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6.
수술 이후 보름이 지났다.
수술 부위가 얼마나 잘 아물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수술 후에야 알 수 있는 최종 조직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수술 중에 했던 세포진 검사에서도 모두 좋은 결과가 나와 수술만으로 치료를 종결할 확률이 95% 정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이제 다 됐습니다. 어서 일상으로 돌아가세요.’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어쩌면 설레는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100%가 아닌 95%였기 때문에 5%의 찜찜함은 물론 있었지만.)
내 차례가 되어 병실에 들어서서 인사를 나누고 앉았는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주치의의 표정이 묘하게 굳는다.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도 째깍째깍 늘어난다.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 됐구나 느끼는 순간, 선생님은 돌려 말하는 것 없이 바로 킥을 날려버린다.
‘분화도가 3이 나왔어요.’
아. 자궁내막암에서 분화도는 매우 유의미한 조건이다. 분화도는 암세포의 공격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나타내는데 분화도가 높을수록 재발률도 높고 전이도 잘 된다고 보면 된다. 세포가 얼마나 정상세포의 형태와 다른지에 따라 그레이드가 1, 2, 3으로 나뉘는데 10%까지는 1, 49%까지는 2, 50%가 넘어가면 3이다.
맨 처음 동네 산부인과에서 했던 조직검사와 수술 전 했던 조직검사 모두에서는 분화도가 1이 나왔는데,
수술 후 자궁내막 안에 있던 암 자체는 분화도가 3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나마 암세포가 자궁내막 밖으로는 침범하지 않았고 내막 안에서도 1/2 이내로 침범한 상태라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선생님은 기수로는 1기이지만 분화도가 높기 때문에 추가 치료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추가 치료로 방사선 치료를 할 건데 내부 방사선만 할지, 외부 방사선만 할지, 아니면 둘 다 할지, 이는 방사선 치료 담당 교수님과 의논해서 결정해야 한다면서 방사선과를 연결해 주셨다.
전혀 예상치 못한 5%의 결말이었다.
사실 나는 여러 논문과 병원 세미나 자료까지 열심히 찾아봤기 때문에 자궁내막암에서 분화도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무서웠다.
1기인데 분화도가 높은 사람이, 3기이지만 분화도가 낮은 사람과 비교했을 때 5년 생존율이 더 낮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때는 그 ‘생존율’이라는 숫자에 엄청나게 매몰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엄청난 절망감에 빠지고 말았다. 애써 부여잡고 있던 희망의 끈이 똑하고 끊어지며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에 등골이 오싹해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분화도가 높아서 추가 치료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훨씬 더 충격을 받았을 정도였다.
수술로 치료를 마치고 마치 암 같은 건 내 인생에 없던 일이라는 듯이 살고 싶던 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야 어디 세상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 하면서 뒤통수를 갈기는 것 같았다.
사실 다른 건 이제 다 편하게 말할 수 있는데 이때의 일은 여전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어찌나 아프게 사정없이 할퀴고 떠났는지 여전히 마음 곳곳에 아물지 않은 생채기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심히 쓰다 보면 딱지도 생기고 새살도 돋으려나.
하여튼 그렇게- 가채점으로 수능 만점 받은 줄 알고 좋아하다가 OMR카드를 완전히 밀려 써서 수능을 완전히 망해버린 고3의 심정으로 최종 조직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는 긍정적인 사고가 완전히 멈춰버린 상태라 혼자서 벌벌 떨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한참 울다 보니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너 내일 죽는다고 시한부 선고를 내린 것도 아니고 인생이 망한 것도 아니고 무인도에 혼자 떨어진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냥 우선은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자고. 새로운 치료를 위한 또 새로운 준비를 시작하자고.
방사선 치료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며 준비하다 보니 내가 암센터에 아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나는 대학 학부 시절에 학교 홍보대사를 했었는데 그 인연으로 만나게 된 한 남자 선배가 암센터에서 연구교수로 일한다는 게 기억이 난 것이다.
그 당시엔 꽤 친밀하고 좋은 사이였지만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건 내 결혼식 이후(그러니까 거의 10년 전..)엔 없어서 감히 연락해 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정말 신기하게도 그 선배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강윤아, 잘 지내? 나 올 가을에 결혼하는데 청첩장 주고 싶어서. 얼굴 볼 수 있을까?”하고.
선배와 나는 거의 10년 만에 어느 브런치 카페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니 무척 반갑고 재밌었다.
이 즐거운 대화에 ‘암’이라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단어를 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방사선 치료에 대한 두려움을 전문가에게 토로하며 상쇄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고, 줄다리기하던 마음의 기울기가 확 기우는 순간 대뜸 말을 꺼냈다.
‘근데 오빠 사실 나 자궁암 진단받았거든. 그래서 곧 오빠네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받게 됐어.’
