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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만에 먹은 봉마르셰 백화점의 케이크

너와 나의 파리 - 05

by write ur mind

소현이와 나는, 2016년에도 파리에 온 적이 있었다. 소현이 나이 만 12살. 6학년부터 프랑스학교로 옮기고 1년동안 잘 적응한 아이에게 주는 선물로서의 여행이었다.


당시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지 않았었다. 나보다는 남편의 고민과 갈등이 컸는데... 그래서 비행기표를 끊기 전까지, 갈까? 말까?를 수십번 뒤집었다가 가게 된 여행이었다. 남편의 상황을 뻔히 알면서 속편하게 파리 여행을 하는 것은 다소 마음의 부담이 컸다. 그래도 프랑스 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이와 했던 약속을 지켜주고는 싶다는 부모의 마음이 더 크게 작용을 해서... 봄방학에 맞추어 파리와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그 여행에서, 기억이 남는 순간이 있다.


파리에서의 일정이 마무리 될 무렵, 지인들의 선물을 사려고 파리 봉마르셰백화점 지하 식품코너를 둘러보고 있었다. 봉마르셰백화점 지하 식품코너는 여러가지 향신료와 소스, 차 같은 선물하기 좋은 물건들이 많기도 하지만 화려하고 먹음직스러운 과일과 야채, 빵 등이 잘 진열되어 있는데, 소현이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추어 있었다. 다름아닌 딸기, 크림 등이 가득 올려져 있는 너무 예쁜 케이크들이었다.


- 소현아, 먹고 싶어?

- 아니야 엄마. 괜찮아.

- 정말 먹고 싶으면 사줄게.

- 아니야. 우리 이따 저녁먹을거잖아.


아이의 말을 듣고, 우리는 돌아서서 백화점을 나왔다. 그런데 그 날, 그깟 케이크 한조각이 뭐라고 아이의 시선을, 마음을 눈치챘으면서도 나는 그냥 나왔을까..


어렵게 간 아이와의 첫 유럽여행이었고, 유럽의 풍경과 예술적 감정을 많이많이 심어주겠다는 마음만 가득했던 나는 경비를 아끼고 시간과 동선을 절약하며 미술관 투어를 가열차게 다녔다.

여행 내내 우리는 식사비를 아낀다고 아침 조식을 많이 먹고, 점심은 대충 간단히 때우고, 저녁 한끼를 사먹곤 했다. 트렁크에 넣어간 컵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한 날도 많았다.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을 타고 갔는데 비행기에서 어린이에게 주는 작은 선물박스가 있었다. 소현이는 비행기에서 받은 종이상자를 들고다니며 빵이나 버터등을 그 상자에 챙겨넣고 점심은 식당에 가는 대신 그 상자에 들어 있는 빵을 꺼내어 공원에서 먹기도 했다. 눈치가 빠른 아이는 여행경비를 최대한 아껴야한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사준다 해도, 무엇을 먹자고 해도 괜찮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는 안되었는데... 나는 아이가 괜찮다는 말을 고마워하면서, 미안해하면서도 받아들였다. 아이의 첫 유럽 여행이었는데...겨우 열두살이었는데... 얼마나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게 많았을까.


유럽여행을 다녀와서, 아이는 그 좋아하던 컵라면을 한동안 잘 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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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열두살 아이와 여행을 다니며 내 아이가 얼마나 마음이 크고, 배려하고, 잘 견디고, 애쓰는 아이인지를 뼈아프게 느꼈었다. 단 한번도 짜증을 부린 적이 없었고 정말 작은 것에 감사하고 기뻐했다. 길을 헤메어도, 배가고파도, 갑자기 날씨가 변덕을 부려도 아이는 괜찮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좋은 경치를 만나면 마음껏 행복해했고, 이만보를 걷다 먹은 아이스크림 하나에 감동했고,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기쁨의 춤을 추었다. 아이는 내 인생에서 만난 최고의 여행메이트였다.


그렇게 돌아와서, 내 마음에 가장 많이 걸렸던 것은 봉마르셰백화점 지하 식료품점 코너에 있는 케이크를 바라보던 아이의 눈빛이었다.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그거 없다고 내 삶이 무너지는 그런 금액은 아니었는데... 여행 중의 기쁨과 추억이 되었을텐데. 괜찮을거라고 생각하며 돌아서 나온 그 백화점은, 나에게 두고두고 나 자신의 마음을 초라하게 만든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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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여름, 내가 아이를 만나러 파리에 간 기간 중에 아이의 생일이 있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스케줄이 많아 바쁘고 호텔방에서 지내느라 미역국은 생각도 못한 생일이었다. 오후에 만나 데이트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아이는 보주광장에서 만나자고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자기 생일날인데 여행온 엄마가 좋아하는 곳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도... 너무나 그녀다운 배려였구나. 이 글을 쓰면서야 깨닫고 있다.


보주광장 잔디밭에 천을 깔아놓고 앉아있는 아이를 만나, 나는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바로 봉마르셰백화점 지하 식품관에서 사온 케이크였다.

그날 처음으로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 너에게 지금껏 말 못했는데, 엄마는 너 열두살 때 이걸 못사준게 그렇게나 마음의 빚이었어. 이제서야 하는말인데 너무 미안해.

- 엄마, 난 기억도 안나~ 그런데 너무 예쁘다!! 그런데 엄마, 더 싸고 맛있는것도 파리에 얼마나 많은데 이걸 사왔어~~이그.


아이는 그렇게 나를 타박하면서도 행복하게 생일케이크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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