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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Dec 09. 2024

서울, 호치민, 파리에서 만난 나의 인연들

너의 파리 - 이소현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5살 때 베트남으로 가서 자랐고, 대학은 프랑스로 왔다. 어쩌다보니 한국과 베트남, 프랑스 세 나라를 거치며 살아오게 되었는데 그것은 참 특별하고도 감사한 경험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들을 새로 사귀었다가도 헤어지고, 문화와 환경이 너무나 다른 각각의 도시에서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인간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 쉽기만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어릴 때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베트남에 오기 전까지 한국에서의 기억들이 꽤 많이 남아 있는데, 유치원 때 사귀었던 친구들은 이제 얼굴도 가물가물 하지만, 가끔씩 그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을지, 그들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베트남에 처음 갔던 유치원 시기부터 초등과정 까지는 호치민에 있는 미국 국제학교를 다녔다. 그때 아마도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우정을 키워나가는 방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은 너무나 소중한 기억을 남겨주었지만, 이제는 인스타그램으로 가끔씩 소식을 접하는 것으로 우리의 우정은 마무리가 되었다. 꿈과 생각만 크고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시절을 같이 보내던 어린 친구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각자의 생활을 열심히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은 항상 따뜻해진다.


중고등학교는 호치민에 있는 프랑스 학교로 전학을 가서 새로운 시절을 보냈다. 나에게 제일 편하고 익숙한 언어적 소통 수단이었던 영어를 밀어내고 배운지 일년밖에 안된 불어로 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애쓰던 내 자신을 되돌아보면 짠하면서도 안타깝고, 그 때 나도 엄청 많은 용기를 내며 노력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프랑스학교로 갔던 수업 첫날, 불어로 salle de bain(집에 있는 욕조가 딸린 화장실)과 toilettes(생리현상을 해결할수 있는 화장실)의 차이점을 아직 이해하지 못해 영어를 잘 하는 반 친구를 찾아 아주 큰 용기를 내어 소통을 시도한 것이, 프랑스학교에서의 내 첫번째 대화였다. 잔뜩 긴장하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아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열 두살 짜리 중학생은 이제 파리에서 대학생이 되어 한국어와 불어를 비슷한 수준으로 하는 만큼 컸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불어로 소통하는 것이 어려워 학교 가는 것이 무서워 울기만 했던 시절을 거쳐, 결국 프랑스학교에서 중등, 고등 시절을 보내며 평생을 같이 웃으며 지낼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해준 친구들을 사귀었다. 매일 비쥬(프랑스식 볼 인사)를 하며 아침을 열었고, 선생님께 혼난 날은 서로를 위로해주며 같이 울고, 입시 기간에는 서로에게 용기와 희망의 말들을 나누며 같이 컸다. 별게 아니었을지도 모르는 친구들과 그 당시에 했던 농담, 같이 보냈던 도서관에서의 자습시간과 모든 순간들이 이제는 미화된 추억으로만 남아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아무것도 모르며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중 가장 친했던 세 친구 중 한 명은 캐나다로, 두 명은 나와 함께 파리로 왔다. 파리로 와서 매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던 약속은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같은 학교, 시간표를 나누던 시절은 지나갔고, 대학생활을 하며 시간을 맞추어 만나는게 그렇게 힘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그 친구들과 세 달에 한번씩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만나는 날이면, 고등학교로 돌아간 것처럼 시간이 지나가는줄 모르며 웃고 떠들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못 만났는데도 꺼리김 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이런 친구들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항상 따뜻해진다.


캐나다에 대학생활을 하러 간 친구도 거리는 멀어졌고 우리가 만나는 횟수는 몇 번 되지 않지만, 방학 때 베트남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하며 애틋해하면서도 신나게 보냈다. 올해 6월, 우리가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던 순간은 아직도 너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대학생이 된 우리는 아이라인 그리는 방식만 달라졌지, 다른 것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고 고등학교 때 그대로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날의 대화를 통해 서로 그동안 우리가 프랑스와 캐나다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많이 성숙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우리는 고등학교 때 있었던 이런저런 일, 사건, 추억들을 회상하면서 그때로 다시 돌아갈수 있다면 똑같이 행동했을까? 라는 질문을 하며 정말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 끝에 내린 우리의 결론은, 후회되는 순간들이 있을지는 몰라도 아마 그 시간으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우리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모든 상황을 통해 우리는 이만큼 성장을 했고, 그런 경험들과 모든 상황들이 쌓여 우리가 이렇게 성장을 하고 지금의 모습처럼 자랐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우리의 2024년 여름은 지나갔다.


