있었기에 신청했습니다. 주말 오전에 하는 무언가는 참 기분 좋습니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아직 하루가 길다는 여유로움이 동반되어 삶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이에요. 제 평일과 주말의 기상 시간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출근하지 않는 주말 오전이 가장 여유롭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 시간에 산책하러 가시지요. 유로파와는 푸릇푸릇한 아침 산책을 함께 하면 재밌겠어요. 


아, 에세이 수업 이야기하던 중이었죠? 꽤 좋아하는 작가님의 수업이었습니다. 가볍게 들으러 간 수업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전환의 기회를 얻었어요. 끝나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재밌더라고요. 그 작가님만큼의 위트를 얻진 못했지만 뭔가, 뭔가! 깜짝깜짝 하는 뇌가 깨어나는 느낌이었죠. PPT가 참 예뻤다는 것도 덤입니다. 한마디가 허투가 없었고 한 장면이 허투가 없었어요. 저 작가님은 네모 안을 계획적으로 접근해서 디자인하는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하기 위해 얼마나 똑똑한 노력을 했을까가 수업을 진행하는 4회 동안 빠짐없이 들었습니다. 유로파도 꼭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재밌는 영화나 책이 두 번 세 번 생각나듯이 저에게 이 수업은 두 번 세 번 생각나는 수업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회사에서 진행한 외부 대관 행사를 엿들었습니다. 기록을 남기는 어플에서 진행한 행사여서 여러 기록자가 무대로 나와 기록에서 발전했던 자신의 방법을 알려주는 강연이었죠. 어떤 강연자는 일부러 특정 감정에 빠질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갔고 어떤 강연자는 모든 과정을 솔직하게 터놓았고 어떤 강연자는 존버했다고 했습니다. 


수업과 강연을 들으며 내가 꾸준히 꺼낼 수 있는 키워드를 고민했습니다. 강연자의 말 중에서 ‘고정관념을 만들어라.’는 게 기억에 남았거든요. 에세이 수업을 진행하는 작가님에게선 위트가 떠오르고 유로파에게선 여행이 떠오릅니다. 강연자의 존버도 하나의 캐릭터처럼 느껴집니다. 


‘아름’은 ‘나’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나답다는 말이라고 해요. 나다운 아름다움을 가꾸세요- 같은 광고 문구가 떠오르는데요. 저는 여기서 답다에 꽂혀봅니다. 답다. 다운. 나답다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어려운 게 아니라 답다가 어렵기 때문일 겁니다. “나는 난데. 그래서 나다운 게 뭐지?”의 고민인 거죠. 유로파가 만든 자신 인터뷰집은 어땠나요? 완성이 궁금합니다. 유로파만의 키워드를 찾을 수 있었나요? 유로파만의 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나요?






유로파. 우리 꽃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꽃집을 보면 항상 부러워요. 회사 근처에서 꽃다발을 사러 갔을 때 사장님에게 “맨날 이렇게 예쁜 친구들 봐서 좋겠어요!” 했더니 활짝 꽃처럼 웃으셨습니다. 역시 예쁜 곳에서 일하면 마음도 예뻐지나 봐요. 하지만 저는 새벽 시장에서 꽃을 데려올 자신도 없고 식물을 키울 자신도 없고 그걸 팔 자신은 더더욱 없는 쫄보에요. 꽃집을 지나갈 때마다, 길에서 꽃을 볼 때마다 흐엉엉엉 좋겠다 하는 행인 1이죠.


그래서 뜬금없지만 씨앗 패키지를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랜선 집사가 되듯 반려꽃과 함께 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니까 나 대신 예쁘게 키워줄 대리만족 해줄 자를 구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피울 꽃을 인쇄해 씨앗을 포장하고 그 꽃과 어울리는 화분을 만들 거예요. 화분은 어떻게 만드냐고요? 여러 작가와 협업해 볼까 합니다. 도예 작가도 좋고요 그림 작가도 좋고요. 예쁜 꽃을 틔울 예쁜 화분을 만날 생각에 벌써 설레는군요! 


이렇게 한 발짝 물러나는 일은 종종 설렘이 됩니다. 꽃을 좋아하면 꽃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면 쉬운 길일 텐데 말이죠.(물론 배우는 건 어렵겠지만요.) 굳이굳이 다가가기 어려워하며 한 발짝 물러나서 이런저런 요상한 길을 찾습니다.  꾸불꾸불 요상하게 생겨서 현실적으로 걸을 수 있는 길인지는 미래의 나에게 판단을 맡겨놓고요. 윌터의 상상이 현실이 되듯 저도 요상한 길을 걷는 상상을 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고요. 언젠가 진짜 현실이 될 수도 있으니 노션 페이지 하고 싶은 일 리스트에 추가 해야겠어요. 


