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너와 나의 파리 - 03
파리로 떠나기 전부터 아이에게 여러번 이야기했다.
"먹고 싶은 거 있음 생각해놔."
나도 가기 전, 여행자들이 파리에서 먹었다는 미슐렝 식당을 찾아보기도 하고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좀 비싸도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몇번은 근사하게 먹여주어야지. 그 생각을 하고 아이가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할까, 어떤 식당에 가고 싶어할까 궁금해했다.
(참고로, 집안일 잘 못하는 바쁜 엄마로 평생 살아오느라 유학생활 중에도 너무너무 먹고싶어하는 엄마손맛이 담긴 음식...같은건 우리 아이들에게는 없다. )
졸업패션쇼를 하는 날을 D-day로 정하고, 그 날 소현이가 가장 가고 싶어하는 식당을 가기로 했다.
우리는 오후 5시를 기다렸는데, 소현이는 식당이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지는 말자고 했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본인의 경험에 따르면 오픈런 하는 손님과 마감시간 직전에 들어오는 손님이 일하는 입장에서는 제일 안반가운 사람이라고 한다. ^^
한국의 분식집보다도 작은 공간에 빼곡히 들어차있는 테이블. 흘러나오는 한국 트로트뮤직.
소현이가 간절히 바라고 가보고 싶어한 식당은 화려하거나 전망이 아름다운 파리의 근사한 레스토랑이 아니었다.
바로 감자탕 집.
파리의 감자탕은 비싸기도 하지만, 혼자 가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아니어서 먹고싶었지만 3년동안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아이의 이야기에 바로 수긍을 하고 갔다. 우리는 일찍 도착해서 다행스럽게도 자리를 잡았지만 예약손님이 많은 곳이었다. 가게는 손님들로 금새 꽉 채워졌는데 한국인 말고도 일본, 중국인 손님이 더 많았다.
우리는 소주와 맥주, 소라무침과 감자탕을 시켰다.
"음~~ 맛있어! "
진실의 미간을 하고 아이는 너무나 행복하게 먹었다.
빵도 좋아하고,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 편이고, 한국에서만 살다간 것도 아니니 파리에 살면서 특별히 음식타령을 하지는 않는 아이였다. 기숙사에서 아침 일찍 먹을 수 있는 따끈한 바게트와 딸기쨈에 감동하고, 가끔 한인성당이나 친한 지인들과 먹는 한국음식 사진을 보내며 잘 먹고 있다고 걱정말라고만 했었다.
그런데 겨우 감자탕을... 3년이나 가고 싶었는데 참았다고 하니.. 엄마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미슐렝 식당이 무슨 소용이람. 에펠탑 전망이 이 아이에게 뭐가 중요할까.
따뜻한 흰 쌀밥에, 따뜻한 감자탕 국물이 너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몇그릇이라도 사줄수 있지.
나오는 길 식당 주인 아주머니께 정말 고개깊이 숙여 잘 먹었다고 인사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