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ind.
10년이면,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고 걷고 말하고, 학교를 가서 친구들을 사귀는, 그러니까 아기였던 생명체가 한 인격체로서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다. 열 살 부터 그 다음 10년은 사춘기와 첫사랑을 경험하며, 아이가 어른이 되는 기간이다. 스무살 부터의 10년은 또 어떠한가. 학교를 떠나 세상으로 나와 사회인으로서의 경험을 하고... 그 십년 안에 우리 삶의 많은 중요한 것들이 결정지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인생을 그렇게 10년 단위로 쪼개다보면, 10년마다 이룰 수 있는 것들이란 너무도 많아서 10년이라는 시간이 참으로 하염없이 길고 긴 시간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나이가 조금 들고나서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10년이라는 시간이 참으로 순식간에, 화살처럼 스쳐지나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의 속도를 빠르게 느낀다고 한다던데, 아마 그 탓이겠지.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지난 십몇년의 시간이 그렇게 한두줄의 문장으로 정리가 되어버리면서, 무언가 삶이 참 별거 아니구나. 하는 기분이 되어버린다. 그동안 나이드는 거 말고는 뭘한거야? 라고 생각하다보면 기운이 쭉. 빠지기도 한다.
어릴적 10년이 길게길게 느껴지는 건, 우리가 경험하고 배워야 하는 새로운 것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정도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된 뒤에는 뭐든 다 알아버린 것만 같아서 세월의 속도가 빨라지는 모양이다. 내가 선택한 것들에 대해 책임지고 메꾸느라, 그러니까 세상을 배우고 경험할 시간 없이 열심히 어른의 삶을 사느라 점프하듯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른의 삶을 그렇게 고정시켜놓고, 한 자리에서 꾸역꾸역 살다보면 아무리 열심히 산다해도 나중에 이 시간의 기억이 그저 밋밋하기만 할 것 같다.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십년이 또 흘러지나갈지도 모르겠다. 매일 비슷한 모양새로 살아간다면 기억할 일도 돌아볼 일도 없을테니까.
그래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무언가를 배우고 꿈꾸는 작업을 멈추지 않아야 나의 시간은 조금 천천히 흘러갈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내 삶을 생동감있게 만드는 꿈을 꾸는, 이런 작업들을 '나의 시간에 흔적남기기'라고 생각한다. 그 흔적과 기억이 많은 삶은 다채로우니까 조금 더 긴 시간이 될 것이고, 아마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사소한 일들이라도 멈추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잘 늘지 않는 영어공부도 계속해서 계획을 세우고, 무엇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는 글들을 적고, 내가 읽은 책 속의 문장들을 차곡차곡 모아둔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기록한다. 지금 당장 표시가 나지 않는 그 어떤 일들이라도 나 자신을 위해 꾸준히 하려고 한다. 내 시간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겨놓으려는 것이다.
앞으로 나에게 올 10년은 무엇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건 아닐까? 생각이 들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어느 상담워크샵을 갔을때 강의를 해주러 오신 분이었다. 새하얀 백발의 머리를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붉은 립스틱을 진하게 바르신 할머니 강사님이 들어오셨다. 60이 가까운 나이에 상담공부를 시작하고 대학원에 입학하셔서 석사와 박사를 하시고 대학교에 강사로 나가고 계신다며 자신을 소개하셨다. 여든이 넘어서까지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앞으로 20년은 일해야지...하는 마음으로 대학원에 입학하셨다며 씩씩하고 유쾌하게 강의를 진행하셨다. 그분의 60살부터의 시간은 얼마나 설레이고 멋진 시간들이었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사실 어쩌면 나는 지나온 시간에 늘 미련이 많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꾸만 돌아보고 아쉬워하는 때가 종종 있다. 그렇지만 이미 떠나보낸 10년보다 앞으로 내게 다가올 10년을 생각하고 계획해본다. 호기심과 꿈을 잊지 않고 새로운 경험을 멈추지 않는, 그런 흔적과 자국을 많이 남기다보면 내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10년은 좀 더 촘촘하고 길게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다가올 날들에 대해 설레여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