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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Oct 02. 2024

내가 파리에서 사랑하는 곳.

나의 파리 - 이소현

3년전 대학생활을 위해 파리에 처음 도착한 그 여름, 나와 엄마는 입학을 위한 준비를 하는 사이사이 파리의 명소 이곳저곳을 열심히 다녔다. Shakespeare & Company를 비롯한 서점, 파리 시내가 한눈에 다 보이는 라파예트 백화점 옥상, 보쥬 광장과 몽소 공원 등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엄마가 베트남으로 돌아간 뒤,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한인민박집에서 며칠 머물렀는데 그때 파리로 여행을 온 언니들과 오르세 미술관부터 오랑주리 미술관까지 다니며 개강 전 파리 관광을 실컷 했다. 


그런데 내가 공원의 꽃이나 미술관의 모나리자를 보는것보다 파리에서 더 재미있어 하는 것은 사람구경이다. 내 눈에는 너무나 멋져보이는 사람, 내가 배울점이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을 나는 재미있어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관광지나 미술관에 있는 예술품을 바라보는 것보다 공원 벤치에 앉아 다리를 꼬고 책읽는 사람,  박물관 바닥에 앉아 미술 작품을 노트북에 스케치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특별하고 의미있게 다가왔다.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파리지앵의 모습인 것만 같았고, 그런 선망의 마음을 갖고 나도 그런 파리지앵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파리 생활이 시작되면, 나도 그런 사람들 속에 섞여들어가 공원이나 미술관, 박물관을 매주 찾아가서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다. 


그런데, 막상 개강을 하고나서는 정신없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쁘기만 했다. 하루하루 지친 몸으로 기숙사에 들어와 쓰러져 잠들기 바빴고, 가을이 되자 평생 여름나라인 호치민에서 살던 나는 유럽 가을의 스산한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전기장판을 틀어놓은 침대위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1학년 첫번째 학기에 파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결국 기숙사 방,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4도로 온도를 맞추어 놓은 전기장판이 깔린 내 방 침대 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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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친한 친구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파리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는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5유로에 파는 11구의 바와, 맥주 1리터를 7.5유로에 파는 14구의 맥주집이 되었다. 기숙사 저녁 식사를 먹지 않으면 기숙사 식당 출석표에 빨간색이 표시되는데,  매주 금요일 밤이면 내 식당 출석표는 빨간색이 되곤 했다. 친구들과 맥주 한잔에 4유로를 넘지 않는 바를 찾아다녔고, 도장깨기하듯 그 리스트를 점점 늘려가는 즐거움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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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서 도보로 30초만 걸어나오면, 생마르탱 운하가 있다. 길게 뻗은 강변길에는 사람들이 커피나 샌드위치를 먹고, 전화를 걸고, 책을 읽는다. 나는 점점 그곳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가을이 깊어지면서 단풍잎이 떨어지는 가을밤, 친구들과 가디건과 목도리를 가볍게 두르고 나가서 걸으며 많은 대화를 하곤 했다.


학기마다 있는 작품 심사가 다가오는 기간에는 작품을 만들기 위한 준비물을 사기 위해서, 용돈을 아끼려고 금요일이 되어도 바에 가지 않았다. 그런 금요일 밤에는 친구들과 근처 마트에 가서 와인 한병씩, 과자, 그리고 소시송(saucisson:프랑스 소세지)을 사서 생마르탱 운하 옆에 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오들오들 떨면서도 웃고 떠들고, 술 기운에 따뜻해진 몸을 서로 꼭 붙이고 앉아 놀곤했다.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으면 피크닉을 하러 나갔고, 햇살 쨍쨍한 여름에는 운하 바로 앞에 있는 작은 공원에 다 같이 누워 태닝을 했다. 그렇게 생마르탱 운하는 지난 3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웃고, 울고, 떠들고, 친구들과 술취해서 춤추며 뛰어다닌 특별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많이 깃든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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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파리에 왔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 매주 박물관 의자에 앉아 스케치를 하고,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읽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생각한다. 파리의 허름한 맥주집에서 친구들과 비밀 이야기를 나누고, 생마르탱 운하 옆에서 금요일 밤마다 피크닉을 하며 뒹구는 내 파리 생활 또한, 그 어떤 파리지앵보다 더 파리지앵 같은 것이라고, 그리고 이런 나의 삶을 부러워 하는 사람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라고. 


그림: 이소현
소현이랑 기숙사 서류를 내러 갔던 날 찍었던, 생마르탱 운하에 앉아 있는 파리지앵들.

(파리에서 내가 보았던 공원의 책읽는 사람들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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