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서른 둘'이라는 나이를 기다렸다. 막연하게 정해놓은, 32세라는 나이가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분기점이었다. 그 나이가 되면 내 감정과 선택에 책임을 지고 흔들리지 않고,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내 생활도 모두 어른의 세계에 소속이 되어 완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 나이가 훨씬 더 많이 지나온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잘 흔들리고, 어쩌면 더 자주 아픈듯 하다.
내가 좀 감정적인 사람이라서인걸까, 철이 들지 않은 걸까... 여전히 나의 선택은 불안하고 앞으로도 내가 헤쳐가야 할 인생의 산들은 한참이 남아 있는 기분이 든다. 어른이 되었는데도 나는 왜 여전히 불안한 걸까.
그것은 아마 내가 지나온 시간만큼의 결과물은 내 앞에 있는데,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짊어진 채로 아직 살아보지 않은 삶을 향해 또다시 한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긴 다리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상태인 것.
사실 열일곱, 스무살의 마음에서 그렇게 대단한 성장을 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마음 속에는 철이 안 나고 겁도 많은 어린 아이가 살고 있는데, 겉으로는 어른의 삶을 살아간다. 어릴적에는 실패해도 괜찮다고, 가능성과 시간은 남아 있다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격려를 받을 수 있었겠지... 그렇지만 사실 어른의 나이가 된 다음에는 언제까지나 괜찮지만은 않다. 선택과 결정을 하고, 그리고 난 뒤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감정의 기복이 생기는 것, 가끔 쓸쓸해지고 밑도끝도없이 우울해지고, 작은 일에 상처받고, 인간관계는 힘들고... 그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아직 살고 있는 여린 어린아이때문이다. 위로받고 싶어 하지만 어른이라는 가면을 쓰고 다시 하루를 살아내려면, 내 속의 그 아이를 잘 숨겨놓고 어른스럽게 살아내야 하니까... 그러니까, 어른의 삶이 조금 더 힘이 들고 흔들릴 때도 있는 것 아닐까.
그러니 감정에 따라 흔들리고 나의 미래가 여전히 불안하고 막막한 건,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누가 얼마나 능숙하게 어른인 척 하는지와 아닌지로 나뉘어질 수 있는 문제라고나 할까.
그래서, 너무 어른으로 살려고 애쓰지 않으려고 한다. 어린아이처럼 설레이는 일을 찾아보고, 장난꾸러기 같은 마음이나 소녀같은 감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내 감정에 흔들리고 가끔은 실수도 하는 나를,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나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끔은 내멋대로 하고 싶은 일은 소소하게 해버리는 무모함도 저지르고, 말도 안되게 유치한 감정도 감추지 못하는 그런 어리숙함을, 나에게 지니고 있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일 아침, 다시 시작될 어른의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나는, 사회 속에서 내 할 일과 의무를 다해야 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