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전해주는 삶의 지혜 11
몇 년 전 벚꽃이 팝꽃처럼 터져 나오던 어느 화창한 봄날, 친구들과 함께 여의도로 향했다. 꽃 반 사람 반. 봄날의 거리는 아름답고도 소란스러웠다. 우리도 그 소란스러움에 합류하고자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새가 내 머리 위를 날아갔고,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머리를 더듬어보니 이물질이 묻어났다. 새똥이었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이게 동화책 제목이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니...
새해를 시작할 때 나는 해마다 미션을 정한다. 그 해 나의 미션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 10가지 이상 해보기'였다. 벚꽃이 필 때까지 미션을 하나도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새가 알았던 것일까? 그래서 그렇게라도 도와주고 싶었던 것일까? 어쨌든 덕분에 미션 하나 달성! 그 와중에도 꽃구경은 하고 싶어서 '다행히 냄새는 그다지 고약하지 않다'며 대충 물티슈로 닦아내고 새똥 맞은 머리를 하고 벚꽃길을 길었다.
또 어느 해 여름, 긴 머리가 거슬려 불쑥 커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집에서 나와 제일 먼저 보이는 동네 미용실로 들어갔다. 들어서는 순간 살짝 쎄~한 느낌이 들었다. 손님의 흔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른 발길을 되돌려 나가려고 하는 순간 "어서 오세요. 이 쪽으로 앉으세요" 라는 인사에 도망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왜 안 좋은 느낌은 틀리는 적이 없는 것일까? 서어어~ 걱, 미용사의 가위질 소리가 몹시도 느리고 둔탁했다.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설마, 기본은 하겠지' 애써 위로하며 버텼다. 한참 만에 커트가 끝나고 안경을 끼는 순간 또 한 번 확인했다. 설마는 늘 사람을 잡는다는 것을. 이미 잘려나간 머리카락을 다시 붙일 재주는 없으니, 아니 더 이상 그분의 손에 내 머리카락을 맡기면 안 될 것 같아서 조용히 계산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주문을 외웠다. '머리카락은 또 자란다. 머리카락은 금방 자란다. 아, 야한 생각 야한 생각' 결과적으로 난 한동안 가족과 동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내 머리카락을 희생하여 웃음을 선사하는 복을 짓게 하다니, 그동안 내가 좋은 일을 너무 안 했었나 보다.
올 해초 스페인 말라가로 여행을 갔을 때, 재래시장 구경을 하고 그곳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점원이 메뉴를 추천해 주겠다고 하기에 선뜻 오케이 했다. 그가 추천한 것은 해산물 구이 세트. 새우와 랍스터, 문어, 연어, 가리비 등등 숨 가쁘게 읊어가기에 가격을 물었다. '해산물 종류마다 다르다'는 답변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냥 그걸로 주문하기로 했다. 옆 테이블에서도, 뒤 테이블에서도 그것을 먹고 있었고 접시는 제법 훌륭해 보였으니까.
맛은 나쁘지 않았다. 맛이 나쁠 수 없는 재료였으니까. 맛있게 잘 먹고 계산서를 달라고 하는 순간 다시 새똥을 맞은 기분이었다. 무려 150유로. 옆 테이블에서도, 뒤 테이블에서도 원성 섞인 불평을 토로하고 있었던 이유를 그때서야 깨달았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접시는 비었으니 계산해야지. 그리고 비싸게 먹은 만큼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테니 기억 유지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눈부신 봄날에 새똥을 맞기도 하고, 커트하러 갔다가 '처삼촌 묘에 벌초해 놓은 것' 같은 꼴을 하고 나오기도 하고, 여행 갔다가 바가지를 쓰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아니 이보다 더 한 일도 얼마든지 생기는 것이 인생이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들이 생기냐고 스트레스받을 필요도 없고, 화낼 필요도 없다. 그냥 생길 수 있는 일들이 생긴 것뿐이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육체적 괴로움을 겪게 되면, 근심하고 상심하며 슬퍼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그는 육체적 느낌과 마음의 느낌에 의해서 이중으로 고통을 받는다. 마치 어떤 사람이 화살에 맞았는데, 다시 두 번째 화살에 또다시 맞는 것과 같다. 그는 두 개의 화살 때문에 괴로움을 모두 다 겪는다.
- <상윳따 니까야> 중에서
스트레스 받으며 화내고 속상해하는 것은 자신을 향해 두 번째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첫 번째 화살을 맞아서 이미 괴로운 자신에게 두 번째 화살까지 쏠 이유는 절대 없다. 그냥 웃고 넘어가면 이 역시 경험이고 추억이다. (심지어 글의 소재도 된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첫 번째 화살을 맞는 것이 싫어서 안전한 곳에 웅크리고만 있다면 그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