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에 자연이 결핍되지 않게 하라!
우울증을 두고 흔히 이렇게 표현한다. '마음의 감기'라고. 그래서 우울증을 쉽게 생각했다. 감기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주일쯤 앓고 나면 툴툴 털고 일어나니 우울증도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책의 저자 '에마 미첼'은 25년간 우울증을 앓았다. 그가 말하는 우울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어떤 날은 머릿속에 음침하고 부정적인 모래 진창이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진다. 또 어떤 날은 짙은 먹구름이 겹겹이 피어나 내 생각을 짓누르고 의욕을 빼앗아가는 것만 간다.
저자는 심각한 우울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고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딸을 위한 장갑을 뜨고, 그리고 매일 숲을 산책하고, 관찰한 동식물을 그림으로 남겼다. 날마다 숲 속을 산책하는 일은 그 어떤 상참 치료나 의약품 못지않은 치유 효과가 있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자연이 주는 치유 효과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증명되고 있고, 의료 현장에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영국 보건복지부가 지원하는 '그린 사회처방(Green Social Prescribing)' 프로그램에서는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 '산책, 정원 가꾸기' 등을 처방한다. 이런 활동은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분비를 증가시켜 행복과 쾌감을 느끼게 한다. 또 2007년 마드리드대학교의 노르웨이생명공학대학교의 합동 연구에서는 자연경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나 질병에서 회복되는 속도도 빨라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숲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 혈압이 떨어지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감소하고, 불안이 가라앉고 맥박도 차분해진다. '자연살생세포'라고 불리며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파괴하는 특정 백혈구의 활동은 늘어난다. 우리가 단지 모를 뿐, 자연이 가진 힘은 위대하다.
<야생의 위로>는 저자가 겪은 우울증에 관한 회고록인 동시에 자연이 건네준 위안에 대한 기록
건조된 해안 풀밭의 향긋한 냄새, 벼랑에 핀 아르메니아꽃의 은은한 분홍빛, 작은 물고기들의 움직임, 파도에 깎여 속이 빈 바위 구멍에 고인 바닷물, 말라붙어가는 해초의 톡 쏘는 내음, 손바닥에 에메랄드처럼 소중하게 쥐여 있던 조그만 초록빛 오각불가사리. 말로스 해변과 할아버지의 정원에서 자연과 처음 만나 느낀 강렬한 기쁨을 거듭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나를 계속 살게 해 주었다.
그림과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
저자는 자신을 위로했던 자연의 모습을 글과 그림, 사진에 섬세하게 담아냈다. 박물학자이자 디자이너이며,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 미첼은 그가 가진 재능을 이 책에서 한껏 펼치고 있다. 글과 함께 수록한 사진과 스케치, 수채화는 그가 보고 듣고 느낀 자연을 독자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오늘 해변에서 찾은 것들을 지금껏 모은 조개껍질과 화석 옆에 펼쳐 놓는다. 채집한 식물과 화석을 늘어놓고 살펴볼 때 내 마음은 그림을 그리거나 빵을 반죽할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내면의 갈등이 누그러지고 평온이 찾아든다.
나는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선택한 물품을 진열하며 자그마한 임시 박물관을 조성한다. 그 과정은 위안을 주고 우울을 거둬 갈 뿐만 아니라 이 사물들을 찾아낼 때 느꼈던 만족감을 증폭시킨다
문학적 항우울제 같은 책
책은 가을에서 시작해 겨울과 봄 다시 가을로 이어지는 1년의 기록이다. 계절의 변화 속에 그가 겪는 감정의 변화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미첼은 반려견 애니와 함께 집 근처 숲을 산책하는 것으로 시작해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해변, 오래된 화석이 있는 절벽, 작은 난초가 있는 언덕 등 다양한 공간을 찾아간다. 공간을 탐험하면서 산책 중에 발견한 자연물을 그리고 사진 찍고 채집한다. 그 모든 과정이 그녀에게는 치유의 일부가 된다. 숲을 산책하며 모은 자연의 힘을 담은 이 책은 어느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문학적 항우울제'가 된다.
나는 차를 돌려서 올빼미가 내려앉은 들판 가까이에 있는 널따란 갓길로 달려간다. 산울타리로 가려진 풀밭에 올빼미가 어깨를 수그리고 앉아 있다. 아마도 은밀한 장소를 골라 식사를 즐기고 있나 보다. 해가 지평선에 가 닿는 동안 올빼미는 먹이를 물어뜯고, 나무와 산울타리에는 황금빛 후광이 내려앉는다. 평생 목격한 것 중에서도 손꼽게 아름다운 풍경이다. 새삼 내가 얼마나 우울증에 지치든, 얼마나 기만당하고 무기력해지고 황폐해지든 간에 이런 광경과 만나고, 그에 따른 치유 효과로 머리를 채울 수만 있다면 계속 싸워나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명상이 세계적인 유행이다. 혹자는 말한다. 명상은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삶의 기술이라고.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그 '명상'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그냥 자연으로 가 보자. 자연은 우리로 하여금 저절로 명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해양생물학자 월리스 니컬스에 따르면, 해안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거나 흘러가는 강물을 지켜볼 때 눈과 뇌는 시각적 자극에서 벗어나게 된다. 뇌를 위한 휴가이자 현대 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부산하고 끊임없는 자극으로부터의 휴식, 일종의 해양 명상인 셈이다. 물살에 발을 맡기고 있는 동안 나는 그것을 분명히 느낀다. 파도가 밀려들었다가 스러져 가는 동안 마음은 차분한 정체상태로 흘러든다. 코바늘 뜨개질이나 스케치를 할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내면의 소란이 가라앉고 어두운 생각도 사라진다.
저자는 말한다. 자연을 치료 약 삼은 한 해의 경험이 '인간이 온전하려면 자연 풍경 속에 있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져다주었다고.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자연과의 단절'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당신이 무기력해져 소파나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들큼한 슬픔의 진창에 빠진 기분일 때, 이 책으로 내가 관찰한 것들을 읽으며 사진과 그림을 보고, 나아가 직접 고둥이나 족제비를 찾아 나섬으로써 위안을 찾게 되는 것”이 자신의 바람이라고.
ps.
우울의 늪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혹은 자연이 그리울 때, 이 책은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도 지난해 6월 '채그로 책선물 파티'에서 이 책을 선물 받았고 행복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여름휴가로 이번 주 채그로가 한 주 쉬어가면서 무슨 책을 소개할까 고민하던 중에 이 책이 눈에 띄어 다시 펼쳐보고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