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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이 Aug 15. 2024

어쩌다 마주친 나의 암센터 동료들

episode 10.

   



발이 닿는 길목마다 벚꽃이 만발이던 어느 봄날, 치료를 받았던 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로부터 전화가 왔다.

본병원에서 먼저 전화가 오는 일은 드물기에 놀란 마음을 다스리며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심신을 가라앉힌 채 조심히 받았다. 가늘게 떨리는 내 목소리를 느끼셨는지 간호사 선생님은 ‘강윤 씨, 별일은 아니고요.’하고 우선 나를 안심시킨 후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역시 암센터 간호쌤 다운 배려다.       



“다름이 아니고, 교수님께서 이번에 자궁암 환자분들 중에 비슷한 나이대의 분들을 모아서 모임을 만들려고 하시고 있어요. 강윤 씨도 참석하면 좋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아, 이것이 말로만 듣던 자조 모임인가?

자조 모임이란 ‘비슷한 질병과 심리사회적 문제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고 그 해결을 지지해 주면서 보다 효과적으로 자신의 삶을 조절하기 위한 자발적인 모임’을 말한다.

순간 과연 나에게 자조 모임이 필요할까?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성큼 밀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왜..? 모임을 왜 만드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자궁암 환자분 중에 영화감독인 분이 계신데, 그분이 투병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하시나 봐요. 비슷한 케이스의 환자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 하셔서 교수님께서 도움을 주기로 하셨어요. 그래서 지금 몇 분 추려서 연락을 드리고 있는 거예요.”     




사실 나는 암 치료 종결 이후 그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물론 건강을 위해 개인적으로 신경 쓰는 부분들이 많긴 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암밍아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이 암 같은 건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것처럼 (보여지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조 모임에 참석한다는 게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고 각고의 노력으로 잔잔하게 만들어 놓은 마음에 파동이나 여진이 생길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아픔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니 본능적인 용기가 꾸물꾸물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고민하다 더듬더듬 참석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나니 그제야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러게. 다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강윤 씨에게도 분명 좋은 시간이 될 거예요.’ 간호사 쌤의 마지막 말이 모임을 앞둔 내내 마음속을 떠다녔다.      



전화를 받은 이후부터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이제 막 더워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약속된 시간보다 일찍 서둘러 암센터로 향했다. 치료도 검진도 아닌 아무 진료 일정이 없는 날에 병원에 가는 길은 처음이었는데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향할 수 있다는 느낌이 신선했다.

어쩐지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였던 지하 2층 회의실로 들어섰다. 모인 사람은 나까지 모두 네 명이었고 어색하게 눈인사를 주고받고 침묵 속에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침묵을 뚫고 우리 모두의 주치의인 방사선과 교수님과 간호사쌤이 간식과 음료를 한 아름 안고 들어오셨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해요. 원래는 한 열 분 정도 더 많은 인원이 있었는데 이런저런 문제들로 못 오게 됐어요. 연락드렸을 때도 한 두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임에 긍정적이시더라고요. 유방암 환우분들은 자조 모임도 많고 활발한 편인데, 이상하게 자궁암은 그런 게 없어서 안 그래도 제가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이번 기회로 서로 도움받는 좋은 시간 됐으면 좋겠습니다.”     



진심 어린 말씀에 긴장감이 감돌던 분위기가 살짝 풀어졌다. 선생님들이 나가시자 이윽고 회의실에는 우리 네 명만 남았다.



어색함도 잠시, 이 모임을 주최한 영화감독인 H님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른 여느 모임에서는 돌아가며 자신을 소개할 때 이름이나 나이, 직업 같은 것들을 먼저 서두에 이야기하겠지만 우리는 달랐다. 어떻게 처음 암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어떤 경로로 이 병원으로 왔는지, 어떤 수술과 치료를 받았는지, 그때는 어떤 심경이었는지가 우리의 공식 자기소개였다.      



H님은 다큐멘터리를 오랜 기간 찍었는데 그 영화가 개봉할 때 즈음, 배가 아파서 찾아간 응급실에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최대한 빠르게 병원 진료를 받으려 찾아보다 공석이 딱 한 자리 남아있던 암센터로 예약을 하게 됐고, 아니나 다를까 예상치도 못한 암 진단을 받고 바로 수술 항암 방사선의 표준치료에 돌입했다고 했다.



