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와 중세시대
"무인도에 갈 때 딱 한 권의 책을 가지고 갈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가지고 가시겠습니까?" 어느 독서모임장은 버트란트 러셀의 '서양 철학사'를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채그로 독서모임의 캡틴은 월 듀런트의 '문명 이야기'를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둘 다 벽돌책이다. 술술 읽히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 뇌를 정말 열심히 써야 하는 책이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TV도 없는 없는 무인도에 가더라도 서양철학사나 문명이야기를 가지고 간다면 심심하거나 지루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머리는 좀 아플 수 있지만.
<문명이야기 4-1 신앙의 시대>는 1000페이지가 넘는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책머리에 '이 책을 읽는 방법'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일반 독자들은 읽기가 더 수고스럽겠지만, 책의 분량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전문적 내용은 바로 이 단락과 같이 글자 크기를 줄여놓았다. 되도록 많이 줄였음에도 책 분량은 여전히 엄청나고, 작은 크기의 글자로 이 지루한 내용들을 전달하는 게 도리가 아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부디 한 번에 한 장 이상은 읽지 말기를 바란다.
한 장 이상을 읽고 싶어도 쉽지 않다. 저자는 <신앙의 시대>에서 서기 325년부터 1300년까지의 중세 문명 즉 비잔티움 문명, 이슬람 문명, 유대문명, 서유럽 문명을 서술하고 있다. 그가 목표한 대로 한 문화 혹은 한 시대의 모든 국면을 두루 살피되, 그것을 하나의 전체적 그림 또는 전체적 서사에 담아내고 있다. 한마디로 방대한 시간과 방대한 지역을 아우르고 있어서 한 페이지에서 몇 백 년을 넘나 든다. 어디 그뿐일까. 부족 이름 사람 이름은 왜 그리 많고 어려운지... 누가 누군지 끊임없이 헷갈린다.
참 다행인 건 '채그로 독서모임'에서 이렇게 두꺼운 벽돌책을 읽을 때는 '나눠 읽기'를 한다. 각자 1~2개의 장을 맡아서 읽고 발제를 한다. 발제를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내가 발제한 부분은 어느 정도 정리가 돼서 머리에 남지만, 나머지 부분은 돌아서면 삭제되고 없다.
1만 년의 역사를 담아낸 대형 프로젝트
저자 윌 듀런트는 50여 년에 걸쳐 '인류의 문명사'를 통찰한 열한 권의 저서를 내놨다. 바로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다. 19세기의 역사를 다루는 책을 한 권 쓸 계획이었던 그는 "19세기 역사는 이전의 이야기를 알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대와 현대, 서양과 동양의 모든 문명을 아우르는 역사책'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대 인류 문명의 기원에서 시작하여 서양사를 꿰뚫고 나폴레옹 시대까지, 그리고 1930년대의 인도, 중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1만 년의 시간을 다루고 있는 담아낸 <문명 이야기>를 선보였다. 동서양을 통섭하면서, 정치, 경제, 문화, 전쟁은 물론 수많은 시인, 예술가, 사상가들까지 등장시키고 있다.
제4권 <신앙의 시대>에서는 그리스도인, 이슬람인, 유대인들이 정치, 경체, 법률, 종교, 교육, 예술에 남긴 족적을 두루 살핀다. 중세시대 이 3개의 거대 종교는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해왔다. 그 천년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지금도 위용을 자랑하는 대성당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유럽의 대학들이 처음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엿볼 수 있고, 봉건주의와 수도원, 이단과 종교 재판, 음유 시인을 만날 수 있다.
19장 서방의 몰락: 566 ~ 1066
그중에서 내가 발제를 맡은 19장 '서방의 몰락'은 6세기부터 11세기까지 약 5백 년의 서유럽 역사를 다루고 있다. 고대 로마 제국의 통일된 질서가 무너진 후 정복과 분열로 서유럽은 혼돈에 빠진다. 그 와중에도 샤를 마뉴 같은 위대한 왕이 나타나고, 에리게나는 철학을 부활시키고, 건축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이 전개되는데... 저자는 단순한 몰락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시기였던 12, 13세기로 나아가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격동의 시기'로 설명하고 있다.
샤를마뉴: 768~814년
샤를마뉴의 기운과 관심은 모든 생활 영역에 두루 미쳤다. 그는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사방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빈민 구제제도를 설립하고 귀족자 성직자에게 과세하여 그 비용을 추당케 했으며 구걸을 범죄로 규정했다.
787년 샤를마뉴는 프랑키아 모든 주교들과 수도원장들에게 역사적인 칙령 문자연구에 관한 지령을 반포했다. (...) 성직자나 일반 신도가 다 같이 읽고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학교를 세우라고 모든 성당과 수도원에 촉구했다.
오를레앙의 주교 테오둘프는 자신의 교구에 속하는 모든 교회구에 학교를 세워 모든 아이들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며 교사였던 사제들로 하여금 학비를 받지 못하게 하였다. 이는 역사상 최초의 무상 일반 교육 사례이다. 거의가 수도원 부속학교에 속했던 주요 학교들은 9세기 투르, 오세르, 파비아, 생갈, 풀다, 겐트 등지에서 시작되었다. 교사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샤를 마뉴는 아일랜드, 브리튼, 이탈리아에서 학자들을 불러들였다. 이러한 학교들로부터 유럽의 대학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샤를마뉴가 오늘날의 프랑스 지역을 포함한 프랑크 왕국을 통치하면서 거대한 카롤링거 제국을 건설할 때, 이탈리아에서는 베네찌아가 만들어졌고, 피사대성당과 산탐브로조 교회가 세워졌다.
베네찌아:451~1095년
5, 6세기 야만족들이 침략을 일삼던 시기, 주민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피난을 떠났다. 베네티라는 부족이 이탈리아 북동쪽, 아드리아해 연안의 외딴섬을 점유했다. 그곳은 수심이 얕아 육로와 수로 어느 쪽으로도 공격하기 힘든 습지였지만, 이들은 해상 무역을 기반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천년 내내 자주권을 누리게 된다. 피난민 정착지에서 출발했던 이 도시가 ‘베네찌아’라는 이름은 갖게 된 것은 13세기였다.
이탈리아 문명:566~1095년
로마 제국 멸망 이후, 혼란 속에서도, 이탈리아는 로마 문명의 유산을 보존하고 새로운 문명의 싹을 틔웠다. 이 시대 예술 분야에서 이룬 가장 눈에 띄는 업적은 고대 로마 건축을 계승해서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의 확립이다. 그리고 위대한 역작 '피사 대성당과 산탐브로조 교회'를 배출했다.
저자의 말대로 '한 번에 한 장'씩 읽어가면 정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문명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50년에 걸친 누군가의 역작을 읽는다는 감동, 수시로 길을 잃고 헤매는 방황, 놀라운 발견의 반복'이며 동시에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 끝에서 오늘날의 우리가 무엇을 딛고 서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