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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이 Aug 08. 2024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가을

episode 8.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숙희’     



영화 <아가씨>를 처음 봤을 때 그 신선한 충격은 이 대사 하나로 수렴이 되어 내 몸 어딘가에 단단히 각인되었다. 어쩐지 서늘해지며 동시에 해방감이 느껴지던 이 대사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 것은, 지난 2023년 어느 봄날이었다.     



나의 암 수술과 치료가 모두 종결된 이후,

가족 모두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던 때였다.

특히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엄마의 투병으로 많은 것을 혼자 해결해야 했던 아이는 전에 비해 불안도가 매우 높아져 있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다며 칭찬하셨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었지만, 유독 집에서는 모든 감정을 불안으로 치환해서 표현했다.


‘엄마 나 이 상처 때문에 큰일 나면 어떡하지?’라며 건강에 관한 과도한 염려를 하거나, 내 표정 하나하나에 ‘엄마 어디 아파?’하며 예민하게 반응했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내내 반추하며 ‘엄마 나 괜찮을까?’ 묻고 또 물었다.


우선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모든 질문에 차분히 답을 해주었고 무엇이든 다 괜찮다고 토닥여 주었다. 더불어 그간 미뤄두었던 캠핑이나 여행도 자주 다니며 좋은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주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 노력이 가상했는지 아이는 점차 안정을 되찾는 듯했고 모든 것이 차근차근 제 자리를 찾아가던 그 어느 날, 침대에 누워 종알종알하던 아이가 툭 질문을 던졌다.      



“근데 엄마 있잖아.. 이제 동생은 영영 못 낳아주는 거야?”     



아차, 동생.

아이는 늘 동생을 갖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내가 임신 과정에서 조산으로 매우 고생을 했기 때문에 둘째를 계획하는 마음이 쉽지 않았고 또 체력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아이 하나 낳아 잘 키우는 게 분수에 맞다고 생각했다. 미루고 미루다가 아이가 점점 커가고 내 나이도 노산으로 향해가면서 둘째에 대한 고민이 고개를 들었을 즈음, 자궁암 진단을 받게 되었고 그 고민은 너무나 깔끔하게 해결이 된 터였다.


그냥 우리 셋이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자고 하면 되는 거였는데 어쩐지 쉬이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틈을 타서 아이는 재빨리 자신의 목표 사격을 시작한다.      



“엄마, 그럼 약속했던 대로 강아지 키우면 안 돼?”     



오 마이 갓. 한시도 방심할 수가 없는 육아의 현장.

아이가 동생이 갖고 싶다고 할 때면 나는 항상 그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고 아이는 동생을 갖는 일이 정 안 된다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 나는 또 혹시라도 언젠가 동생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반려동물은 키울 수 없다고,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은 대답을 돌려 막기식으로 했었는데.. 아이는 나의 그 대답을 허투루 듣지 않고 아주 정확히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이제 동생이 생길 염려 같은 건 없어졌으니 강아지를 입양해 키우면 되겠다고 말하며 해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어쩐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나는 어릴 때 시골집에 살았었기 때문에 집에 늘 개가 있긴 했다. 어릴 때 사진첩을 보면 진돗개였던 순돌이와 함께한 모습이 한가득이고, 제법 크고 난 후에는 개 밥 주는 일도 도맡아 했었고, 눈도 뜨지 못한 채 줄줄이 누워 엄마 젖을 빨고 있는 새 생명들을 신기하게 들여다보던 기억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 개들은 언제나 마당에서 지냈고 한 번도 집안에 들인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애완동물’은 키워본 적이 없는 거나 다름없던 것.


강아지든 고양이든 동물을 싫어한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 삶에 들일 정도로 좋아해 본 적도 없던지라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부담이 됐다.  

하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의 성정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어린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될 불안의 파도를 여러 번 경험한 아이의 곁에서 잔잔히 함께 해줄 반려동물이 있다면 정서에 얼마나 좋을지. 그건 상상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 동시에 마음이 괴로웠다.      