언젠가 현실이 되면 유로파에게도 씨앗을 선물할게요. 꽃양귀비가 좋겠어요.






일이 착착 생각만큼 진행될 때 쉽게 기고만장합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숙여질만큼 자신감이 충분히 익지 않아서일까요. 숙여질만큼 자신감이 무겁지 않아서일까요. 여하튼, 기고만장한 기분이 느껴지는 그때부터 입을 닫습니다. 그때 나오는 말은 평소의 허세에 날개까지 달려서 아주 지 혼자 히어로고 아주 지 혼자 빌런입니다. “제가 지금 기고만장 상태라서요. 조금 놔두면 괜찮아져요.”라고 주변에 말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혼자 있습니다. 


타인의 잘한다잘한다! 가 힘이 나듯이 기고만장 상태에서 듣는 잘한다잘한다! 는 어우 자신감이 성층권도 뚫고요 자존감이 우주도 뚫어서 새로운 생명체라도 만날 기세입니다. 실수를 사과하고 실패를 수습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요. 잘함을 자랑 받고 칭찬 받는 건 중력 없는 우주 같아서 말도 무중력으로 뚜뚜따따 나와버립니다. 항상 이때 실수를 많이 해버려요. 안 해도 될 말을 하고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말도 하고요. 그래서 기고만장해질 때면 명상하듯 차분히 기분을 가라앉힙니다. 


얼마 전 외국인 고객을 만났습니다. 한국어가 유창한 그분에게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됐어요?”라고 묻고 순간 아차 했습니다. 이분은 한국에 살면서 얼마나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을까? 싶었죠. 한국을 좋아해서 공부했을 수도 한국에 오래 살아서 자연스럽게 터득했을 수도 어렸을 때부터 한국에서 살았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왜 저는 아직도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에게 편견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K팝 아이돌이 활동하는 시대에 말이죠. 고객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냥 저 혼자 마음에 걸렸습니다. 


유로파, 저는 요즘 대화하는 법 영상을 찾아봅니다. 일단 멱살부터 잡고 보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보니 일단 말을 해버려요. 저는 그게 늘 숙제입니다.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부분을 늘 익혀야 하죠. 가끔 유로파와의 대화에서도 말을 뱉어버리고 아차 한 적이 있었습니다. 쑥스럽고 민망해서 ‘에잇 또 저질러버렸군.’으로 끝내버린 대화를 나중에 유로파가 부드럽게 자신의 의견과 함께 포장해 준 적도 있었죠. 고마워요. 제 아차를 배려해주는, 대화의 타이밍을 아는 유로파와의 대화가 참 고맙고 편합니다. 






마을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 갔을까, 아직 내리기에 한참 남았을 때 버스가 멈췄습니다. 기사님이 일어나더니 도로 통제 때문에 이 이상은 운행할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유로파를 만나러 시청역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고작 두 정거장 가려고 탄 게 아닌데 툴툴대며 내렸습니다. 공사를 하나? 싶어 본 한강에서 합정역으로 이어진 긴 도로는 마라톤 행사를 하는지 많은 이가 뛰고 있었습니다. 제각각의 속도로 뛰거나 걷거나 하며 행렬을 이어가고 있었죠. 


달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기에 뛰는구나 하며 보는데 뛰는 시선과 다르게 멈춰 있는 시선이 보이더라고요. 누군가는 깃발을 좌우로 힘차게 흔들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있고 누군가는 응원복을 입고 팔다리를 힘차게 돌리며 응원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뛰는 사람을 놓칠세라 사진을 찍으며 화이팅을 외쳤습니다. 응원봉이나 수건을 흔드는 사람도 많았고 물을 쥐여주는 사람도 많았어요. 역이 가까워질수록 멈춰있는 사람이 많았고 응원의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걷던 사람도 응원받아 다시 뛰기 시작하고 그럴수록 응원의 외침이 쏟아졌어요. 아, 이런 열정적인 장면에 정말 약하단 말이죠. 뮤지엄 산에 가려던 것도 잊고 함께 섞여 화이팅을 외칠 뻔했습니다. 그 장면을 본 것만으로 기분 좋더라고요. 유로파에게도 이 열정적인 화이팅을 나눠주고 싶었습니다. 


뮤지엄산으로 가는 버스에서 유로파가 잠든 동안 저는 스크린 속 드라마를 봤습니다. 이 시대의 엄마들에게 나이 먹어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드라마였죠. 주인공은 시엄마와 남편의 하녀 대우에 지쳐 살다 어느 날 큰 수술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진짜 해보고 싶었던 걸 하려고 하죠. 많이 핍박받고 무시당하지만, 실수도 잦고 역경도 많지만 그래도 해냅니다. 정말 드라마 답죠? 열정 있는 주인공은 언제나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우리 함께 본 뮤지엄 산의 건축물과 전시는 커다랗고 정교하고 멋있었습니다. 건축 전시를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옆에서 유로파가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어 좋았습니다. 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선으로 이루어진 그 예뻤던 절은 실제 장소에 꼭 가보고 싶어요. 정말 예쁘더라고요. 물 덕후인가 의심할 만큼 물과 함께 한 예쁜 건물이 정말 많았고요. 뮤지엄 산도 물이 어쩜 그리 단정하고 예쁘게 흐르는지 물 구경만 해도 하루를 보낼 수 있겠었잖아요. 아주 즐거이 둘러보았죠.


