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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o Jung Feb 06. 2018

소중한 사람들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20대에 들어서 인간관계에서의 선택권이 주어진다. 학창 시절에는 시스템에 의해 반이 나눠지고 그렇게 인간관계를 맺는다. 그렇기에 우리의 학창 시절 인간관계는 20대의 인간관계와 비교했을 때 내부적 요인보다는 외부적 요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나는, 나의 20대의 절반 이상을 보낸 뉴욕을 다시 방문하였다. 뉴욕엔 내가 선택한 사람들이 있고, 특히 이번 여행은 그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동기였기 때문에, 나는 그 아끼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에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있고, 그 과정에서 사람의 성격, 취향, 환경 등과 같은 속성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 선호하는 인간의 속성이 있기에 그것이 사람에 대한 감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림 <가>

그렇기에 보통 그림 <가>와 같은 형태이다. 첫 만남 후 단기간에 알 수 있는 속성들을 가지고 호감과 비호감으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자의든지 타의든지 그 사람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통하여 장시간에 알 수 있는 속성들을 인지 한 후 또다시 호감에서 호감, 호감에서 비호감, 비호감에서 비호감, 비호감에서 호감을 나뉜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친구들을 보면 그 친구들끼리는 공통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나의 친구 A는 본인이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A와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에 나의 친구 B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책을 읽는 사람을 좋아해서 B의 친구들은 대부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예들은 사람들이 굳이 본인과 비슷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본인이 선호하는 스타일의 사람들이 있고 그런 부분들이 인간관계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나는 나의 20살 이후 만난 친구들을 한명 한명 생각해보면서 그들이 딱히 어떠한 특별한 속성을 공유하고 있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는 인간관계를 어떠한 기준을 가지는 것일까?


이미 예전에 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속성 때문에 사람을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내가 아끼는 부류에 들어온 사람은 장점을 잃거나 단점이 새로 발견되거나 생겨도 나는 그 사람을 여전히 좋아하고 아낀다. 더 나아가 내가 불호하는 그룹의 사람들의 장점들이 아무리 발견되어도 내가 그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의 나를 향한 태도 또한 그들을 향한 나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다. 내가 불호하는 그룹의 사람들이 아무리 나에게 잘 해주어도 나는 감흥이 없으며 또한 내가 좋아하는 그룹의 사람들이 나에게 피해를 줘도 내가 그들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 피해에 대한 적절한 대처는 하겠지만) 이것은 내가 아닌 외부에서 오는 요인이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결정에 0의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가 된다. 이것은 사이코패스적 성향 중 무언가를 결정할 때 다른 사람의 의견과 여러 상황과 조건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 나의 즐거움을 위한 선택을 하는 성향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관찰자적 연구자들은 '충동적'이라고 표현한다/ '자기중심적'도 해당될 수 있다) 자주 예를 드는 것처럼 나는 기존에 선택했던 전공에 흥미를 느낄 수 없어서 전공을 바꿨고 바꾼 분야가 나에게 흥미롭기 때문에 학업을 이어간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특수성도 같은 성향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림 <나>

이 부분에 의문점을 가지고 생각해 보았을 때 나는 사람을 처음 만나고 그와 사적인 관계의 지속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같은 성향의 영향을 받음을 알게 되었다.  그림 <나>처럼 사람을 처음 만나면 각 사람에 대한 나의 느낌이 있다. 세 부류로 나뉘는데 그것은 좋은 느낌, 좋지 않은 느낌, 그리고 느낌 없음이다. 그리고 나도 자의든지 타의든지 그 사람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통하여 각 사람에 대한 속성들을 인지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인간관계와 다른 점은 속성들을 인지한 후에도 또다시 호감에서 호감, 호감에서 비호감, 비호감에서 호감, 비호감에서 호감을 나누는 프로세스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느낌이 안 좋았던 사람들과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필요성에 따라 만남을 지속해야 하는 경우, 그들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들이 인간적으로 참 괜찮은 사람임을 알게 되더라도 그들을 향한 나의 그 ‘느낌적인 평가’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 느낌 안 들었던 부류에게는 세월이 지나도 시간이 가도 똑같이 아무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 느낌이란 것은 진짜 느낌적인 느낌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느낌에는 ‘몸의 감각이나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기운이나 감정’ 이란 정의가 있고, 지식백과에서는 느낌을 ‘어떤 경험에서 비롯되는 순간적인 반응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의 시작에서의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이 나는 지독히도 일관성 있게 지속된다. 하지만 그것이 그 사람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느낌 좋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기준에서의 장점과 단점들을 인지하고 있으며 내 기준에서의 장점과 단점들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냥 그것이 그들에 대한 나의 느낌, 감정과는 전혀 별개의 것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의 성격, 취향, 환경 등 그 속성들을 알아가며 내가 어떠한 속성을 선호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달라질 수 있지만, 나는 지극히 내가 그 사람에게 느껴진 첫 느낌 그대로를 가지고 사람에 대한 감정을 고정해버리고, 후에 속성들을 알게 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성적 판단보다는 그 고정된 감정이 나의 사적인 인간관계의 기준이 된다. 그냥 그 좋은 감정에 집중할 뿐이다. 그렇기에 후에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는 내가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의 속성들은 그냥 순전히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구나를 인지하는 과정이지 속성들을 판단해서 싫고 좋고를 판가름하는 그런 과정이 아니다.


이것을 가지고 주변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높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사람에 대한 감정에 그 사람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이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를 하였다. 하지만 느낌으로 인간관계를 맺느냐 이성적 판단으로 인간관계를 맺느냐는 각자의 선택이었다. (여기서 인간관계는 인맥이 아니라 사적인 인간관계이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편견에는 '타인과 낮은 수준의 인간관계를 형성함'과 '사람을 이용가치로 판단함'이 있다. 하지만 오히려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에 집중하기보다는, 당신의 속성들을 알기도 전에 좋은 감정을 느껴서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기는 하지만), 후에 알게 되는 당신의 속성과 관계없이 계속 좋은 감정을 가져줄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당신의 모습이나 행동에 따른 이성적 판단'에 영향을 받는 '상대방의 감정의 변화'에서 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오히려 당신이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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