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언제부터였을까?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아프고 적당히 건강한 것에 감사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 것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강한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겼고,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일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이 생각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감사함을 배우는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면 모든 것이 하향 평준화 된다고들 한다. 재력도, 체력도, 건강도, 지위도... 모든 면에서 한창때에 미칠 수가 없다.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은 내려와야 하고, 강철 체력을 자랑하던 사람도 무거운 물건을 번쩍 들어 올리는 대신 허리를 삐끗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그렇게 가진 것을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비로소 감사함을 배우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이 드는 것도 꼭 나쁜 건 아니다.
더 나은 모습으로 나이 들어갈 순 없었니?
그런데 더 많이 나이가 들어서 더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나면, 그때도 여전히 감사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수십 년 노인복지 관련을 일을 했던 분이 말했다.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진심으로 존경하고 싶은 노인을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라고. 처음엔 몹시 서글프게 들렸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삼신할미는 은탁의 선생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아가, 더 나은 스승일 순 없었니? 더 빛나는 스승일 순 없었어?"
언젠가 내가 삼신할미를 만나서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아가, 더 나은 모습으로 나이 들어갈 수 없었어? 더 따뜻하고 지혜로운 노인이 될 순 없었어?"
우아하게 늙어가는 법
우리 사회는 노인에게 가혹하다. 가혹한 시간을 견디다 보면 누구나 인색해지고 옹졸해진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하지 않는가. 가진 것이 없으니 마음이 각박해지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마음이 옹졸해지는 것은 일면 당연할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다. 그리고 여전히 꿈꾼다. 우아하게 늙어가고 싶다는 꿈을. 친구왈 "그 꿈을 이루려면 돈이 많이 있어야 해." 벌어 놓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벌 기회도 그리 많이 남은 것 같지 않고,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더더욱 낮은 것 같고...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리 포기하지는 않으련다.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고집불통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내가 아는 것이 정답이라는 착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간다면 꿈에 한발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걷는다. 부지런히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 나간다. 띠동갑 혹은 두 번의 띠동갑인 어린 친구들과도 만나고 입보다 귀를 더 많이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평생 처음하는 일에도 기꺼이 도전하려고 애쓴다. 늙어보지 않아서 잘 늙는 법을 알지는 못하지만, 세상에 헛된 노력은 없으니 일단은 노력하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