“다들 젊은 암 환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도대체 제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거예요. 너무 답답하고 궁금하고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에 교수님께 하소연하듯 부탁을 드렸는데 이렇게 모임을 만들어주셨어요. 다들 와주셔서 감사해요.”     



이야기를 듣는 내내 H님의 지난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내 눈앞에 펼쳐졌다. 자세히 묘사하지 않아도 구석구석 녹아있는 감정이 절로 느껴져서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S님은 환자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상큼해 톡톡 튀는 느낌을 받았다. 정성스러운 메이크업에 귀여운 투톤의 염색모까지. 비단 외모뿐만 아니라 느껴지는 분위기 자체가 밝은 기운을 뿜뿜 내뿜고 있어서 그녀를 처음 마주쳤을 때 당연히 누군가의 보호자겠거니 생각했을 정도였다.

S님은 임신을 위해서 꽤 오랜 기간 자궁을 보존하며 호르몬 치료를 진행했는데 점차 상황이 안 좋아져서 결국엔 수술과 치료를 했다고. 치료 이후에도 장폐색으로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해 있을 정도로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결국엔 모두 다 이겨내고 지금은 귀여운 강아지들과 행복하게 결혼생활 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늘 하나 없이 맑은 얼굴로 ‘저 너무너무 힘들었어요.’하고 말하는데 당장이라도 꼭 안아주고 싶다는 충동을 잠재우느라 혼났다.      



Y님은 가장 최근에 치료를 마친 분이었고 이 모임에 올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저는 항암 하면서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길래 스트레스받기 싫어서 미리 삭발을 해버렸거든요. 그 당시에는 너무 슬퍼서 막 울었는데 막상 밀고 다니 너무 편하더라고요. 씻을 때도 너무 간편하고. 앞으로도 긴 머리는 절대 못할 것 같아요!”      



가장 아픈 때를 떠올리며 농담할 수 있을 정도로 씩씩했던 Y님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기다려서 오늘 좀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아이 이야기를 꺼내다가 결국엔 눈물을 흘리셨다. 누구도 섣불리 위로의 말을 꺼내지 않던 그러나 말없이도 충분히 위로가 건네지던, 그 순간 공기 속에 진하게 물든 연대의 감정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Y님 옆에 앉아 있던 나는 Y님의 마른 어깨를 조심스럽게 토닥였다.      



우리는 그 이후에도 한참 동안 가족 이야기, 건강에 관한 정보, 사회 복귀에 대한 고민 등을 나누었다. 암 환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나눌 법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암 환자가 아니라면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약속됐던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S님과 Y님은 지방에서 올려오셔서 더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서둘러 번호를 주고받고 작별 인사를 했다. 각자 사는 곳이 멀어서 자주 만나지는 못하겠지만 병원에 오는 때에 시간이 맞으면 만나자고, 단톡방을 만들 테니 가끔 안부 주고받자고,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며 힘이 되어주자고, 약속하면서.           



H님과 나는 마침 시간이 조금 더 허락되어 자리를 근처 카페로 옮겼다. 카페에서는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 대화 속에서 나는 부모에게도 남편에게도 절친에게도 하지 못했던 ‘암 환자가 된 이후의 나의 이야기’를 절로 터놓고 있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이해해 주는 이 사람이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라니!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편안했다. 동병상련이라는 진부한 그 사자성어를 온몸으로 체험했달까. 우리는 당연히 매우 다른 가운데서도 닮은 점이 꽤 있었다.

대한민국의 K-장녀에,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 열심히 공부했던 것, 책 읽고 글 쓰는 활동을 좋아하는 점, 심지어 겹치는 지인도 있었다.      



“강윤 님은 오늘 처음 뵌 분인데 오래전 알다가 못 만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나 역시 H님이 말한 그 이상한 느낌을 간직한 채 집으로 돌아와 넷플릭스로 H님의 영화를 봤다. 어쩐지 자꾸 눈물이 났는데 H님의 다음 영화는 꼭 극장에서 보며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엉 울면서 얼마나 행복할까. 얼른 서둘러 울고 싶어 진다.           




우리 네 명의 단톡방의 이름은 ‘암센터 동료’

서른 중반의 내가 회사도 아닌 암센터에서 ‘동료’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상상치도 못했지만

암 환자가 된 덕택에 이리도 강하고 멋진 여성들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

어쩌다 마주친 나의 암센터 동료들과 함께 마흔 살 파티를 하는 그날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러닝 트랙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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