고등학교 시절, 기억에 남는 관계가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나의 첫 남자친구이다. 그 당시에는 정확히 알아채지 못했었다. 그 선배는 나에게 내가 돌려줄 수 있는 사랑과 관심의 양보다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주었고, 그 덕분에 나는 지금 더 따뜻하고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어쩌다보니 내가 먼저 마음이 식어버리고 헤어지자고 차갑게 말하며 관계를 정리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오래전 일이다. 최근 그는 새로운 여자친구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선배가 행복하다는 사실에 나도 더없이 기뻤고, 끝난 인연이지만 내가 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느끼며 행복을 빌어주는 어른으로 자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프랑스로 대학을 와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은 기숙사 친구들이었다. 아시아인은 기숙사에 나 혼자였지만 그 친구들도 프랑스의 각 지역에서 가족을 떠나 파리로 상경한 친구들이었다. 막 열여덟살이었던 우리는 파리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일과를 함께 나누곤 했다. 그렇게 일년동안 가족보다도 더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로 지냈지만 여름방학이 되면서 떠나는 친구도 많았고 다시 언제 만날 지 모르는 멀어질 인연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파리에서의 첫 1년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 2학년 때는 더이상 같은 기숙사에서 안 지낼거라는 사실만으로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슬펐지만, 그 많은 헤어짐들과 아쉬움이 시간이 지나면 또 정말 별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학년을 마치고 기숙사를 떠난 많은 친구들 중 아직까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은 단 두명뿐이지만, 파리에서 나를 챙겨주고 생각해주는 따뜻한 인연들로 남았다. 우리는 나중에 각자 다른 나라에 살아도 서로의 결혼식에는 꼭 초대해주기로 약속했고, 나는 그 친구들의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파리의 작은 식당 두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지도 3년이 되어간다. 그 시간 동안 친구라기 보다는 동료의 개념이 더 큰 사람들을 만났다. 인생의 깊은 고민 이야기를 같이 하는 친구들과는 확실히 다르지만, 일이 끝나고 맥주 한잔을 같이 하러가서 가벼운 농담과 이야기들로도 가까워지는 인연도 있다는 것을 배우기도 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일을 그만두면 이제는 더 볼 일은 없을지도 모르고, 그저 sns로 소식을 접하는 것으로 인연이 마무리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지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어느 날 진상 손님이 오거나, 왜인지 모르게 일하기 싫은 날 가장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 함께 일하는 아르바이트 동료 오빠가 결혼 소식을 전하며 청첩장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내 이름을 제일 먼저 써주었다는 이야기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고, 나 또한 내 인생의 첫번째 청접장을 받아들고 내가 정말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다양한 도시와 학교를 거치며 자란다는 것은 생각치도 못한 인연들을 불러온다. 고등학교 때 프랑스학교에 다니면서 참가한 싱가포르 모의 UN회의에서 알게 되었던 친구가 캐나다로 대학을 간 내 친구와 동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얼굴만 알고 있던 후배가 내 대학 동기와 고등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라는 것을 알았을 때.... 새삼 세상이 정말 작고 어떻게든 다 인연으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를 바꾸며, 나라를 바꾸며 만난 인간 관계는 다채로왔다. 스쳐 지나가는 얼마 가지 않을 우정을 느껴보기도 했고, 평생 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친구들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뭐든 좋은 인연들이 나에게 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그림:이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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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섬세하고, 주변 사람과 환경의 변화에 예민한 아이였기에 나라를 옮기고 학교를 옮길때마다 아이가 받아야하는 스트레스에 대한 고민은 늘 있었다. 무엇보다 유별나게 키우려고 한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아이가 받아들여야하는 변화의 크기가 큰 편이었다. 아이가 늘 잘 견디어주길, 잘 적응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의 의지와도 상관없고 내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면 바로 아이가 만나는 사람, 인간관계였다. 


아이를 파리에 두고 오면서도 가장 두렵고 막막했던 마음이 바로 그 지점이었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멀리 다른 나라로 돌아가는 동안, 아이가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를 나서는 그 순간부터 누구를 만날까, 기숙사에는 어떤 아이들이 올까, 학교에서는 좋은 친구를 만날까... 그것은 정말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어떤 것보다도 막막하고 무서웠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좋은 친구를 사귀고, 좋은 인간관계들을 만나며 성장했다. 그런데 글을 읽다보니 아이가 운이 좋아 좋은 인연들만 만난 것이 아니라,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 또한 아이가 가진 마음그릇의 크기에 달린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든다. 많은 변화와 우여곡절들을 겪으며 힘들었던 날도 있었을 것이고 많이 울기도 했었을텐데 그 모든 시간들을 담대하게 받아들이고 다양한 관계에 감사하는 아이의 모습이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은 아무래도 누군가가 떠나고 헤어지는 일들에 덤덤한 면이 있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 건조한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쓰이는 때도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또 요즘 아이들다운 방식으로 인연을 이어가고 sns로 소통을 하기에 만남과 이별에 대한 마음가짐이 내 또래와는 다른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곁을 지켜주는 다정하고 고마운 인연들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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