그렇게 아이와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이어가며 반년 정도 흘렀을 때 남편의 지인을 통해 아기 강아지를 입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아이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강아지를 직접 만나기도 전에 이미 사진만으로도 사랑에 빠졌고, 오랜만에 방방 뛰며 기뻐하는 아이의 모습을 모른 척 하기엔 내가 아이에게 빚진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눈치싸움을 하던 반 년동안 나도 모르게 마음의 준비를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강아지는 이제 6개월 정도 되었을까. 엄마 젖을 떼고 이제 막 세상을 배워가는 퍼피였다. 몰티즈와 푸들을 섞어놓은 갈색모의 믹스견. 딸아이는 본인이 아기 때 쓰던 담요를 챙겨가서 강아지를 담요 위에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안았다. 강아지는 우리가 자신의 가족이 되리라는 걸 눈치챈 양 짧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겁도 없이 덥석 아이에게 안겼다. 그때 아이 얼굴에 아지랑이처럼 환하게 피어오르던 미소는 세상에서 그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다.


강아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꼬리를 흔들며 온 집안 구석구석 냄새를 맡더니 용케도 깔아놓은 패드에 오줌을 쌌다. 엄마 곁을 갑자기 떠나게 됐으니 얼마나 무서울까 걱정이 무색하게 밤에도 얌전히 잘 자고 시간 맞춰 사료를 챙겨주면 쩝쩝쩝 귀여운 소리를 내며 단숨에 먹어치웠다. 그야말로 순하고 착하고 귀여운 강아지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강아지의 사랑스러움보다는 딸아이가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강아지를 하나도 몰랐다.      


그렇게 일주일쯤 흘렀을까.

밥도 잘 먹고 잘 싸고 잘 논던 아이가 갑자기 구토를 했다. 강아지에 대해 유튜브며 책이며 카페며 찾아보며 공부했기 때문에 강아지가 종종 다양한 이유로 토를 한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실제로 온몸을 꿀렁꿀렁거리며 사료를 게워 내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응급실에 데려가듯 곧장 동물병원으로 달려가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안심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편안하게 누워있는 강아지를 보며 생각했다.      



‘나 계속할 수 있을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생경한 불안과 공포가 나를 덮쳤다.      


‘이 강아지가 아프면 어떡하지? 갑자기 죽으면? 가족이 되겠다고 나섰는데 내가 부족해서 이 강아지가 잘못된다면? 딸아이를 위해 입양한 이 강아지가 우리 아이를 더 힘들게 한다면? 앞으로도 강아지가 계속 아프다면 그 병원비는?’     


별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갑자기 나는 이 강아지를 키울 자격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고 서로 더 정이 들기 전에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강아지를 만나기 전에 나와 일주일을 함께 지낸 후의 나는 무언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이전의 나는 모른 척 강아지를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도저히 그런 단순한 생각은 허용할 수가 없는 사람이 되어 있던 것이다. 그 짧은 일주일 사이.  


‘만일 이 강아지가 다른 곳에 다시 입양됐는데 그 가족이 이 강아지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면? 학대한다면? 키우다가 버리기라도 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예상보다 훨씬 더한 책임감을 요하는 이 반려동물을 계속 키울 자신도 없었다.      


‘일주일 전에는 존재도 알지 못했던 이 작은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게 말이 되는가? 나의 이 섣부른 이기심을 어찌하면 좋을까? 딸아이의 마음은? 저 작고 가엾은 생명체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딸아이 앞에선 티도 못 내고 혼자 산책을 나와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 울었다.      



“아빠 흑흑흑 나 어떡해 흑흑흑.. 이 강아지 못 키우겠어 정말. 근데 어디 보내지도 못하겠고. 엉엉. 나 어뜩해.. “



개 역시 소나 닭 같은 가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우리 아빠가 보기에 이런 내 모습이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지. 하지만 아빠가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곳은 역시 아빠 밖에는 없었다. 조용히 듣고 있던 아빠가 말했다.      



