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호치민 - 이나영
소녀가 울고 있었다.
그곳의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이다.
전화기 너머, 다섯시간 시차의 먼 도시에 있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일은..
머릿속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 된다.
심장에선 무언가가 쿵 떨어졌는데, 동시에 가슴 안쪽에서 작은 통증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야, 괜찮아?"
"아니야 엄마. 아무 일 없어.. 그런데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무슨 일 있으니까 그런거잖아. 무슨 일인데.. "
"정말 아니야 엄마. 그런데 마음이 좀 힘들어.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니고 마음이 힘들어서, 그냥 그런 기분이어서 전화한거야. 엄마는 깨어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다시, 데구르르. 떨어지는 심정이 된다.
마음이 힘들다는 말이 또 그렇게나 아프다.
소현이는, 여간해서 아프다,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하는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프다고 하면 정말 아픈거고, 힘들다고 하면 정말 못견디게 힘든 일일 것이다.
어릴 때, 속상해서 우는 아이에게 아이 아빠가 '울지 말고' 얘기하라고, 엄하게 나무란 적이 몇 번 있었다. 누군가의 비난을 듣기 싫어하는 아이는, 그때부터 울 때마다 눈물이 떨어지기도 전에 눈물을 닦고, 또 닦고, 닦아냈다. 속상하고 억울할텐데도 얼굴 표정은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그러면서 울음을 참곤 했다. 나는 그게 안쓰러워서, 아이답지 않게 견디는 그 모습이 아파서 자주 말해주곤 했다.
- 소현아, 울어도 돼.
- 속상할 때는 울어도 되는 거야.
- 눈물은 나중에 닦아도 돼.
그러면, 그제서야 무언가 툭 터지듯, 아이는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내며,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곤 했다.
그 먼 곳에서도 울음을 참고 있을까봐, 눈이 붓도록 눈물을 계속 닦아내고 있을까봐 나는 그게 또 마음이 쓰인다. 내일 아침에 눈이 퉁퉁 부어 학교를 가면 어쩌나...하고.
잘 지낸다고만 생각했다. 전공 공부를 너무 사랑하고, 성취감과 기쁨으로 과제를 하고, 착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 감사하다는 아이였기에 무탈하게 지낸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한주 내내 한국말 한마디를 쓸 일이 없는 환경에서,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소박한 기숙사의 방에서 홀로 잠들고 일어나 끼니를 챙겨먹고 학교를 다니는 열아홉살의 시간이 어떻게 핑크빛이기만 하겠는가.
지난 2년간 파리는 수시로 파업을 했고, 대중교통은 자주 멈추었고, 인터넷 사정은 열악하고, 평생 여름의 나라에서 살았던 아이에게 유럽의 겨울은 혹독했을 것이다.
아이가, 경제적으로 풍족한 지원이나 뚜렷한 확신 없이 유학을 보낸 부모의 사정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그 모든 일들을 언제나 괜찮다고만 했다. 잘지낸다고만 했다. 그리고 나는...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의 말만 믿었다. 그래서 참 태평스럽게도, 별일 없이 하루하루 지내면 괜찮겠지...라고만 생각했다.
나의 그 무심한 마음이 또 속상하고, 마음이 저릿하다.
아이는 아마, 오랜 시간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고 확인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을 것이다.
잘 지낼거야, 잘 버틸거야, 나는 잘 해낼 수 있어... 그런 마음들.
그게 쌓이고 쌓여 툭, 쓰러지는 감정이 되었겠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쏟아지는 그 마음이, 도대체 얼마나 참고 견디다 터진걸까 하는 마음이 되어 나도 눈물이 흐른다. 아이는 나 이외의 그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내 목소리가 떨려 나올까봐, 숨을 참고, 깊게 숨을 한번 내쉬며 아이에게 짐짓, 명랑하게 말해준다.
"잘했어. 전화해서 힘들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속상할 땐 엄마가 걱정할까하는 생각 하지 말고, 이렇게 전화해. 전화해서 울어도 돼. "
+++
전화를 끊고 나는 출근 준비를 한다. 소현이는 나와 전화를 끊고 훌쩍이다 잠이 들었으려나.
이런 날은, 소현이가 없는 호치민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너무 멀리 있네...라는 생각이 든다.
소현아, 오늘은 힘내서 너를 믿어주기를.
오늘은 어렵고 고단했지만 좋은 날들도 너에게 있기를.
스스로를 믿다보면 또 살아낼 수 있을 거라는 말 밖에는 해줄 수 없는 이 엄마가 너무 미안하지만... 그래도 너는 이미 마음을 가다듬고 오늘을 또 살아내줄거라는거, 너무 잘 알아.
이미 힘내고 있을 너를, 알아. 그 마음이 대견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해.
그리고, 언제나 보고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