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전해주는 삶의 지혜 10
오래전, 임사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 땅 속에 마련된 관 속에 눕자 뚜껑이 닫혔고 완벽한 어둠이 찾아왔다. 관 뚜껑 위로 한 줌의 흙이 뿌려졌고 이내 못 박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지 체험일 뿐이라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관 속에서 죽음을 몸으로 느껴본 후 참가자들은 비장한 마음으로 유언장도 썼다. 하지만 그 체험이 가져다준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당시 나는 너무 젋었고 죽음은 여전히 머나먼 남의 일처럼 여겨졌으니까.
요즘 나는 청첩장보다 부고를 더 많이 받고 있다. 친구나 선후배의 부모님 연세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뉴스로만 접하던 익명의 죽음 즉 3인칭의 죽음이 2인칭의 죽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불쑥 찾아온 갱년기는 '1인칭의 죽음' 즉 '나의 죽음'을 생각하게 했다.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한 건강은 불안과 걱정을 끊임없이 양산했고 그 불안은 종국에 죽음으로 내달렸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오늘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죽음'이 깨닫게 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생각하게 했고 이별은 '지금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했다. 죽음은 두려워할 대상도 터부시 할 대상도 아니다. 단지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오늘의 소중함을 알고, 어디에 정성을 쏟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될 뿐이다.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면, 내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문득 이런 가정을 해봤어요. '만일 내일 아들이 죽는다면, 난 어떤 기분일까?'그러자 우리 둘의 관계에 대해 엄청난 상실감과 후회의 감정을 갖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속으로 계속 이렇게 끔찍한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 아이의 장례식에 대해서도 상상해 봤어요. 나는 아들에게 정장을 입혀서 묻지는 않을 거예요. 정장을 입는 타입의 아이가 아니거든요. 그 애가 그토록 좋아하던 지저분한 셔츠를 입혀서 묻을 거예요. 그렇게 그 애의 삶을 기리게 될 거예요.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이 죽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애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겠구나.' (중략)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서 아들에게 마음대로 티셔츠를 입어도 좋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아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아들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 데이비드 케슬러의 <인생수업> 중에서
만일 아들이 죽는다면? 저자의 가슴 철렁한 상상에 나의 상상을 덧입혀 보았다. 그리고 결론은 저자와 한치도 다르지 않았다. 딸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겠다는 생각 따위는 버리고 그대로 사랑하기로 했다. 튀어나오려는 잔소리를 애써 봉인하며 기다려주고 응원해 주자고 마음먹었다. 물론 그 마음이 현실로 고스란히 이어지지는 않아서 때때로 폭풍 잔소리를 쏟아내기도 하고 내가 맞다며 고집을 피우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 덜 후회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