“너무 힘들면 아빠가 키울 테니까 집으로 데리고 와. 여기 있으면 우주도 와서 크는 거 보고 좋지. 너도 안 힘들고.”          



아빠의 담담한 해결책 제시에 나는 깜짝 놀랐다. 아픈 딸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 그 사랑이 느껴지는 순간. 희한하게도 안심이 들며 마음이 편해졌다.

마치 아빠의 말에 무슨 주문이라도 걸려 있던 냥, 이 강아지를 향하던 무한한 부담의 무게가 점점 사그라드는 것이 아닌가.

마치 산고의 고통을 지나 이제 막 아이를 출산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뤄두었던 출생신고를 하듯이 내내 고민만 하던 강아지의 이름을 서둘러 지었다.

마른 낙엽을 닮은 갈색 털에 시월에 태어난 강아지가 갖게 된 운명적인 이름은 바로, ‘가을이‘


그렇게 기어코 이 강아지는, 아니 가을이는 우리의 가족이 우주의 동생이 되고 말았다.     



가을이는 영리한 강아지는 아니었다. 아무리 훈련을 해도 앉아 엎드려 외에는 절대 다른 건 할 생각도 의지도 없어 보였는데 나는 그게 너무 귀엽고 웃겼다. 강아지든 사람이든 영리해서 뭐 하니? 건강하면 장땡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막내가 그저 기특하기만 했다. 하지만 하나도 영리하지 않은 가을이가 지니고 있는 특별한 능력을 발견하게 된 어느 날이 있었으니..!



나는 안방 한편에 엄마가 만들어 준 뜨개인형, 나에게 써준 편지, 함께 찍은 사진, 선물해 준 성경책 등등을 모아둔 엄마의 추모 공간을 만들어뒀는데 엄마가 보고 싶어 참을 수 없는 날에는 꼭 그 앞에 앉아서 울곤 했다. 한참 울고 나면 서러운 마음이 조금은 잠잠해지곤 했으니까. 그 어느 날에도 혼자 있게 된 틈을 타 엄마 사진 앞에 앉아 엉엉 울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로 뜨끈한 온기가 느껴졌다. 어 뭐지?      

뒤를 돌아보니 가을이가 어느새 곁에 와 있었다. 내 몸에 자신의 등을 꼭 붙이고 앉아 들숨 날숨을 부드럽게 내쉬며 얌전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몸을 돌려 바라보니 내 눈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금세 자신의 반들반들한 배를 내어준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그게 웃겨 배를 쓰다듬어 주니 벌떡 일어나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할짝할짝 핥아 닦아준다. 가을이의 모든 몸짓과 눈빛이 ‘괜찮니? 네가 필요할 때까지 내가 곁에 있어줄게.‘라고 말하고 있었다.

작고 따뜻한 가을이를 껴안고 울던 그날, 나는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그 어떤 다정한 사람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위로를 받았다. 연민이든 동정이든 공감이든 그 어떤 다른 이름의 감정은 끼어들지 않은 순도 백 프로의 위로만을 위한 위로의 마음을.


지금도 언제나 가을이는 내가 그 자리에 앉아서 울 때면 119 구조대처럼 후다닥 달려와 내 옆을 지킨다. 이것이 바로 우리 집 강아지 가을이의 특별한 능력.



가을이가 우리 집에 온 지도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가을이보다 오래 살 수 있을까,

아니면 가을이가 나보다 오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 어느 편이더라도 모두 괜찮다.


내가 우주의 곁에 있을 때도 없을 때도

가을이는 우주가 울면 한달음에 달려가 우주에게 온기를 나눠줄 테니까. 온몸을 다해 울지 말라고 말할 테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지 않고 곁에 있어주고 믿어 주고 사랑해 줄 테니까.

그것이 우리 가을이가, 아니 세상의 모든 반려동물들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가을이는 마룻바닥에 힘차게 발을 부딪히며 타닥타닥 달려와 내 발 밑에 앉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가을아.

이제 산책 갈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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