건물은 예쁜 디자인뿐만 아닌 사람의 사용감을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분명 고려에는 제약이 있을 거고요. 그래선지 건물 목업에는 사람 모형이 있었고 스케치에도 사람이 있었죠. 모형을 두는 데에 어떠한 공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에는 서 있는 사람이 있고 어디에는 걷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건물은 서 있는 그리고 걷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죠. 건물의 형태로 사람을 응원하는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응원한다는 건 오롯이 위한다는 건가 봅니다. 






몇 년 동안 미뤄왔던 안경알을 새로 맞췄습니다. 병원에 갈 일이 있었는데요. 하루 연차를 내고 간 거라 진료가 끝나니 시간이 여유롭더라고요. 큰 병원의 복잡함에 치여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길을 헤매다 안경원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늘의 뜻이려니 하고 들어가서 엉거주춤 “안경알 바꾸러 왔는데요.” 했습니다. 시력검사 이미지는 여전히 열기구더라고요. 반가웠습니다. 열기구가 흐려졌다 또렸해졌다를 반복하고 숟가락을 왼쪽 오른쪽으로 눈 가리길 반복했습니다. 


“좌우가 시력이 좀 많이 다르네요. 난시도 있으시고요. 기존 안경은 많이 불편하셨겠어요.”


난시요? 제가 난시요?? 처음 듣는 단어에 많이 놀랐습니다. 병원 안의 안과 옆에 붙어있는 안경원에서는 난시라는 단어를 말할 일이 흔하겠지만, 저는 살면서 처음 들었거든요. 참머리인 줄 알았던 제 머리가 반곱슬이라고 들었을 때보다 놀랐습니다. 밤눈이 어두웠던 게 야맹증이 아니라 난시 증상이라니. 기존 안경이 어지러웠던 게 초점도 문제지만 난시 교정이 되지 않는 렌즈라서였다니. 


무거운 안경 틀에 렌즈를 끼워놓고 직원분이 써보라 건네주었습니다. 써보았더니 눈이 부시게 세상이 선명하더라고요. 우와. 너무 싫었어요. 세상을 좀 흐릿하게 보는 맛으로 살았던 저는 일순간에 모든 것이 투명해질 만큼 깨끗이 보이는 게 부담스럽더라고요. 말없이 깨끗한 세상을 구경하는데 직원분이 “잘 안 보이세요?” 했습니다. 


“혹시. 너무까지 잘 보이지 않는 것도 가능할까요?” 물었고 직원분은 당황해 보였습니다. 그러곤 선명하게 보지 않으면 난시가 더 심해진다고 알려주셨죠. 네. 난시는 더 싫어서 세상 깨끗 안경을 받았습니다. 안경을 잘 쓰고 다니라는 신신당부도 함께 받았습니다. 

그래서 요즘 안경을 열심히 쓰려고 하는데요. 안경을 쓰면 시야에 원 모양의 테두리가 생겨서 답답하고 안경을 벗으면 깨끗과 갭이 커서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익숙해지려고도 해봤는데요. 아직은 코와 귀에 느껴지는 감각이 무겁기만 합니다. 깨끗한 세상의 무게란 이리도 무거운 것이었나 싶어요. 






완전히 거처를 옮기기 전 잠시 떠난 그곳은 어떤가요? 가끔 길가는 동물과 마주치고 골목의 반짝한 가게를 만나나요? 유로파의 이번 동굴에는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요즘 가늘고 길게 살자의 재해석이 유행합니다. 회색으로 있는 듯 없는 듯 묻어가는 게 가늘고 긴 것이 아니라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다하며 꾸준히 계속 남들이 알게 모르게 노력한다는 뜻으로요. 생각해 보면 맞아요. 인생 한 방이지! 하며 돌진하는 것도 좋지만 유로파처럼 자신만의 동굴에서 차분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꾸준히 발전하는 게 더 취향입니다. 어떤 것도 완벽하게 옳고 틀릴 순 없죠. 그저 취향에 맞는 쪽을 선택하면 됩니다. 


지금 삿포로에 있을 유로파는 왠지 지금 맥주를 마시고 있을 것 같군요. 그렇다면 멀리서 짠을 하러 저도 맥주를 한 잔 마셔야겠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유로파가 낼 취업턱을 기대하며! 한국에서 만나요!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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