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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Nov 20. 2024

어른스럽지 못한 엄마이지만

나의 호치민 - 이나영.

다섯 살과 세 살이 된 두 아이를 데리고 베트남 호치민에 오고 얼마 뒤, 신종플루라는 병이 유행했다. 두 아이의 열이 40도 가까이 오르고 축 늘어진 뜨거운 몸의 아이들을 안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쩔쩔매다 병원에 갔는데, 호치민에는 신종플루인지 확인할 수 있는 검사키트가 모조리 동이 난 상태였다. 그냥 열감기인지 신종플루인지는 알 수 없는 상태로 증세만으로 '아마 신종플루인 것 같으니' 약을 먹이자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이 내려졌다. 그런데 뒤이어, 아동용 타미플루 역시 구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저 방법은 하나, 성인용 타미플루를 반을 잘라 아이들에게 나누어 먹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결론이었지만 열이 펄펄 끓어 얼음을 넣은 욕조에 울부짖는 두 아이를 넣고 열이 내리기를 바라는 상황에서 나의 선택지는 한정되어 있었다. 인터넷에는 타미플루의 무시무시한 부작용에 관한 이야기들이 가득했고, 약을 잘라주는 기계조차 없는 호치민의 병원에서 어른용 약을 받아 들고 와 집에 있는 칼로 약을 잘라,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이 어른용 약의 용량이 무리를 일으키면 어쩌지...라고 두려움에 떨면서 쏟아지는 눈물을 어쩌지도 못하고 기도를 하염없이 하며 아이들에게 약을 먹였다. 


그렇게, 나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내가 엄마니까, 어른이니까, 아직 세상을 다 살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답을 내리고 결정을 지어주어야 하는 것이구나.라는 사실을 절감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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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엄마로 사는 일이 곧 어른스럽게 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을 키우는 매 순간 나는 그 어느 것도 확신한 적이 없었고, 인생이란 게 답이 없다는 식의 태도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이어서 애쓰기보다는 물 흐르듯 맡기는 쪽을 택했다. 그런 엄마를 둔 아이들은 때로는 서운했을지도 모르겠다. 대신 엄마가 바라는 삶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내 편한 대로 그렇게 생각해 본다.


호치민에 오게 된 것은 나의 결정이 아니었고, 이렇게 오랫동안 이곳에서의 삶을 살게 될 줄도 몰랐다. 나의 마음 한쪽 어딘가는 떠나온 사람이 겪는 허전함과 붕 떠있는 것 같은 기분을 붙잡느라 늘 텅 비어 있었는데, 그 기분과는 별개로 아이들은 호치민의 여름햇살을 받으며 쑥쑥 자라났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나는 어른스러운 엄마의 역할은 내려놓기로 하고, 아직 불안정하기 그지없는 나의 삶에 집중하는 쪽을 택했다. 계속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내 일에 몰두했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생활적인 면에서는 어른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계속해서 꿈을 좇는 사람이고, 이루지 못한 것들과 놓친 것들이 너무 많은 사람이고, 내 삶이 불만족스러운 사춘기인 듯, 그런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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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미플루를 먹고 열이 떨어진 새벽, 안도하는 기분으로 바라보았던 나의 작은 아기들이 이제는 모두 다 대학생이 되었다.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사람이지만 스무 살 대학시절의 내 모습은 참 많은 부분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서, 지금 내 아이들의 나이였던 나를 자꾸 떠올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여겼었던 것 같고, 내가 경험하고 선택하는 모든 일들에 매번 자신만만해하고 뒤이어 매 순간 후회를 반복하곤 하는 스무 살이었다.


지난해의 마지막날인 12월 31일 밤, 나는 두 아이들에게 메일을 적었다. 삶에 정답은 없으니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그렇지만 여지껏 꽤 괜찮은 사람으로 자라왔으니 지금껏 그래왔던 그대로 해나가면 될거라는... 지극히 나 다운 이야기를 적어 보냈다. 그 메시지에는 사실, 언제나 나의 선택에 대해 아쉬워하고 불안해하던 나의 이십 대를 닮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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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좀 덜 흔들리고, 삶이 무엇인지도 알고,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규정지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실패나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처럼 늘 불안정하고 스스로에 의심이 많았던 아이는 자라서도 삶에 확신이 없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어른이 되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다정하고 사람을 좋아하던 아이였기에 여전히 다정한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고, 내 곁의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어른이 되었다. 여전히 인생의 선택들 앞에서는 쩔쩔맬지는 몰라도, 그래도 내 삶에서 좋은 부분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어른으로 사는 정도면 적당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해 본다. 



그림: 이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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