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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Dec 18. 2024

스무 살 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어릴 때 너는, 누군가가 한 말과 행동을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는 아이였어. 내 말은 물론이고 나의 미묘한 표정 하나에도 내 기분을 알아차리곤 했지. 조금 자라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하루종일 야무진 모범생처럼 굴다가도 저녁이면 이유 없이 감정이 예민해지거나 울어버리기도 했는데, 나는 그것이 아마도 네가 종일 친구들과의 사회적 관계에서 오가는 여러 가지 감정을 온마음으로 다 느끼면서 받는 스트레스일 것이라고 짐작을 하곤 했어.


너는 어디서든 착하고 바른 아이로 통했지. 친구들 앞에서는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는 아이였고 어른들 앞에서는 떼를 쓰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나는 너의 그 모습이 조금 아프고 속상했어. 아마 다른 사람들도 너처럼 상대방의 태도와 행동, 말을 다 느끼고 받아들일 거라 생각해서 더 조심하고, 더 섬세하게 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왔던 것 같아. 사실 나는 너와 다르게 내 감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너의 섬세함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몰라. 그 섬세함이 너 스스로를 다치게 하거나 상처받고 참기만 하는 사람으로 만들까 봐 걱정이 컸던 것 같아.


사람의 성품을 결정짓는 재료 두 가지가 있대. 하나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기질'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환경과 관계에 따라 자라면서 변할 수 있는 '성격'이라는 거야. '기질'이라는 것은 잘 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기질'에 어떤 '성격'이 섞여 들어가느냐에 따라 사람의 삶이 달라지는 걸 거야. 엄마인 나는 네가 태어날 때부터 세포 하나하나에 새기고 태어난 너의 '기질'을 준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이 있고, 그 책임에 대한 의무가 하나 있다면 '기질'에 잘 맞는 '성격'변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역할이 아닐까 싶어.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엄마라고 해도 아이가 경험하는 세상 모두를 통제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


나는 애초부터 알고 있었어. 나는 네 앞에 놓인 모든 위험요소를 없애고 상처받지 않고 이기는 법만 가르치는 엄마는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야. 그래서 때로는 네가 울면 등을 쓸어주는 일을 해줄 수밖에 없었고,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너의 마음과 같지 않다는 뻔한 위로를 해줄 수밖에 없었고, 또 어떤 때는 작고 사소한 것으로 연연하지 말라고, 너의 감정과 생각이 지나치다는 모진 말로 너를 더 아프게 했을지도 몰라.


스무 살이 된 네가, 이제는 너의 신념과 이상을 당당하게 표현하고, 너를 믿어주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네 주변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느껴. 그렇지만 너는 여전히 관계에 있어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신중하고 생각이 많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어릴 때처럼 그저 참고 속상해하는 여린 마음이 아니라, 너의 판단과 생각을 믿는 모습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너는 너의 섬세함과 신중함, 호기심이 가득한 너의 '기질'이라는 씨앗에, 너 스스로를 믿는 자존감과 꿈을 향해 노력하는 성실함을 넣어 휘저어 근사한 나무로 키워낸 것만 같아.


지금껏 너는 몇 개의 산을 넘어 지금의 네가 되어왔어. 나는 네가 산을 넘을 때마다 같이 손잡고 걸어가 주는 엄마가 아니었어. 그저 나는 '그 길이 맞는 것 같니?'라고 물어보기만 하고, 너는 언제나 '갈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답하며 걸어가면 나는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어.  네가 가끔, '엄마, 이 길이 너무 힘들어..'라고 돌아보며 울 때도 있었지. 나는 같이 울기도 했고 마음 아파하기도 했지만 내 역할은 거기까지였을 뿐, 너는 다시 눈물을 닦고, 마음을 추슬러 걸어가는 아이였지. 그런 너를, 나는 기특해하고 고맙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야.


