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ind.
대학교 다닐 때 매년 초 작은 수첩을 사서 들고 다녔다. 그 수첩에는 그날 만난 사람과 내가 간 장소, 그리고 그날 본 영화와 들었던 좋은 음악의 제목들을 적곤 했다. 수첩 뒤편의 공간에는 가끔 끄적이는 나만의 생각이나 느낌들이 채워졌다. 지나고나서 보면 살짝 부끄럽고 민망한 기록도 많지만, 꽤 오랜 시간동안 버리지 못하고 보관해두는 나만의 소중한 기록장이었다. 얼마전 이사를 앞두고 책상 서랍을 정리하면서 그 기록들을 다시 살펴보았는데, 그 속에는 나라는 사람의 지나온 날들이 담겨 있었다. 잊고 있었던 많은 기억들이 새롭게 떠오르기도 했고, 어떤 부분의 나는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또 어떤 부분의 나는 그대로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SNS가 가진 많은 기능 중에, 내가 좋아하는 기능 한 가지는 바로 "몇년 전 오늘"의 소식을 배달해주는 알림이다. 몇년 전 오늘의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몇년 전 오늘은 이곳에 있었구나. 확인하며 신기해한다. 분명 나 자신이 쓰고, 올린 게시물인데도 재미있어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고 변한 정도를 가늠하는 시간도 재미있고, 때로는 몇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감정의 하루를 보내고 있는 우연의 일치를 경험하며 신기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 흔적과 역사를 기록해놓길 참 잘했구나, 하고.
이유없이 나 자신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날, 오래전 적어둔 내 꿈의 목록을 다시한번 찾아서 읽어본다. 그 꿈을 적었던 날의 나 자신이 가졌던 마음을 돌아보며 살짝 기운을 내어본다.
길가의 꽃한송이를 몸을 숙여 찍었던 날, 한순간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을 사진에 담았던 날, 어느 여행지의 기억들, 맛있는 음식을 꼭 나와 함께 먹고 싶었다며 데려가준 친구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날의 기록들... 그런 날의 사진들을 보면서, 일상의 작고 소중한 순간들을 지나치지 않고 모아둔 나 자신이 기특해지기도 한다.
지나간 시간의 나는 항상 밝고 행복한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힘들고 우울한 날의 기록도, 울고싶었던 밤의 기억도 가끔 찾아본다. 어떤 어두운 기억은 그 시간을 통과해냈기에 현재를 좀 더 감사할 수 있게 되고, 어떤 아픈 기억들은 조금씩 무뎌지기도 하고 그로 인해 성장한 기회가 되었다고 나를 도닥여주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순간순간의 어두운 생각과 캄캄한 감정들도, 충분히 느끼고 아파할 줄 아는 그때의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한다.
그래서 내 기록의 습관을 사랑한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생각을 남기고, 읽은 책의 감상과 좋았던 문장들을 정리하는 작업은 평생 하게될 것 같다. 그리고 이 기록들이 부끄럽지 않게, 나 자신을 내가 돌아보며 조금 더 사랑해줄 수 있게,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놓치지 않도록, 마음을 기울이며 하루하루를 살아내야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