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작년 10월의 용감한 나, 칭찬해.

2025년 여름, 너와 나의 파리 - 01

by write ur mind

2024년 10월, 나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8개월 뒤 내 미래를 내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것을 저지르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다이어리를 뒤지고, 지난해 일정을 다시 확인해보고.. 클릭을 했고, 결재를 했다.


호치민 - 파리 왕복 티켓.


그 불안함을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단 하나.... 금액이었다. 8개월 뒤의 모호한 미래를 저당잡히고 선택할 수 있는 유럽행 항공권은 2-3개월 전에 예약하는 것보다 2-30만원 이상이 더 저렴했다. 2025년 6월의 내가 어찌될지 모르는 상태로, 일단은 저지르고나니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이 많기도 했지만 사실 내 안에 살고 있는 충동적이고 엉뚱한 영혼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원래 세상 일이, 시작하면 그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어. 걱정 마." 라고.


그렇게 나의 네번째 파리 여행 준비는 시작되었다.


+++


소현이가 대학에 있는 동안 다시 파리에 꼭 가게될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3년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내 삶은 촘촘하게 많은 일들로 채워져있어 쉽게 저질러지지는 않았다. 그 사이 아이는 호치민을 두어번 다녀갔다. 첫 겨울방학, 소현이가 호치민에 왔을 때 나는 아이가 도착한 날 아이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고, 소현이는 파리로 돌아가는 날 짐을 싸며 많이 울었다. 그렇게 두번, 세번 다녀갈 때마다 우리는 조금 덤덤하게 만남과 이별을 하게 되었고 따로 떨어져 지내는 동안 우리에게생긴 서로의 빈자리에는 '다름'이 채워져 방학동안 같이 지내다 투닥대며 싸우기도 했다.


+++


내 아이가 살기 전까지 파리는 그저 내가 사랑하는 도시였다. 이곳의 거리, 나무, 공원, 성당, 가게들, 사람들이 모두 나는 마음에 들었다. 처음 왔을 때 사랑에 빠졌고 두번째는 더 좋았는데 세번째가 가장 좋았다. 첫번째, 두번째는 관광객으로 왔고 세번째는 아이가 살러 오는 곳을 보기 위해 온 것이라 그랬던 것 같다. 조금 더 친숙해지고 조금 더 색다른 매력이 보였다. 물론 아이가 살아야 하는 환경을 셋팅해주다 보니 어마무시하게 비합리적이고 답답한 낡은 행정시스템과 부당한 일들이 너무 많은 도시라는 것도 뼈저리게 느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으니... 그냥 나는 파리한테 사로잡힌 영혼인걸로.


+++


이제 이 도시는 '내 아이가 사는 곳'이다. 아이는 늘 잘 지낸다고 말했지만 가끔 방학때 올 때마다 '이미 다 지난 이야기니까 말하는건데...'라며 몇가지 에피소드들을 가볍게 흘리곤 했는데, 그 이야기들이 때로는 엄마 입장에서는 마음저릿한 일들이 있어서 속이 상하기도 했다.

아이가 보내주는 파리 사진은 파리 여행객들이 sns에 올리는 사진과는 달랐다. 1년에 수십번은 교통파업, 노동자 파업이 있어 지하철도 버스도 안다니는 날들이 너무 많은 도시이고, 거리의 쓰레기는 서울이나 호치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인 날도 많다. 싸고 저렴한 밥집과 술집을 찾아 친구들과 즐긴다는, 아이가 보여주는 장소들은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 나오는 그런 곳들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래도 소현이는 언제나 말한다.

"엄마, 나 너무 잘 지내. 나 파리가 좋아. 사람들도 좋고 행복해. 걱정하지 마."라고.


+++


이번 파리 방문은 여행이라고 이름붙이기는 조금 망설여진다. 출발하기 전날까지, 나는 하루짜리 투어상품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모두 다 가서 생각하자..라는 마음이고, 관광지는 그닥 가고싶지 않아 생각에서 미루어두었다.

소현이가 좋아하는 곳, 자주 다니는 곳, 생활하며 좋았던 장소, 내가 파리에 가면 나랑 같이 가고싶어했던 곳... 그런 곳들은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보고 올 생각이다. 소현이의 파리생활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 뿐이다.


그래서.. 그 어떤 때보다 기대가 된다. 이 계획없음이, 가장 나를 설레게 한다.


20220817_185313.jpg 파리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장소 보주광장 Place des Vosges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13화스무 살 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