그래서 이제껏 너에게 무언가를 많이 요구하거나 바라지도 못했던 것 같아. (내가 너를 강하게 뜯어말린 것은 얼굴에 피어싱, 몸에 타투...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너의 선택과, 용기와, 성실함과, 꿈에 대한 열망을 모두 다 지지해. 하지만 내가 아무리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해도 너는 삶의 고비를 만나게 될 거고, 아프거나 넘어지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있겠지. 그런 것들이 너라는 사람 전체를 흔들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야.




소현아, 너무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 누군가가 바라는 사람이 되지 마. 너는 너 자신이 원하는 그 사람이 되면 충분해. 있는 그대로의 네가 너무나 충분하고 꽤 근사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


무례한 사람에게는 솔직하게 네가 느낀 감정을 전달할 때도 있기를 바라. 이것은 나에게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서 나도 세련되고 후회되지 않게 내 불편함을 전하는 마음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해. 뱉어놓고 후회할까 봐 그저 참거나 잊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더 많았는지도 몰라. 하지만 관계를 지키기 위해 나의 에너지만 소모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이 지속되거나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 약간의 불편함, 소소한 의아함,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면 그때그때 해결하는 현명한 방법을 꼭 찾아내길 바랄게.


누군가의 앞에서 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 슬플 때 마구 울어버리고, 다시 눈물을 닦고 부은 눈을 가라앉히며 새로운 날을 시작하는 사람이어도 괜찮아.


좋아하는 사람,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그 마음을 아까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많이 티 내고, 자주 표현해 주면 좋겠어. 누구나 여러 가지 모습을 갖고 있지만 상대의 어떤 한 부분이 장점으로 느껴질 때, 무언가 근사해 보일 때, 상대의 마음에 감동할 때 그 기분을 숨기지 말아 줘. 그런 표현들은 관계를 좀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야.


이 세상에 무엇이든 영원한 것도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은, 엄마가 전에도 했었지? 그러니 사람에게 너무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데, 또 한편으로는 나 역시 너무나 사람의 말에 위로받고 누군가의 진심에 감동하며 힘내어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사람에게 연연하지 말라는 나의 말은 조금 진정성이 없을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런 말인 것 같아. "지금, 현재 네 옆에 있는 사람의 진심을 믿어보자"라고. 그리고 너 역시도' 지금 이 순간 너의 마음'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도 이야기해주고 싶어.



너는 이미 충분히 근사한 사람이라고, 나의 스무 살 때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이렇게나 많네. 그건 아마 지나온 내 삶에 후회와 아쉬움이 많아서일지도 몰라. 너의 삶이 시행착오가 조금은 적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엄마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


그래도 하나 더 덧붙인다면 말이야 소현아, 관계에서 아픈 일이 생겨도, 사랑이나 우정으로부터 상처받는 순간이 와도, 너의 선택이나 실수에 너무나 후회되는 시간이 있다고 해도... 삶은 그 모든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지속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넘어진 상태로 멈추어서 무너지지 마. 다시 일어나 걷는 일이 중요해. 지나온 일이 조금은 엉망이어도 '지금 이 순간' 내 삶의 분위기, 나의 기분, 나의 태도, 나의 관점과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선택지는 언제나 내게 있다는 것만 잊지 마. 그거면 될 것 같아.  


네 삶이 완벽하지 않다고, 가끔은 크고 작은 실수를 한다고 너무 자책하거나 되돌아보고 후회하지 말기를 바라. 너에게 적은 이 모든 글은, 나 스스로에게도 너무나 해주고 싶은 말이거든. 너의 엄마이고, 어른인 지금 이 나이의 나여도 여전히 불완전하고 실수투성이란다. 삶이란 게 원래 그렇게 불완전한 상태로 굴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너무 애쓰지 않기를 바라.


그저 너 스스로를 아주 많이 예뻐해 주고 기특해하기를.


너는 그래도 돼.


그림: 이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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