암센터에서 오래 근무한 덕분인지 아니면 원래 차분한 성격 때문인지 선배는 별로 놀란 기색 없이 담백한 질문들을 이어가더니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노라 약속했다.
그 말 한마디로도 이미 도움을 받은 것처럼 든든했다. 그래, 자 이제 시작이야.
드디어 방사선 진료 첫날.
담당 교수님은 중년의 여자분이셨는데 처음에는 무뚝뚝해 보였지만 무척 세심하시고 어떤 이야기든 차분하게 잘 들어주시는 주치의라 치료 내내 편안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역시 나의 선생님 복이란..
최종기수와 수술 상황들을 고려해 자궁 내부 방사선은 하지 않고 골반 쪽 외부 방사선을 28회 하기로 결정이 됐다. 그때 당시에는 28회라는 숫자에 대한 감이 없었는데 참 길고도 험한 여정이었음을, 그 여정에 들어서서야 알게 되었다.
간호사 선생님을 통해 치료 과정과 부작용에 대한 주의 사항을 소상히 들었다. 부작용에 대한 설명이 A4 용지 양쪽으로 빼곡하게 적혀 있다는 것이 엄청난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자궁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주로 겪게 될 급성 부작용으로는 다음과 같다.
1) 피로감과 식욕부진: 가장 흔한 부작용. 식욕부진이 심할 경우 입맛 좋아지는 약이나 마시는 영양제 등을 처방받을 수 있음.
2) 피부: 피부색이 빨개지며 가렵고 건조해지므로 상처 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
3) 위장관: 방사선이 소장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오심, 구토, 설사, 변비, 복통 발생할 수 있음
4) 방광: 빈뇨, 잔뇨, 혈뇨, 배뇨통 있을 수 있음.
5)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저하 발생할 수 있음
(나는 모든 부작용을 다 겪었다.. 이는 다음 화에 계속)
방사선 치료는 본격적인 치료에 앞선 일정들이 많았다. 우선은 CT 모의 치료를 하는데 이는 방사선 치료 부위를 결정/확인하는 과정으로 엑스선촬영을 하고 몸에 표시선을 그린다.
나의 경우는 하복부와 골반 양쪽 옆부분이 조사 부분이라, 가로 세로로 겹친 십자가 모양의 선을 그어 표시를 했고 그 위에 투명 테이프를 붙였다.
치료기간 동안 이 선이 지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하셔서 그럼 샤워도 제대로 못하느냐고 겁을 먹자 중간중간 흐려질 때마다 다시 덧칠하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해주셨다.
빨간색 선이 곳곳에 그려진 내 몸을 보고 있자니 마치 이 선들이 주홍글씨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아니라고 발버둥 쳐봐도 너는 ‘암. 환. 자’라고 상기시켜 주는 것 같은. 영영 이 빨간 선이 지워지지 않으면 어쩌나 착잡한 심정에 당장이라도 빡빡 지워버리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전혀 다르게 선이 지워질세라 조심조심 샤워를 하고 나와 잠옷을 갈아입고 있던 그날 저녁, 내 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딸이 말했다.
‘어! 엄마 배에 빨간색 타투 했네. 예쁘다!’
빨간색 타투라니!
그래, 이 표시선을 주홍글씨로 여길지 빨간색 타투로 바라볼지는 오로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었음을. 나는 암환자가 아니라 빨간색 십자가 타투를 한 힙한 삼십 대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속여보기로 했다.
모의 치료를 마친 후 일주일 후에 확인 촬영을 하고, 다음날부터 치료를 시작했다.
방사선 치료는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제로 매일매일 직장인처럼 출근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료받는 시간도 순서도 정해져 있는데 나는 오전 9시 30분이라 아이 학교 등교시키고 병원으로 가면 딱 맞는 시간이었다.
치료 자체는 어렵거나 아프지 않았다. 마치 우주선처럼 생긴 기계에 올라 누워서 10분 정도 움직이지 않고 누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의외의 복병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소변 참기’였다.
나의 경우 하복부 쪽에 조사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장 쪽에도 방사선의 영향이 미치게 되는데 이 영향을 줄이고자 방광을 꽉 채워놓고 치료를 하는 것이다. (소변을 잘 참지 않고 치료를 받게 되면 설사가 심하게 발생할 수 있다)
방광을 채우기 위해서는 치료 2시간 전에 물 500ml를 마신 이후 화장실에 가면 안 된다. 소변을 꽤 잘 참는 편인데도(자랑인가?) 이는 정말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방사선 치료를 받는 첫날, 처음 받는 치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치료를 받다가 오줌을 싸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무서운 줄도 몰랐다. (좋은 건가?)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과 너무너무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원초적인 본능이 합쳐져서 치료 시간 10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렇게 방사선 치료의 서막이 올랐다.
높고 푸른 파란 하늘 아래 따뜻한 볕이 내리쬐고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바야흐로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