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인간 사회의 거울
인류 진보의 토대는 '금융'
인류는 끊임없이 진보해 왔다. 그 동력은 무엇일까? 과학기술의 발달, 정치와 시민의식의 성장, 문화 예술의 진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금융의 지배>를 쓴 저자 '니얼 퍼거슨'은 인류 진보의 토대가 '금융'이라고 말한다. 그는 '화폐와 은행의 탄생'에서부터 '신용의 성장, 채권 시장과 주식 시장, 보험과 부동산, 국제 금융의 성장과 쇠퇴'까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현대 중국까지, 세계 금융사 전반을 다루면서 정치, 경제,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은행 Bank는 Bench에서 왔다. 중세 이탈리아의 환전상들이 시장에 긴 나무 벤치를 놓고 돈을 교환하거나 대출을 해주던 것에서 은행이 출발했기 때문이다. 만약 환전상이 파산하면 그 벤치를 부숴버렸는데, 이것이 바로 '파산(Bankrupt)’의 어원이다. 1930년대 이전 메디치 가문은 은행가라기보다는 폭력단에 가까웠지만 '조반니 디비치 데 메디치'가 등장하면서 달라졌다. 환어음 업무를 통해 부를 쌓기 시작했고, 탈집중화 경영으로 무섭게 성장해 갔다. 조반니는 후계자들에게 '금융적 혜안을 견지하라'는 간곡한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하는데...
이 대목에서 내가 왜 부자가 되지 못하는지 깨닫게 된다. 금융적 혜안은커녕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조차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읽으며, 챗gpt에게 질문하고 설명을 들어가며 나름대로 이해한 몇 가지 사실들. 첫째 돈은 악의 근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저자도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로 '빈곤은 탐욕스러운 금융업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꼽았다. 이보다 훨씬 관련 깊은 요인은 '금융 기관의 부족 즉 은행의 부재'라고 말한다.
빈곤의 원인은 금융업자의 탐욕이 아니다
화폐가 없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현재보다 훨씬 끔찍해질 것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안토니오처럼, 대부자란 운 나쁜 채무자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거머리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그렇게 행동하는 고리대금업자도 물론 있겠지만, 메디치 이후 성장해 온 은행들은 '돈이 있는 A지점에서 돈이 필요한 B지점으로 자금이 순조롭게 이동하도록'하는 역할을 하며 진화해 왔다.
간단히 말해 신용과 채무는 경제 발전에 꼭 필요한 초석으로 광업, 제조업 혹은 무선 통신 분야만큼 국부 창출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또 한편으로 빈곤의 원인을 금융업자의 탐욕으로 보는 것도 지나친 해석이다. 때로 가난은 은행의 존재가 아닌 금융 기관의 부재와 더 관련 깊었다. 글래스고의 이스트엔드(이곳은 낡은 주택단지는 고리대금업자의 온상지) 지역의 경우 차입자들이 효율적인 신용망에 접근할 수 있어야 고리대금업자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 저축자들이 믿음직한 은행에 돈을 맡겨야 은행이 이 유휴 자금을 업계로 순환시킬 수 있다.
금융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다
메디치 가문이 은행업으로 성장했다면, 로스차일드 가문은 채권 시장을 통해 부를 쌓았다. 채권은 '돈을 빌려주고, 일정 기간 뒤에 이자와 원금을 돌려받기로 한 약속을 종이에 적어둔 증서'이다. 그리고 이 채권 시장은 전쟁을 통해서 발전했다. 전쟁은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한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는 군사적으로는 선전했지만 국제 금융(특히 로스차일드가 주도하는 런던 자본시장)에서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전쟁 자금을 조달하지 못했고 결국 패배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당시 북부의 링컨 정부는 전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했고, 국제적 신용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로스차일드는 '북부의 채권은 안전'하다는 평가로 그들의 신뢰를 높여주었다. 반면 남부는 '면화 외교' 전략을 썼다. 유럽에 면화를 공급하지 않겠다는 압박으로 지원을 끌어내려했지만, 로스차일드는 남부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남부는 유럽 금융시장에서 필요한 신용을 확보하지 못했고 전쟁 자금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퍼거슨은 이 대목에서 '금융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퍼거슨은 1차 세계대전 종료 후 독일 경제를 통해 금융과 정치, 사회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설명한다.
전쟁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참담한 시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은 금융 혁신을 촉발했고 이후 금융상품과 제도가 사회 복지와 안전망으로 연결되면서 근대 복지국가의 기반을 형성하게 됐다고 한다.
보험의 시작은 도박?
중세 시대에도 '생명 보험'이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의 보험들은 경마 내기와 비슷했다. 자신과 관계없는 인물을 대상으로 보험을 들고, 그가 사망하면 보험금을 타는 생명보험이 유행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유명인사를 살해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보험은 모두 일종의 도박이었고, 1660년 경 확률을 비롯한 지적 혁신이 일어나면서 보험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보험은 단순한 '위험 회피'를 넘어 금융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퍼거슨은 보험을 금융 진화의 핵심 단계로 보고 있다. '인간은 위험을 계산하고 가격을 매기면서, 경제 활동을 안전하게 확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보험이 없었다면 상업, 무역, 산업 혁신이 지금만큼 활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금융은 인간 사회의 거울
퍼거슨은 이런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은행과 채권, 주식, 보험, 주택' 등 금융의 변천사를 설명한다. 그리고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한다. 금융은 인간 사회의 거울이다! 금융 제도가 안정적이면 사회도 안정되지만, 금융이 혼란스럽거나 위험하면 사회적으로 혼란과 위기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돈은 물보다 유동적이고 대기보다 불안정'하기 때문에 금융 위기의 시기나 강도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고 하지만, 인류가 지나온 금융의 역사를 안다면 위기 대응력은 분명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