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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곳에서 어른이 되어가고

너와 나의 파리 - 04

by write ur mind

소현아,

엄마를 아는, 너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늘 얘기해.

소현이는 잘 할거라고. 걱정 말라고.

그 말이 참... 너는 믿을 수 있고, 잘 견디고, 해내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일텐데.

엄마는 이번에 너를 만나고, 너를 지켜보면서 ... 너무 잘 견디고, 버티느라 애쓰기만 하고 있나, 좀 더 편하고 안전하고 쉬운 길로 가지 못해 힘든건 아닌가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


많이 씩씩해지고, 건강해서 보기 좋기도 했어. 그 누구를 만나도 당당하고 친절한 니가 아름다웠어.

그래서 고마워.


그렇지만 소현아, 너무 참거나 잘하려고 애쓰기만 하면 안돼. 알았지?

이번에 여러번 이야기했지만.. 어렵고 곤란한 일들이 있을 때, 그것을 빨리 판단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 너를 힘들게 하는 요소들은 빨리 치워버리는 시도를 해보길 바래.

소현이가 그동안 많이 지쳐있었구나... 생각했어. 무언가 작고 사소한 부분들인데,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태를 그대로 냅두거나 외면하는 것 같달까.

그런 불편함이 너에게 너무 익숙한 일이고 그저 잘 견디고 참는걸 니가 너무 잘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아닐까, 너가 지난 몇년동안 그리 살아온걸 몰랐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는 그게 마음에 조금 걸렸어.


여전히 너는 너무나 대단하고, 특별하고 소중한 내 딸이야. 그래서 네가 지치거나 아픈건 너무너무 싫어.

너 자신을 소중히 대하고, 너 자신을 믿고, 너를 아프게 하는 일, 힘들게 하는 일은 네 곁에 오래 머물게 하지 않기를.

기도할께.


그래도 이번에 너를 만나고 ... 엄마는 더 잘 살아내야겠다는 다짐을 또 하게 되었어.

부지런히, 성실히, 그리고 건강하게 살면서 소현이 만나야지.. 라는 생각.


이거 쓰면서 많이 울었는데 이제 울지 않을게.

행복하자. 내사랑.




9박 10일 파리에 머물며, 나는 아이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다.

마침 내가 가 있는 동안 아이는 학교를 졸업했고, 다음 단계를 선택했고, 3년동안 지내던 기숙사를 나와 독립을 해야하는 시기였다.


아이가 혼자 선택하고 해결해야하는 일들 앞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지켜봐야했고, 혼자였다면 너무 힘들었을텐데 내가 곁에서 함께 있어서 다행인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이 입장에서는 이제 어린아이는 아니니까, 엄마가 알게됨으로서 잔소리도 걱정도 생겨나는게 좋지만은 않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되는 상황도 있었다.


엄마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지난 3년 동안 혼자서 꿋꿋이 살며 받아들이고 있는 아이만의 영역과 신념을 어느정도 이해해주고 존중해주는 마음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직 불완전한 이십대 초반이잖아. 모르는 게 많잖아. 아직 세상을 다 모르잖아. '

그런 시각으로 아이를 보다보면 내 안에 있는 모든 불안이 화르륵 올라왔다.


그러다,

나의 이십대 초반을 생각했다.


내가 어른이라고 생각했고,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사회를 경험했고, 엄마아빠의 조언이나 관심보다는 내 믿음과 내 감정이 원하는 쪽으로 선택을 하며 가끔은 깨지고, 가끔은 실망하고,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살아냈던 나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버틸만하니까 버티는 것이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해내는 거다. 나도 그랬고.

그렇게 믿어주자.


그 마음이 지금의 결론이 되었다.


내가 걱정하고 불안해만 한다면 선하고 다정한 내 아이는 힘겨움과 어려움이 있어도 나에게 다 보여주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나는 내 자리에서, 아이가 힘들거나 어려울 때 나를 찾아 문을 두드릴때 언제든 받아주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잘 살아내고, 더 단단해져야하니까.



+++


이번에 파리로 가면서 경유지인 카타르 도하를 가야하는 비행기가 몇시간동안 공항폐쇄로 인해 잠시 인도 델리를 들렀다 돌아가는 일을 겪어야했다. 그러느라 티켓과 시간이 엉키고 우여곡절끝에 나는 대략 8시간정도 지연이 되어 파리에 도착을 했는데...

도하에서 아이에게 연락을 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아이는 한줄 카톡을 내게 보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맞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건 내가 맞다. 너는 어떤 길을 찾아 살아가더라도 지금부터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모험과, 도전과, 실패와, 어려움을 겪으며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이겠지. 나는 그런 네가 기쁜 소식이든 힘겨운 이야기든 달려와 전해줄 때 다 품어줄 수 있는 넓은 품의, 단단한 엄마가 되는게 더 중요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 정신 똑바로 차릴게. 너를 믿을게. 그리고 이 자리에서 조금 더 근사해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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