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맥시멀리스트이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는 나는, 과제를 제출할 때마다 교수님들에게 비슷한 평을 듣곤한다.
"소현, 너는 맥시멀리스트인 게 너의 작품에서도 보여. 최대한 많은 디테일과 네가 보여주고 싶은 모든 것들을 작품에 넣고 싶어하는 것 같아."
그런 사람이어서일까, 어쩔 수 없이 내 가방 안에는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많은 물건들이 담겨 있다. 그 많은 물건들의 대부분은 '언제 어디서, 무엇이 필요할 지 알 수 없으니까' 준비하고 들고다니는 물건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모든 물건들은 세트일 때 안심이 된다.
최근 나의 최애 아이템은 마샬 헤드셋이다. 혹시 충전이 안되어 있을까 하는 걱정에 유선 이어폰도 들고다닌다. 머리를 올려묶을 때 쓰는 집게 핀을 가방끈에 달고다니는데, 어딘가 머리를 기대고 다닐 때 집게핀은 머리를 누르고 아프게 할 수도 있으니까, 머리끈도 같이 넣고다닌다. 그런식으로 물건 하나가 있으면 그 물건의 친구도 같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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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파리 한국 문화원에 도서관이 있고, 한국 책을 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내 가방에는 항상 책이 들어 있다.
파리의 지하철에나 버스에는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다. 그 사람들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 따라하고 싶은, 허영심에서 시작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한국문화원에 가서 책을 빌리고, 책을 들고다니는 내가 조금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들고 다니고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책 읽는 재미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독서가, 올한해 지하철에서 읽은 책만 열다섯 권이 넘어간다. 학교 갈 때 20분, 알바 갈 때 30분 정도 이동하며 책을 읽다보니 가끔 깜박하고 책을 챙기지 못한 날은 너무너무 아쉬운 마음이 크다. 책을 들고 다니고 책을 챙기고 싶어하는 내가 스스로 겉멋인가? 허영심인가?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책을 좋아하게 된 나 자신이 뿌듯하고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책은, 내 가방 안의 필수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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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섬찟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나는 종종 가방에 손을 집어넣고 뒤적뒤적하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려 피를 보곤한다. 그 주범은, 마네킹에 천을 고정할때 쓰는 핀이었다. 수업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들어가기도 하고, 언제 어디에서 들어갔는지 모를 핀들은 언제나 가방 속에 굴러다닌다.
그런 핀들, 구겨진 영수증, 원단 스와치... 내 가방 안에는 그런 것들이 여기저기 들어 있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오만가지 물건들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맥시멀리스트인 내가 마음에 든다. 아마 평생 미니멀리스트는 글러먹은 것 같다.
그림: 이소현
소현이랑 책이야기를 종종 할 때가 있다. 소현이가 읽으면 좋아할 것 같은 책들을 기억해두었다 알려주곤 한다.
언제부터인지 파리 한국문화원 도서관을 드나들며 책을 읽는 그녀가 기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내가 유일하게 강조한 것 하나가 독서였는데. 그녀의 삶에 그 메세지가 스며들어 책을 들고 다니는 자신을 뿌듯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책덕후로 살아온 엄마라서) 기쁘고 기분이 좋았다.
책읽는 사람들을 보면 엄마를 떠올려주어 고맙고, 그 먼나라에서, 한국어로 된 책을 반가와하고 소중히 여기며 읽는 그녀가 예쁘다. 그녀가 지난 한해동안, 지하철에서 책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답다며 사진을 몰래몰래 찍어 나에게 보내주었다.
"엄마, 엄마도 이런 모습 좋아하는거지?"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훈훈해지는 기분이어서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