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
책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 조금 더 세분화해 보면 '사 와서 그냥 모셔두기만 한 책, 앞에 몇 페이지 읽다가 그만둔 책,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씩 정독한 책, 또 머리맡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펼쳐보는 책'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에인 랜드의 소설 <아틀라스>는 미국인들에게 '몇 번씩 정독하는 책'이라고 한다. 우리가 마치 삼국지를 몇 번씩 읽듯이 말이다. 1991년 미국 의회 도서관과 ‘이 달의 책 클럽’이 공동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으로 <아틀라스(Atlas Shrugged)>가 성경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했단다. 1999년 랜덤하우스 설문조사에서 독자들이 뽑은 20세기 위대한 책 100선 중 1위에 올랐다고 하고.
나에게 아틀라스는 일단 벅찼다. 분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권과 2권은 각권이 800페이지 정도 되고, 3권은 무려 1100페이지가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다. 사실 스토리는 심플하다.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들의 파업과 아틀라스 가운데 한 명인 대그니 태거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그 속에 저자가 주장하는 '객관주의 철학'이 수려한 문장으로 꿈틀거린다. 저자 에인랜드는 러시아계 미국인으로 소설가이자 경제철학자이며, 객관주의 철학의 창시자이다. 그가 주장한 객관주의 철학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형이상학: 현실은 절대적이다. 현실은 인간의 감정이나 소망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인 식 론: 이성은 인간의 유일한 지식의 원천이자 행동 지침이다.
감정이나 믿음이 아닌 논리적 사고만이 진리를 얻는 방법이다.
윤 리 학: 인간의 최고 도덕적 목적은 자신의 이성에 기반한 자신의 행복을 성취하는 것이다.
정치철학: 개인의 권리가 절대적으로 존중되며
정부의 역할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자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미 학: 예술은 인간의 가치 판단을 구체적인 형태로 재창조한다.
예술의 목적은 인간의 이상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존 골트가 누구요?"
소설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배경은 가상의 미국이다. 정부의 규제와 집단주의적 도덕(이타주의)이 만연하면서 경제가 점차 붕괴해 가는 시대이다. 이 시점에 경제를 떠받치던 기업가와 지식인인 이들이 파업을 선언하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경제를 떠받치는 기업가 가운데 한 명인 대그니 태거트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아름답고 독립적인 여인이며, 미국 최대의 철도 회사인 태거트 철도의 상속녀이다. 무능한 오빠 제임스 태거트를 대신해서 고군분투하며 회사를 경영해 나간다.
그 와중에 대그니에게 3번의 사랑이 찾아온다. 대그니의 첫사랑은 프란시스코 단코니아다. 그는 명문 귀족이자 구리 재벌 단코니아 가문의 상속자로, 부와 명예, 뛰어난 능력, 준수한 외모까지 모든 것을 갖추었다. 두 번째 사랑은 행크 리어든. 미국 철강 산업의 일인자로 혁신적인 합금인 ‘리어든 금속’을 개발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일밖에 모르는 냉혈한, 탐욕의 화신'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존 골트. 서민 가정 출신이지만 패트릭 헨리 대학의 촉망받는 물리학도이자 철학도로 성장한 존 골트는 20세기 모터 회사에 들어가 혁명적인 모터를 개발하지만, 부조리한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세상에서 자취를 감춰버린다.
프란스시코가 조용히 웃더니 잠시 후 말했다. "대그니, 인생에는 중요한 게 없어. 자신의 일을 얼마나 잘하는가 말고는. 중요한 건 그것뿐이야. 네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는 바로 거기서 결정되는 거야. 그게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유일한 척도이지. 사람들이 억지로 강요하는 도덕은 사기꾼들이 미덕을 강탈하려고 내미는 지폐 같은 거야. 능력이 절대적인 기준에서의 유일한 미덕이야. 너도 더 크면 내 말뜻을 알게 될 거야."
"지금도 알아. 하지만... 프란시스코, 왜 우리 둘만 그 걸 아는 걸까?"
"전 어머니가 도덕이라고 부르는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요. 사람들 생각은 안 하고요. 하지만 필립에게 일자리를 주면 정말 일자리가 필요한, 그리고 충분한 자격을 갖춘 유능한 사람들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을 거예요."
"그래서 네가 잔인하다는 거야. 그래서 네가 비열하고 이기적이라는 거라고. 동생을 사랑한다면 자격이 없어도 일자리를 줘야지. 자격이 없으니까 더 기꺼이 줘야지. 그런 게 진정한 사랑이고 친절이고 형제애지. 안 그러면 사랑이 왜 있는 거야?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는 건 미덕이 아니지. 미덕은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거잖아."
방대한 분량 속에 미스터리와 로맨스, 철학이 뒤섞여 있다. 덕분에 저자의 철학이 서사를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거나 무겁지 않다. 오히려 사유하게 되고, 현실을 비춰보게 된다. 1957년에 쓰인 작품이지만 '능력자들의 이탈, 과도한 정부의 규제 그리고 사회의 몰락'이라는 메시지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분량에 압박감만 이겨낸다면 재미있게 읽고 '올 해의 책'으로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