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 준비를 위해 엄마와 파리에 왔을 때, 샤뜰레 역 근처를 관광하며 걷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비를 피해 무작정 뛰어들어간 곳이 지하철역과 연결된 영화관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들의 머리 위에 <헤어질 결심> 포스터가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엄마와 나는 백퍼센트 마음이 맞아 주저하지 않고 십분 뒤에 시작되는 영화를 보러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시작하기 전, 파리에서 당장 어디에서 살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가을의 추위와 우중충한 날씨를 피해 엄마와 함께 본 이 영화는 내 마음 속에 너무 특별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영화 속에서 서래가 중국어로 이야기 할때 밑에 나오던 프랑스어 자막을 한국어로 엄마 귓속에 속삭이며 통역해주던 순간도, 마지막 해변 장면에서 해준이 서래 이름을 소리칠 때 엄마와 내가 느꼈던 전율은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가 호치민으로 돌아간 뒤, 이 따뜻한 기억에 대한 그리움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족도, 친구들도 없던 처음 몇달은 영화관이 나에게 도피처가 되었다. 영화관에 가서 눈물이 떨어지면 엄마도 없이 혼자 있는 내 외로운 타지 생활때문에 우는게 아니라, 영화가 슬퍼서 우는거라고 스스로 핑계도 대보고, 프랑스 영화를 볼 때에 다른 관객들과 같은 타이밍에 웃고 '내가 이 정도 불어는 이제 이해하는구나’ 라는 뿌듯함을 느끼기 위해 자주 갔었다. 영수증 쪼가리 같이 생긴 영화 티켓을 모으는 재미를 들였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 티켓에 6유로를 쓰는 것은 나에게 행복한 소비였다.
기숙사에서 마음맞는 친구들이랑 같이 영화를 보러 갔다가 너무 울어 같이 눈이 퉁퉁 부어 나오는 주말들이 좋았고, 가끔씩 나에게 와서 홍상수와 박찬욱 감독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순간들이 소중했다. <미드소마>를 보며 나도 a24 같은 제작사에서 일하며 영화 속 코스튬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바빌론>을 혼자 보러가 마지막 회상 신에서 떨어지는 눈물 두방울을닦으며 언젠가는 데이미언 샤젤 영화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나오게 하리라는 다짐을 했다.
영화 코스튬 전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 이전에는 한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꿈이다. 이제 나에게 그 꿈은 좀 더 구체적이고, 선명해지고 있다.
+++
프랑스도 한국처럼 영화관 체인이 한 세군데 정도 있다. 하지만 나는 큰 극장 보다는 소극장을 좋아한다. 소극장 중에서도 10구에 있는 l’Archipel 이라는 극장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하나밖에 없는 키오스크에는 할머니가 앉아서 티켓을 판매한다. 몇달 전 본 베트남 감독의 <노란 누에고치 껩데기 속>은 이십여개 좌석 밖에 안되는 아담한 상영관의 빨간색 벨벳 극장 의자에 앉아서보았다. 영화가 끝난 뒤 상영관에서 나와 6평 남짓 되는 이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으면, 가끔 운이 좋을때지난 영화 포스터를 무료로 나누어주기도 해서 이것저것 챙겨 오는 재미도 있는 극장이다.
샹젤리제 거리 옆언덕을 내려가다 보면 있는 Le Balzac 소극장에는 영화 포스터가 줄줄이 붙어있는 통로가 있다. 어둡지만 따뜻한 조명이 비추고, 지하로 점점 내려가면서 핸드폰은 통신이 끊긴채 이 통로를 걸어가다 보면 따뜻한 문화의 세계에 갇히는 듯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여름방학 직전에 친구와 이 영화관에서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를 보고 영화관 의자에 앉아 한참동안 엠마 스톤의 연기에 감탄하고, 영화에 담긴 감독의 생각이 무엇일지 토론을 했다.
그렇게 영화는 내 삶에 스며들어 나의 생각을 넓혀주고 있고,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집에 가는 길, 사운드 트랙을 음미하며 집으로 걸어가는 바람 부는 날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영화와 영화관은 아직도 나에게 따뜻한 도피처이자 마음의 평화를 느낄수 있는 곳이다. 눈치 볼 필요 없이 감정을 쏟아내고 느낄수 있는, 어두컴컴한 이 공간이 나는 좋다.
그림: 이소현
+++
파리에서 <헤어질 결심>을 보던 날의 기억은 나에게도 너무나 특별하고 아름답다.
계획에 없던, 소나기로 인해 들어간 외국의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하필 그 영화여서 감동이었고, 신비롭고 아름다왔다. 프랑스 관객들이 웃는 포인트는 나와는 조금 달랐는데 그 느낌도 신선했다.
탕웨이의 중국어가 아름답다고, 그런데 프랑스어 자막이라 무슨말인지 모르겠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소현이가 몸을 기울여 나에게 통역을 해주는 순간, 아이의 섬세함과 다정함에 살짝 눈물이 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때는 며칠 뒤면 아이를 그곳에 두고 와야하는 엄마의 마음이라 좀 더 감정적이었을테니까. )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극장에 자주 간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었다. 집에서 핸드폰으로 sns에 열중하거나, 넷플릭스만 보지 않고 극장을 자주 찾는 아이의 모습이 좋았다. 내 입장에서는 하루에 삼만보를 걷고 또 걸어도 지치지 않던, 아름다운 도시에 살게 된 아이가 많이 다니고 많이 걷고 무엇이든 직접 보고 느끼기를 바랬으니까.
그래도 평생 패션쇼 무대에 올리는 옷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던 아이가 방향을 틀어 영화의상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는 조금 놀랍기는 했다. 그렇게나 영화에 진심이었구나. 싶으면서도 소녀가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고 보이는 것이 나와는 많이 다르겠구나 싶어 궁금하기도 하다.
파리의 극장이, 파리에서 본 영화가 내 아이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고 성장시키고 있나보다. 그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니 그 또한 너무 아름다운 모습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