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마음에 한 발 다가서기
해외여행을 가면 그야말로 '경청'이라는 걸 하게 된다. 물론 요즘은 스마트폰 번역 기능이 너무 좋아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소통해야 할 때 방법은 하나뿐이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듣기. 잠깐이라도 마음속으로 딴생각을 하면 상대방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한 마디 한 마디를 집중해서 듣게 된다.
일상에서는 어떤가? 인간은 누구나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고, 소통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더 행복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사람도 있다. 정말 열심히 얘기를 했는데, 벽 보고 얘기한 느낌이 들 때는 답답하다 못해 속이 터진다. 그가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절망감까지 느껴진다.
아마도 경청이 가장 어려운 관계는 '부모 자식'일 것이다. 일단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기에는 나이 차이가 너무 많다. 서로의 세상이 너무 다르다. 그러니 한쪽은 잔소리를 쉼 없이 하게 되고, 다른 한쪽은 '제발 일절만 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귀를 막고 싶어 한다.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소장은 <귀 기울임의 미학>에서 왜 어설픈 충고나 조언을 남발하면 안 되는지, 왜 상대방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지... 차근차근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내가 속 터졌던 만큼 상대방도 속 터졌겠다는 것을. 나도 그 사람에게 때때로 아니 어쩌면 자주 '말이 안 통하는 벽'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해왔던 혹은 하려고 하는 수많은 조언이나 충고나 사실은 원하지 않는 잔소리였을 뿐이라는 걸. 조언은 상대방이 원할 때 해줘야 한다. 원하지 않는 조언은 잔소리일 뿐이다. 심지어 상대방도 이미 알고 있는 것, 혹은 실천할 수 없는 것을 조언이랍시고 하는 건 일종의 폭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언 대신 용돈을 주자
평소에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모범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실천해오지 않은 이상 인생에 대해 충고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평소에 공정하고 헌신적으로, 지속해서 누군가를 대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에게 충고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대신 위로해 주자. 충고하는 대신 용기를 주자. 차라리 밥을, 술을 사주자. 조언 대신 용돈을 주자.
만약 누군가에게 충고를 꼭 받아들이게 하고 싶다면 무언가를 해주어야 한다. 물질과 마음이 같이 갈 때 좋은 충고가 된다.
실천이 가능할 때 충고다. 우리는 말을 건네기 전에 상대방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지 숙고해야 한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안 되는 것을 조언하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충고나 조언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저자는 어떻게 하면 대화를 잘 이끌어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아픔을 잘 들을 수 있는지 실천적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불이 났다면 불부터 꺼야 한다!
화가 난 이를 대할 때는 분노하지 말기를 권하기에 앞서 공감해야 한다. 쓰러질 듯한 나무에 지지대를 세우면 흔들림이 멈추는 것처럼, 내 편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분노가 가라앉는다. (…) 집에 불이 나면 일단 물을 끼얹듯이 충고에 앞서 정서적인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다.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지 마라!
나의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것은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다. 상대방이 마음속으로는 안 좋은 생각을 하더라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견딜 만하다. 그리고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다. 또한 공평하게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말,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의 말,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
심리적인 샌드백이 되어주는 것도 경청이다!
때로 작정을 하고 상대방의 원망을 받아내는 심리적 샌드백이 되어주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이 안 풀리면 자식은 부모를 원망한다. 부모가 받아주지 않으면 원망할 다른 대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잘못한 것이 없는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상대방에게 넘어가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부모니까 참는다. 이럴 때는 자식이 부모 탓을 하게끔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된다. 말을 건넬수록 자녀의 분노만 더욱 거세진다. 부모만이 참아낼 수 있는 일이 존재한다.
귀 기울인다는 것은 상대방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마음의 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어쩌면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꺼내놓을 수 있고, 꺼내놓아야 공감과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