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선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비로소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는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의 실체가 뭔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바쁘다는 이유로 외면하거나 '짜증 난다'는 말도 퉁치기 일쑤다. 우리가 퉁치고 넘어갔던 행동과 생각, 감정을 소설에서 다시 만나면서 나를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특히 수많은 걸작을 남긴 '단편의 대가'로 손꼽히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은 '인간 본성'을 엿보게 한다.
1892년 도쿄에서 태어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도쿄 대학교 영문과 재학 중에 나쓰메 소세키의 문하로 들어갔고 '노년'이라는 단편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너무 짧았다. 채 한 살도 안 돼서 발병했던 어머니의 정신병. 광인이었던 어머니의 피가 자신의 몸에도 흐르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 끝내 그를 잠식했던 것일까? 몇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치사량의 수면제를 먹고 35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아쿠타가와의 단편은 여러 가지 버전으로 출판돼 있다. 민음사 버전에는 표제작인 <라쇼몬>을 비롯해서 외모 콤플렉스를 소재로 인간 심리를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는 <코>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현실 속의 비현실을 그린 <꿈> 불교 설화를 차용한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미줄을 붙잡으려 애쓰는 도둑 이야기 <거미줄> 끝도 없는 부가 가져온 허무에 좌절하여 신선의 세계를 꿈꾸는 <두자춘> 젊어서 노인이었고 나이를 먹고서야 젊은이가 되어가는 갓파 나라의 이야기를 담아낸 걸리버풍 이야기 <갓파> 그리고 예술을 향한 끝없는 집착을 가진 아버지와 딸과 귀족의 욕망을 그린 <지옥변>까지 14편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그럼 지옥도를 그리려면 지옥을 보아야만 하는 것 아닌가.”
“그러하옵니다."
“빈랑모 수레에도 불을 질러라. 또 그 안에는 아름다운 여자를 한 명, 여인의 차림새로 태워 보내주마. 불길과 검은 연기에 공격받아 수레 안의 여자가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을――그것을 그리려고 생각해 낸 것은, 과연 천하제일의 화가로구나. 칭찬해 주마. 오오, 칭찬해 주마.”
불기둥 앞에 얼어붙은 듯 서 있는 요시히데는 - 이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옥의 고통에 시달리던 것 같던 요시히데가 지금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광채를, 마치 황홀경에 빠진 듯한 광채를 주름투성이 얼굴 가득 띠며 전하 앞에서도 잊은 채 두 팔을 가슴에 꼭 껴안고 서 있지 않습니까. 그의 눈에는 어쨌든 딸이 숨져가는 모습이 비치지 않는 듯했다. 오직 아름다운 불꽃의 색과 그 속에서 고통받는 여인의 모습만이 한없이 마음을 기쁘게 하는 - 그런 풍경으로 보였다.
- <지옥변> 중에서
하나의 사건, 여러 개의 진실
<라쇼몬>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이 영화는 유쿠타가와의 작품 '라쇼몬'과 '덤불 속'이라는 2개 작품을 결합시킨 것이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는 날 '라쇼몬'의 처마 밑에서 '덤불 속에서 있었던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그런데 사건은 하나인데 주장은 제각각이다.
다조마로: 저 사내를 죽인 것은 납니다. 하지만 여자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 나와 스무 합 이상을 겨룬 것은 하늘 아래 그 사내 단 한 사람뿐이었으니까요. 나는 사내가 쓰러짐과 동시에 피 묻은 칼을 내리면서 여자 쪽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여자가 온데간데없는 거 아닙니까.
여자: "여보, 이렇게 된 이상 당신과 함께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대로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 당신도 죽어주세요. 당신은 제 부끄러운 꼴을 보셨습니다. 저는 이대로 당신 혼자 남겨둘 수는 없습니다." (...) 남편을 죽인 저는, 도둑놈에게 치욕을 당한 저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입니까?
혼백: "저 사람을 죽여주세요" 아내는 그렇게 부르짖으며 도둑놈의 팔에 매달려 있었다. (...) 아내는 내가 망설이고 잇는 사이, 뭔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가 싶더니 곧장 덤불 속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 내 앞에는 아내가 떨어뜨리고 간 단도가 저 혼자 반짝이고 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고 단숨에 내 가슴에 박아 넣었다."
어쩌면 진실이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각자 '주관적인 인식'과 이기심이 빚어낸 '진실이라고 믿는 진실'만이 있을 뿐이다.
1916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코>를 발표했을 때 스승 나쓰메 소세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감탄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작품을 이삼십 편쯤 써보세요. 문단에서 견줄 이가 없는 작가가 될 겁니다. 그런데 <코>만으로는 아마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겠지요. 본다고 해도 다들 그냥 지나칠 겁니다. 그런 일에 개의치 말고 앞으로 쭉쭉 나아가세요. 대중은 안중에 두지 않는 편이 몸에 좋습니다.
- 나츠메 소세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한테 쓴 편지에서
스승의 상찬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1914년 <노년>을 시작으로 한 그의 문학여정은 1927년 자전석 성격의 유작 <어떤 바보의 일생>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너무 일찍 마침표를 찍었지만,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그는 무려 150여 편의 단편 작품을 남겼다. 짧지만 깊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단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